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을 두고 흔히 호르무즈 해협의 ‘바닷길’에 주목한다. 하지만 가려진 문제는 중동 유전의 생산이 장기간 멈출 수 있다는 점이다.
전쟁을 둘러싼 세계 경제의 최대 관심사는 국제 유가다. 올해 들어 전쟁 발발 전까지 배럴당 60달러대에 머물던 두바이유 가격이 최근 배럴당 120달러를 넘어섰다. 이란이 중동 원유의 길목인 호르무즈 해협을 사실상 봉쇄하면서다.
호르무즈 봉쇄가 국제유가 급등의 1차 원인이라면, 수면 아래 잠복한 리스크(위험)는 원유 ‘저장 탱크’다. 유조선은 봉쇄만 풀리면 오갈 수 있다. 하지만 생산한 원유를 보관할 저장 탱크가 가득 차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영국 가디언은 지난 15일(현지시간) “산유국마다 원유 흐름을 돌리려고 분주하지만, 저장 탱크가 가득 차며 유일한 선택지로 수도꼭지(taps)를 잠그는 일만 남았다”고 짚었다.
문제는 유전이 발전소처럼 쉽게 생산을 켰다 껐다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점이다. 석유 시추는 기본적으로 ‘연속 공정’이다. 지하에서 원유를 뽑아내, 저장하고, 선적해, 수출하는 흐름이 끊김 없이 이어져야 한다. 현재는 끝단인 수출이 막힌 상황이다.
하지만 저장 탱크가 꽉 찰 경우 선적·수출 이전 단계부터 제동이 걸린다. 유전에선 주입정을 통해 지하 저류층에 물·증기·이산화탄소(CO₂)를 강한 압력으로 밀어넣어 생산정으로 원유를 밀어 올리는 방식으로 원유를 뽑아낸다. 생산 중단이 위험한 건 생산을 오래 멈출 경우 지층 압력·구조가 바뀔 수 있어서다.
이충재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석유 생산을 중단하면 유전 내부 압력이 바뀐다. 석유는 혼합물이라 오래 고여 있으면 가벼운 성분은 뜨고 무거운 성분은 가라앉아 유전 내부가 끈적끈적한 형태로 바뀔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특히 중동 원유는 황 성분이 많아 가동 중단 기간 생산 설비가 빠르게 부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미르 자만 리스타드에너지 미주 상업부문 책임자는 “전쟁이 끝나더라도 유전의 종류와 연식, 생산 중단 방식에 따라 생산량을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는 데 수일에서 수주, 심지어 수개월까지 걸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역시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오가는 액화천연가스(LNG)도 마찬가지다. LNG는 천연가스를 영하 160도 이하로 냉각해 액체로 만들어 저장한다. 원유보다 저장 조건이 까다롭다. 권효재 COR에너지인사이트 대표는 “LNG 액화 시설은 한 번 끄면 다시 가동하는데 한 달 이상은 기본이다. 가스전 저류층에 이상이 생길 경우 생산량을 전쟁 이전으로 끌어올리는 데 몇 달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저장 탱크 용량이 꽉 차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우려가 나온다. JP모건은 중동 산유국이 감당할 수 있는 원유 저장 용량이 25일 치라고 짚었다. 전쟁 개전 시점(2월 28일) 기준으로 데드라인까지 1주일쯤 남은 셈이다.
이란이 봉쇄를 풀 때까지 ‘시간 벌기’가 핵심이다. 이미 사우디아라비아·이라크·쿠웨이트·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산유국은 생산 감축, 중단에 들어갔다. 사우디가 동부 유전에서 서부 홍해 연안으로, UAE가 서부 아부다비 유전에서 동부 푸자이라항으로 각각 생산한 원유를 호르무즈를 우회해 보내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당연하지만 호르무즈 해협을 정상화하는 게 최선의 해결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