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업계에서 ‘박건영’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이가 있을까. 한국에 ‘펀드 붐’을 일으킨 미래에셋자산운용의 디스커버리펀드를 이끈 스타 펀드매니저이자, ‘차·화·정(자동차·화학·정유)’이란 조어를 만들며 자문형 랩어카운트 시장의 절대 강자로 올라선 인물이다.
2009년 브레인투자자문(현 브레인자산운용) 창업 후 운용 자산이 한때 8조원까지 늘었지만, 2011년 자문형 랩의 한계를 느낀 그는 헤지펀드로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상장지수펀드(ETF) 붐이 일면서 국내 주식형 공모 펀드 시장이 위축되자 코스닥벤처펀드 하나만 남기고 공모 펀드 시장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제2의 창업을 한다는 마음으로 5년간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을 바꿨다.
현재 브레인자산운용은 미래 선도 기업을 발굴해 투자하는 블라인드 사모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투자 대상은 주로 메자닌 증권(CB·EB·BW·CPS 등)이나 비상장 주식 등이다. 자회사로 KY프라이빗에쿼티(KY PE)가 있다. 10년 넘게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박건영 사장과 브레인자산운용의 리더들을 만나 인터뷰했다.
Q : 자문형 랩은 어떻게 성공했고, 왜 접었나.
A : “2009년, 금융위기에 억눌렸던 소비가 되살아 날 걸로 봐 현대차와 내구재 종목을 샀다. 또 10년 뒤 전기차 시대가 열리면서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가 ‘히든 밸류’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문제는 당시엔 규제가 없어 실시간으로 우리의 매매 정보가 노출됐다는 점이다. 2011년 미국 신용등급 강등으로 미국 주식이 연일 폭락하자 보유하던 주식을 일부 팔았는데, 이를 보고 시장에서 투매가 일어나면서 보유 종목이 하한가로 직행했다. 자문형 랩의 한계를 실감했다.”
Q : 하우스의 핵심 철학은.
A : “일등 기업에 투자하려는 욕심이 굉장히 강하다. 석유화학이 좋을 때 LG화학을 사고, 반도체가 좋을 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샀다. 일등 기업에 투자하면 반드시 기회가 오고, 그 기회는 기다린 사람에게 큰 보상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예컨대 우리가 투자하고 있는 두나무는 투자한 뒤 2년 정도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결국 네이버파이낸셜과 전략적 합병을 진행 중인 단계까지 오게 됐다.”
Q : 이런 방향성에 확신을 준 기업은.
A : “2017년 크래프톤이 힘든 시기를 보낼 때 투자했는데 이후 ‘배틀그라운드’가 대박이 났다. 2021년 상장하면서 매우 큰 수익을 냈다. 지금 투자 중인 무신사나 두나무 등도 시간이 지나고 보면 좋은 결과로 돌아올 것으로 믿는다.”
Q : 일등 기업 발굴 노하우는.
A :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이 나오면 형광등·백열등은 잘 안 쓰게 되고, 5G(5세대) 폰이 나오면 삐삐·시티폰은 사라진다. 결국 기술 변화의 흐름을 잘 읽는 것이 가장 중요한 키다.”
Q : 분산 투자하지 않고 ‘집중 투자’하는 이유는.
A : “향후 1년간 이보다 좋은 기업에 투자할 기회가 없다고 판단되면 ‘집중 투자’를 하는 게 맞다. 무엇보다 우리는 엑시트(자금 회수)가 어느 정도 담보된, 이제 막 꽃이 피기 직전의 꽃봉오리에 투자한다. 예컨대 지난해 메자닌 구조로 투자한 올릭스는 로레알·일라이릴리와 동시에 파트너십을 맺었다. 이런 기업에 20억원을 투자하면 100% 수익이 나도 20억원 밖에 못 벌지만, 200억원을 넣으면 200억원의 수익이 나는 것이다. 18일 종가 기준으로 올릭스 수익률은 224%다.”
Q : 그간의 성과는.
A : “지금까지 비상장 기업 70여 개에 투자해 50개 이상이 기업공개(IPO)에 성공했다. 예컨대 7년 전 5000원대에 매수한 에이피알(2024년 상장)은 18일 종가 기준 주가가 36만원을 넘었다. 취득 이후 수익률이 6630%에 달한다. 시프트업은 2024년, 달바글로벌과 아우토크립트, 리브스메드는 지난해 IPO에 성공했다.”
Q : 이란 전쟁 이후 코스피 변동성이 커졌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A : “지금까지 대형주에 투자해 쉽게 수익을 내는 시장이었다면, 앞으로는 화려한 종목 장세가 펼쳐질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주식 시장으로 들어온 자금이 개별 기업으로 이동하는 ‘머니무브’가 일어날 걸로 예상한다. 구체적으로 반도체 장비 업종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에 후행해 크게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 여전히 AI와 관련된 에너지는 부족하기 때문에 전선 등의 수요가 늘고, 피지컬 AI와 로봇 등에서 성과를 내는 기업에도 투자가 몰릴 것으로 전망한다.”
Q : 어떤 하우스로 남고 싶나.
A : “과거 자문형 랩 시장을 키워 후배들이 할 일을 만들고, 1세대 헤지펀드로 후배들에게 헤지펀드의 길을 열었던 것처럼, 프라이빗에쿼티(PE) 영역에서 다시 한번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투자에 진심이었던 사람’으로 남는 것이 꿈이다.”
☞더하우스(The House)=오직 ‘최고의 투자를 해보겠다’는 신념을 밑천 삼아 한국 자본시장의 ‘큰손’으로 성장한 주역을 만나봅니다. 이제껏 제대로 공개된 적이 없는 창업자들의 이야기와 수익 비결을 파헤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