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현지시간) 미국 증권당국이 비트코인 등 주요 암호화폐를 증권이 아닌 디지털 상품으로 규정했다. 10년 넘게 이어진 코인 규제 논쟁에 마침표가 찍혔다. 규제 문턱이 낮아지면서 미국 금융사의 코인 시장 진입이 본격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이날 이 같은 해석을 포함한 연방증권법 법령해석 지침안을 공개했다. SEC는 이번 지침안에서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리플(XRP), 솔라나 등 대부분의 암호화폐를 디지털 상품으로 분류했다. 이들 자산은 주식·채권 등과 달리 타인의 경영 노력에 따른 수익을 기대하는 투자계약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단이다. 미국 증권법에서 증권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인 ‘하위 테스트(Howey Test)’에 따른 것이다. 한마디로 코인은 발행사의 경영 활동이 아니라 시장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형성되는 자산이라는 의미다.
그동안 가상자산을 사실상 증권으로 간주해 규제를 쏟아내던 SEC의 시각이 달라졌다는 평가다. 새 지침안에 따르면 암호화폐는 디지털 상품, 디지털 수집품, 디지털 도구, 스테이블 코인, 디지털 증권 등 5개 그룹으로 분류된다. 대표적으로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같은 코인은 디지털 상품에 속한다. 또 인터넷 유행이나 농담에서 유래한 밈코인이나 대체불가토큰(NFT)은 디지털 수집품으로 분류했다.
최근 시장 관심이 높은 스테이블코인은 지난해 미 의회를 통과한 스테이블코인 규제법인 지니어스법을 반영했다. 허가받은 기관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했다면 결제 수단으로 보고 규제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내용이다. 앞으로 SEC의 직접적인 규제 대상은 토큰화된 주식이나 국채 등을 의미하는 ‘디지털 증권’이 될 것으로 보인다.
폴 앳킨스 SEC 위원장은 “10년이 넘는 불확실성 끝에 이번 해석 지침이 시장 참가자에게 연방증권법상 가상자산에 대한 SEC의 입장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기준을 제공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암호화폐의 법적 지위가 ‘디지털 상품’으로 규정된 이후 가장 큰 변화는 제도권 자금이 코인 시장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더 커졌다는 점이다. 그동안 주요 은행과 증권사 등 금융사는 암호화폐를 직접 투자하거나 상품화했을 때 SEC로부터 ‘미등록 증권 판매’ 혐의로 처벌 받을 수 있다는 우려로 적극 뛰어들지 못했다.
SEC가 2020년 암호화폐 기업 리플랩스가 XRP를 기관투자가에게 미등록 증권 형태로 판매했다며 고발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소송 직후 XRP 가격은 60% 급락했다. 바이낸스와 코인베이스 등 주요 거래소도 미등록 증권 거래소 운영 혐의로 제소됐다.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암호화폐가 증권이 아니라는 기준이 명확해지면서 규제 부담을 덜어낸 기관투자가의 참여가 확대될 수 있다”면서 “앞으로 코인 감독 권한도 규제가 까다로운 SEC에서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규제 완화 소식에 비트코인은 18일 오후 2시30분 기준 7만4051달러를 기록했다. 지난달 말과 비교하면 18% 올랐다.
변수는 남아 있다. 이번 지침은 SEC의 행정 해석이다. 암호화폐 관련 법안이 미국 의회를 통과해야 제도적 규제 틀이 확정될 수 있어서다. 17일(현지시간) 로이터에 따르면 씨티은행의 알렉스 손더스 연구원은 “암호화폐 관련 입법 심의가 난항을 겪으며 기회의 창(법안 통과)이 좁아지고 있다”며 “비트코인의 12개월 전망치를 기존 14만3000달러에서 11만2000달러로 하향 조정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