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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돈 쏟아붓고 실패 더 없다…AI 연구원이 바꾼 신약 판도

중앙일보

2026.03.17 13:00 2026.03.17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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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제약·바이오 시장이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선택과 집중’의 시대로 재편되고 있다. 천문학적 비용과 시간을 쏟아붓고도 신약 개발 성공을 장담할 수 없었던 과거 모델에서 벗어나, AI로 승률을 높이는 구조로 체질 개선에 나선 것이다.

글로벌 빅테크와 빅파마(제약사)가 손잡고 인공지능(AI) 기반 신약 개발에 속도가 붙었다. 챗GPT 생성


R&D 건수 줄었는데 규모는 역대급, 왜?

17일 의약품 시장조사기관 아이큐비아에 따르면, 2025년 전 세계 제약·바이오 기업 간 공동 연구개발(R&D) 계약금액은 전년대비 49% 증가한 867억 달러(약 130조원)에 달했다. 건당 평균 계약 규모도 약 11억5600만 달러(약 1조7000억원)로 47% 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반면 계약 건수는 최근 5년간 감소세를 이어가며 금액 규모와 뚜렷한 대비를 보였다. 아이큐비아 측은 “신약 발굴 협력의 핵심 기술로 AI와 머신러닝이 자리 잡으면서 굵직굵직한 기술집약적 협력이 시장을 이끌고 있다”고 분석했다. 단순히 협력 건수를 늘리기보다 AI 신약 플랫폼처럼 확실한 먹거리에 자본이 집중되는 방향으로 전략이 바뀌고 있는 셈이다.

성장하는 글로벌 AI 신약 개발 시장
실제로 빅테크(대형 기술기업)와 제약 기업 간 ‘합종연횡’이 활발하다. 시장 분석업체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AI 신약 시장은 올해 약 29억 달러 규모에서 2033년 138억 달러(약 20조 5600억원)까지 커질 것으로 봤다. 글로벌 정보기술(IT) 공룡들이 앞다퉈 AI 신약 개발 전쟁에 뛰어드는 이유다. 앞서 엔비디아는 제약사 1위 일라이릴리와 손잡고 10억 달러를 투자해 차세대 연구소를 세운다고 밝혔다. 구글의 AI 신약 스타트업인 이소모픽랩스도 일찌감치 일라이릴리(17억 달러), 노바티스(12억 달러)등과 조 단위 공동개발 계약을 맺었다.

중국 기업들의 기세도 매섭다. 독자적인 AI 플랫폼을 구축한 중국 제약사 CSPC는 아스트라제네카로부터 53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이끌어냈다. 신약 설계 전문기업 크리스탈파이는 미국 IT기업인 도브트리와 60억 달러(약 8조원)에 달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이렇다보니 JW중외제약·대웅제약·SK바이오팜 등 국내 기업들도 자체 플랫폼 개발은 물론 외부협업을 통해 AI 신약 개발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엔비디아는 지난 1월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서 제약사 일라이릴리와 손잡고 앞으로 5년간 최대 10억 달러(약 1조4000억원)를 공동 투자해 AI 신약 개발연구소를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사진 엔비디아


AI, 신약 개발의 새 ‘내비게이션’ 될까

AI가 신약 개발의 구원투수로 주목받는 이유는 시간과 비용이라는 업계의 고질적인 한계를 해소할 수 있어서다. 통상 신약 하나를 세상에 내놓기 위해선 10~15년의 긴 세월과 1조~2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사전 학습해 수백만개의 물질 중 성공 가능성이 높은 후보물질(신약이 될 가능성이 있는 물질)만 족집게처럼 골라낸다. 실제로 AI 신약 개발 선두주자인 인실리코메디슨은 약의 구조 설계부터 초기 검증까지 불과 두 달 만에 작업을 마쳤다. 이를 두고 한국바이오협회는 “기존 방식으로 2~3년이 소요되던 것보다 약 15배 빠른 속도”라고 평가했다.

다만 AI로 발굴한 후보물질들이 ‘최종 상업화’까지 가는 길에는 험난한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여재천 가톨릭대 생명의학과 겸임교수는 “AI가 유망한 후보물질을 골라내는 데는 탁월하지만, 실제 인체에서의 유효성을 입증하고 각국의 까다로운 의료체계 및 규제 문턱을 넘어서는 건 별개의 문제”라며 “이런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빅테크의 기술력과 빅파마(대형 제약기업)의 자본력이 결합한 천문학적 규모의 협업이 더 절실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영국 익센시아가 2020년 AI로 항암 후보물질을 찾아내며 기대를 모았으나, 2023년 임상 단계에서 고배를 마시고 개발을 중단한 뒤 경쟁사인 리커전에 팔렸다.

이에 대해 윤희정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연구위원은 “AI 신약개발의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국내 업계는 아직 초기 단계”라며 “정책적 투자를 확대하는 것은 물론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전략적 동맹을 구축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수민([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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