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가까운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이 17일(현지시간) 유럽 동맹의 호르무즈 해협 군사 지원 거부로 트럼프 대통령이 크게 분노한 상태라며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올린 글 한 대목이다. 그레이엄 의원은 “유럽 동맹들이 호르무즈 해협의 원활한 통행 유지를 위한 자산 지원을 꺼린다는 점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과 논의했다. 저도 그 분노에 공감한다”며 이렇게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한 ‘호르무즈 연합군’ 구성은 사실상 좌초됐다. 이란이 봉쇄한 호르무즈 해협을 열기 위한 군함 파견 등 지원 요청에 동맹국들이 일제히 난색을 보이면서다. 유럽 정상들은 “이번 전쟁은 우리의 전쟁이 아니다”는 입장을 밝히며 파병 요청을 거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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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토 지원 필요 없어”…‘호르무즈 연합’ 좌초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미국이 주도하는 안보 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이 선명하게 선을 긋자 “매우 어리석은 실수를 했다”며 극도의 분노와 실망감을 드러냈다. 그는 “우리는 이미 이란 군대를 초토화했고 군사적 성공을 거뒀기 때문에 더는 나토 국가들의 지원이 필요하지 않다. 일본, 호주 혹은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연방 의회 승인 필요 없이 자신의 결정으로 가능하다며 나토 탈퇴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곧바로 “당장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며 발언 수위를 조절하긴 했지만, 미국이 그간 수조 달러를 들여 동맹국 보호에 나섰음에도 지원 요청에 응하지 않고 있다며 격한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지난 1월 미국의 그린란드 병합 욕심에 흔들렸다가 가까스로 봉합되는 듯했던 미국과 유럽의 ‘대서양 동맹’이 다시 균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안보 책사로 불린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날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를 통해 “지금은 대서양 동맹에 있어 중대한 순간”이라며 “자유 세계와 서방의 보루인 미국과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데 있어 유럽과 영국이 보여주는 소극적인 태도는 동맹국들의 가치에 대한 모든 부정적 감정과 고정관념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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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분 없는 전쟁’에 대서양 동맹 다시 균열
트럼프 대통령이 “40년간 우리가 당신들을 보호해 왔다”며 압박했는데도 유럽의 반응이 냉담했던 이유는, 이번 전쟁의 명분이 폭넓은 동의를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유럽에서 가장 먼저 호르무즈 해협 군사 작전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한 독일의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對)이란 전쟁 전 다른 나라들과의 협의가 없었다는 점을 들며 “이 전쟁은 나토의 문제가 아니다”고 했다.
전통적으로 미국과 가장 가까운 동맹인 영국의 키어 스타머 총리도 “영국은 더 큰 전쟁에 휘말리지 않을 것”이라며 방어막을 쳤다. 트럼프 대통령을 ‘아빠’에 빗대 치켜세워 지나치게 비위를 맞춘다는 비판을 받았던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조차도 이란 전쟁 발발 직후 “분명한 것은 나토 자체는 여기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전쟁 전 어떤 형태의 ‘의지의 연합’을 구성해 놓거나 전쟁에 대한 국제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은 전혀 없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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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 박스’ 위험구역…군사적 실효성도 의문
군사적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크다. 트럼프 대통령이 안전 확보를 위해 작전 참여를 요청한 호르무즈 해협은 이란의 소형 고속정이나 기뢰, 드론만으로도 유조선을 위협할 수 있어 리스크가 매우 크다.
또, 폭이 가장 좁은 곳이 약 34㎞에 불과하고 말굽처럼 굽은 항로다. 선박이 운항할 때 최대 270도 방향의 이란 해안선에 둘러싸인 상태에서 다양한 형태의 공격 위협에 노출된 구조다. 좁은 구역에 여러 척의 배들이 한꺼번에 공격을 받으면 속수무책이어서 ‘죽음의 구역’이란 의미의 ‘킬 박스(kill box)’로 불린다.
이 때문에 미 해군조차 완전히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럽 해군이 판세를 바꿀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NYT는 “유럽 지도자들은 트럼프 대통령 마음을 돌리는 유일한 요인은 금융 시장과 미국 여론뿐이라고 본다”며 “호르무즈 해협 봉쇄 상황이 오히려 트럼프를 설득해 전쟁 확산을 막는 가장 강력한 지렛대가 될 수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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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적된 갈등 폭발…‘미국 나 홀로’ 역풍
트럼프 대통령의 지원 요청에 유럽이 보인 냉담한 반응의 근본적인 배경에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과 유럽 간 누적된 갈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관세 압박, 방위비 증액 요구, 나토 무용론 그리고 그린란드 병합 야욕까지 이어진 트럼프 대통령의 강압이 동맹에 대한 신뢰를 서서히 무너뜨렸다는 지적이다.
NYT는 트럼프 행정부가 고립에 처한 이런 상황을 ‘미국 나 홀로(America Alone)’로 규정하며 “트럼프 대통령은 나토 동맹국들이 미국을 돕지 않아 불충하다고 비판하지만 그들이 거부할 만한 이유는 수두룩하다”고 짚었다. ‘미국 우선주의(아메리카 퍼스트)’를 내세워 동맹을 협력 파트너가 아닌 이해득실의 대상으로 보고 사전 조율 없이 일방적으로 행동해 온 외교 기조가 결국 역풍으로 돌아왔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