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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리의 시시각각] 김어준 디스전의 관전 포인트

중앙일보

2026.03.17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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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 서바이벌 '쇼미더머니' 시즌 12에서 같은 크루 소속 김하온(오른쪽)과 나우아임영이 디스전 벌이는 모습. 친할수록 서로를 잘 알아 공격 수위가 높다. 지금 김어준을 둘러싼 디스전처럼. [방송 캡처]
" 디스(상대 까기). "
갈등 빚는 다른 래퍼를 노골적인 비난 가사로 공격하는 힙합 문화다. 국내 최장수 힙합 서바이벌인 Mnet '쇼미더머니(이하 쇼미)'는 시즌 초반부터 디스전을 시그니처 삼았다. 그 자체로 자극적 재미가 있는 데다, 특히 치부까지 속속들이 아는 친한 래퍼끼리의 디스전은 내부 폭로전 양상을 띠며 팬들의 열광적 반응을 끌어낼 수 있어서다. 4년 만에 돌아온 이번 시즌 12에서도 같은 소속(KC 레이블) 친구인 스타 김하온과 신인 나우아임영이 서로 상대의 여자 문제 등을 까발린 적나라한 디스전으로 공개 4일 만에 300만 가까운 유튜브 조회 수를 기록했다.
외부 적 소멸 후 친명·친문 갈등
상왕 김어준은 리스크로 추락
음모론 내부 향하자 성역 와해

정치가 팬덤을 맹목적으로 좇더니 이젠 팬덤 얻겠다고 이런 디스전까지 따라 하는 걸까. 벌써 십 수년째 범 민주당 계열 상왕 노릇을 해온 방송인 김어준 측이 '(이재명 대통령과 검찰 간) 공소취소 거래설'로 디스전 선공을 날리자마자, 이재명 대통령을 필두로 김민석 총리와 친명 여당 인사들이 "흉기, 무협지 공장, 음모론, 왜곡" 같은 단어를 끌어와 후공을 펼치니 하는 말이다.

'윤 어게인' 세력보다 한참 앞선 부정선거론이나 천안함 폭침설, 계엄 당시 한동훈 암살조 등 사회를 좀먹는 황당무계한 음모론조차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며 같이 손뼉 치던 어제의 동지끼리 이젠 밑바닥까지 파묘하며 강도 높은 공격을 주고받는 걸 보고 있자면 보수 쪽에선 솔직히 어리둥절하다. 갑자기 시시비비를 따져 물을 만큼 제정신으로 돌아왔나, 아니면 쇼미 디스전처럼 '머니(우승상금과 인기)'를 위해 사전 합의된 양측의 비즈니스(예능)일 뿐인가.

아마 둘 다 아닐 거다. 친문(친문재인계)과 친명(친이재명계, 뉴 이재명) 대리전 성격인 이번 디스전은 사실상 외부 적(국민의힘)이 소멸하다시피 한 상황에서 다음 권력 헤게모니를 잡고 핵심 지지층을 내 편으로 묶어두려는 치열한 내부 생존 다툼에 가깝다. 쇼미 디스전 무대가 끝나면 상처는 좀 남을지언정 래퍼들은 인지도 올리고 제작진은 시청률 잡는 윈윈으로 귀결돼왔다. 김어준을 둘러싼 이번 파묘 디스전은 어떨까.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이던 지난해 6월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 공장’ 유튜브 채널에 출연했다. 공동의 적이 사라지자 이 둘은 서로를 디스하는 관계가 됐다. [유튜브 캡처]
내 편 네편 가르기 위한 끊임없는 선명성 경쟁은 아주 작은 차이도 전부 악마화해, 가뜩이나 제어가 어려운 양측 강성 지지층 모두를 더 타협 불가능한 극단 세력으로 몰아넣을 위험이 있다. 하지만 다른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바로 성역의 와해다. "(김어준이 만든) 딴지일보 게시판이 민심의 가장 정확한 척도"라던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발언을 끌어올 필요도 없이 김어준은 그동안 민주당 정치인과 지지자 사이에서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 성역이었다. 스스로 (뉴스)공장장이라고 불렀지만 실은 교주에 가까웠다. 본인 유튜브에 하루 평균 2.3명의 민주당 의원을 출연(서울대 한규섭 교수 조사)시켜 그야말로 모든 국정 방향에 대해 시시콜콜 가이드라인을 낼 수 있었던 배경이다.

그런데 적잖은 민주당 지지자들은 이제 단 한 방울의 사실만 있으면 김어준이 아무 공상이나 더해 뚝딱 만들어내는 음모론 생산 과정이 외부의 적이 아닌 내부를 향했을 때의 폐해를 목격했다. 음모론을 무기 삼아 본인에게 비협조적인 유력 정치인을 견제하고, 내 편 힘 키우려 온갖 무리수를 두는 행태 말이다. 또 음모론에 따라오는 권력과 돈의 수혜자가 누군지도 알게 됐다. 음모론 제조 공법과 유통 방식이 강제 공개된 셈이다.

이번 디스전 국면에서 여전히 김어준 편에 서 있다는 이유로 탁현민의 여성 비하, 조국의 오상방위, 유시민의 서울대 프락치 사건(민간인 폭행사건)까지 SNS 상에서 줄줄이 파묘돼 나오는 걸 보면서, 지금껏 김어준 마음에 들려고 큰절까지 마다않고 기생하던 민주당 정치인들이 만약 그와 엮이지 않으려 몸을 사린다면 이 또한 분명 긍정적 효과일 거다.

쇼미 디스전은 우승자의 머니 챙기기로 끝난다. 하지만 김어준을 둘러싼 디스전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민주당이 자산에서 리스크로 전락한 김어준을 어떻게 관리할지가 관전 포인트다.
안혜리 논설위원



안혜리([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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