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01개의 다이아몬드로 뒤덮은 두개골, 포름알데히드에 통째로 절인 상어, 파리떼 꼬인 소머리에 비하면 수천 마리의 나비 날개 표본을 중세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처럼 붙인 ‘신의 무한한 권능과 영광을 묵상하며’(2008)는 얌전한 편이다.
데이미언 허스트(61)의 초기작부터 근작 벚꽃 그림 ‘신착 꽃’(2019)까지 50여 점이 서울 삼청로 국립현대미술관에 한데 모였다. ‘젊은 영국 미술가들(Young British Artist, YBA)’의 기수, 데이미언 허스트의 아시아 첫 회고전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가 20일부터 관객을 맞는다.
허스트는 등에 커다란 해골이 새겨진 점퍼 차림으로 18일 프레스 프리뷰에 나타났다. 그는 “40년간 쌓아온 것들을 이곳 큐레이터들이 잘 전시해줬다. 작품이 설명해 준다고 생각해 질문은 받지 않겠다”며, 우스꽝스러운 포즈로 사진만 찍었다. 1965년 영국 브리스톨에서 태어난 허스트는 대학 3학년이던 1988년 버려진 부두 창고에서 그룹전 ‘프리즈’를 기획했다. 이때 모인 작가들은 YBA라 불리는 새로운 세대의 주축으로 떠오르며 영국 미술의 부활을 알렸다.
포름알데히드 수조에 동물 사체를 넣은 ‘자연사’ 연작으로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가했고, 1995년 영국의 대표적 현대미술상인 터너상을 받았다. 이미 서른 살에 이룬 성취다.
서울 전시는 총 4부로 구성됐다. 1부 ‘모든 질문에는 의심이 따른다’에는 16세 때 시체안치소에 몰래 들어가 찍은 사진으로 시작, 대표적 연작인 ‘스폿 페인팅’(1986)과 ‘스핀 페인팅’(1999)의 초기 버전이 모두 소개된다.
2부 ‘우리는 시간 속에 산다’에는 상어 ‘살아있는 자의 마음 속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1991)이 2012년 테이트 모던 회고전 이후 처음 공개됐다. 전시를 기획한 이사빈 학예연구관은 “상어와 수조를 따로 운송해 와서 설치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았다”고 말했다. 잘린 소머리에 파리가 꼬이다가 살충기에서 죽어가는 ‘천 년’(1990)은 삶과 죽음의 순환을 날 것 그대로 시각화했다. 거대한 유리로 만든 폐쇄적 구조는 관객이 그 안을 훤히 볼 수 있되 개입할 수는 없다. 죽음이라는 필연적 결과를 앞둔 채로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운명을 은유한다.
3부 ‘침묵의 사치’에선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남긴 빈 약병과 포장재를 채워 넣은 약장 ‘죄인’(1988)을 볼 수 있다. 거기엔 더 나아질 거란 믿음으로 매일매일 알약을 삼키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한편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는 운명임을 실감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우리네 모습이 있다. 2008년 런던에서 기자와 만난 그는 “내일 죽을지언정 우리는 오늘을 그대로 살아내야 한다. 이 때문에 내가 예술을 시작했는지도 모른다”고 말한 바 있다.
전시장에는 또한 그의 런던 스튜디오를 바닥까지 뜯어 옮겨왔다. 여기서 전날 자정까지 마지막 붓질을 한 허스트는 핑크색 물감을 찍어 거울에 한글로 ‘사랑해요, 대한민국’이라고 썼다. 수 년 전부터 회화로 돌아간 그는 물감 냄새 그득한 이 작업실에서 마티스의 그림을 모사하며, 마티스만큼 잘 그릴 수 있길 갈구한다. 40대에 이미 “YBA가 웬 말이냐, ‘늙은 영국 미술가들(Old British Artists)’이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푸념했던 그도 이제 백발이 성성하다. 전시는 6월 28일까지. 성인 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