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엇을 먹었는지 모르는 한 끼가 우리를 늙게 만들어요. 몸의 시계를 천천히 흐르게 하려면 이제 주방과 다시 친해지세요. "
각국 귀빈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화려한 미식의 정점을 찍어온 프랑스 대사관저 셰프. 윤지아 씨에게 주방은 언제나 뜨거운 화력과 화려한 테크닉이 지배하는 ‘맛의 전쟁터’였다. 하지만 36세의 어느 날, 그 치열했던 주방으로 서늘한 경고장 하나가 날아들었다. 혈압 170㎜Hg, 공복 혈당 130mg/dL. 몸이 그에게 보내온 ‘전당뇨’라는 신호였다.
전문가로서의 자존심을 챙길 겨를도 없이 ‘어떻게 해야 살 수 있을까’라는 절박함이 앞섰다. 대학에서 영양학을 배우고 10년 넘게 요리하며 살았기에 건강식쯤은 쉬울 줄 알았다. 그러나 실전은 달랐다. 전당뇨 판정을 받은 첫날, 몸에 좋으려니 믿고 선택했던 월남쌈의 라이스페이퍼가 사실은 혈당을 폭발시키는 정제 탄수화물 덩어리였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는 자신의 무지를 마주했다.
그날 이후 그는 화려한 미식 대신 ‘생존’과 ‘회복’을 위한 요리를 시작했다. 자신의 몸을 임상 실험 무대로 삼아 180일간 식재료의 당지수를 분석하고, 영양소 파괴를 최소화하는 조리법을 연구하며 그 과정을 SNS에 기록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당화혈색소 5.4, 공복 혈당 78. 약이 아닌 ‘주방에서 바꾼 한 끼’가 일궈낸 기적이었다.
윤 셰프는 현대인이 앓는 대사증후군의 이면에 ‘주방과의 이별’이 있다고 말한다. 스스로 몸을 돌보고 직접 요리해 먹는 일상이 멀어진 만큼 건강도 우리 곁을 떠났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치유의 답 역시 주방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시 주방과 마주 앉아 ‘나를 위한 요리를 시작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회복의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알아야 비로소 나를 돌볼 수 있다’는 그의 생각은 슬로우에이징 쿠킹 클래스로 이어졌다. 6년 전 전당뇨 판정 이후, 혈당의 완만한 오르내림을 만드는 조리법부터 장내 미생물을 살리는 식재료 활용까지 직접 몸으로 겪으며 쌓아온 정답을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를 만나 몸을 돌보는 조리법에 관한 이야기를 더 깊게 들어봤다.
Q : 180일 챌린지 성공 후 정상 수치를 되찾았지만, 습관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사실 숫자를 정상으로 돌려놓는 것보다 이후의 삶을 유지하는 일이 훨씬 어렵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나 역시 완벽하지 않다. 여러 번의 요요도 겪었다. 일이 바빠지다 보니 예전의 생활 패턴이 조금씩 스며들었고, 체중뿐 아니라 혈당과 혈압도 다시 올라갔다.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자포자기의 마음이 들었던 시기도 있었다.
그 시간을 겪어내며 “건강도 결국 시간과 여유가 있는 사람들만 지킬 수 있는 건 아닐까”라는 질문이 남았다.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완벽한 수치 유지는 오히려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건강식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 답은 아니다. 오히려 그럴수록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어갈 수 있는 음식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건강한 음식은 특별한 사람만의 식단이 아니라 일상의 음식이 되어야 한다.
Q : 건강식 레스토랑 ‘굿카브’를 연 것도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들을 직접 만나기 위해서였나.
그렇다. 굿카브는 ‘맛있고 건강한 저탄수 브런치’를 선보이는 곳이다. 평소에는 브런치 카페로 운영되지만, 그 외 시간에는 요리를 연구하는 스튜디오이자 건강식 쿠킹클래스 공간으로 쓰인다. 대중과 직접 소통하며 건강한 음식을 제공하고 싶다는 의지를 담았다. 요리 연구를 하다 보면 보통 '쉽고, 맛있고, 예쁜 요리'를 동시에 요구받는다. 그런데 할수록 '이게 정말 사람들이 먹고 싶은 음식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특히 외식업계에서 진짜 ‘건강식’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브랜드가 많지 않다는 것도 잘 안다. 그래서 '사람들은 외식할 때 건강한 음식을 얼마나 선택할까, 또 어느 정도의 비용을 지불할 의향이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됐다. 굿카브는 그 질문에서 시작된 하나의 실험이다. 지난 2년 동안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쌓은 데이터와 경험을 이번 쿠킹 클래스 메뉴 구성에 녹여냈다.
Q : 혈당을 관리하면서도 맛을 놓치지 않는 조리법 노하우가 궁금하다.
혈당을 관리한다고 해서 먹는 즐거움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몇 가지 원리만 이해하면 된다. 우선 탄수화물의 형태 조절이 중요하다. 설탕이나 밀가루 대신 식이섬유가 풍부한 복합탄수화물을 권장하며, 단백질과 건강한 지방을 함께 구성해 식사의 균형을 잡는다. 두 번째는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것이다. 인위적인 대체당보다는 꿀이나 조청을 소량 사용하거나 재료 자체의 단맛을 활용한다.
튀기기보다는 굽거나 찌는 방식을, 오일은 올리브오일이나 버터 등 좋은 지방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철 식재료를 활용하면 과한 양념 없이도 만족도와 영양을 모두 잡을 수 있다. 결국 식단은 ‘제한’이 아니라 ‘조합’이다.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늘리는 방식이 아니라, 더 좋은 재료와 조합을 발견해 나가는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Q : 쿠킹 클래스를 기획한 의도도 이와 맞닿아 있나.
기존 건강식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다. 저탄고지나 저속노화 등 표현은 달라도 건강식의 기본 원리는 다르지 않다. 결국 많은 이가 원하는 것은 아프지 않게, 천천히 건강하게 나이 드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식단의 기본은 혈당과 혈압을 안정적으로 낮추는 저탄수 식사가 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혈관 염증을 낮추고 장 건강까지 관리해야 우리가 먹는 영양이 제대로 흡수되어 몸의 균형이 회복된다. 이번 클래스에서는 특정 식단을 극단적으로 따르기보다 일상에서 혈당·염증·장 건강을 함께 고려하는 조리 방식과 재료 조합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Q : 클래스에서 ‘함께하는 경험’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배우는 분들이 직접 만들어 보실 수 있도록 6가지 메뉴 중 3가지를 쿠킹박스로 제작해 보내드린다. 지글지글클럽 쿠킹 클래스 특징이다. 보통 요리 강의를 들으면 재료 준비 단계에서 지쳐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건강식은 생소해서 막막할 수 있다. 그래서 필요한 재료를 정량대로 담아 보내드리기로 했다. 단순히 배우고 끝나는 클래스가 아니라, 집에서 바로 만들어보는 실질적인 경험을 제공하고 싶었다.
Q : 앞으로의 행보와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동안 굿카브를 운영하며 얻은 유의미한 연구를 이어가기 위해 호주에서 새로운 경험과 배움을 쌓을 계획도 있다. 나는 앞으로도 건강한 식사를 일상적인 방식으로 풀어내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 건강식은 특별한 사람만 누리는 어려운 식단이 아니라 누구나 일상 속에서 조금씩 선택해 나갈 수 있는 영역이다. 그런 선택이 더 편해질 수 있도록 클래스와 다양한 채널을 통해 소통을 이어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