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헤리티지’를 앞세우고 방탄소년단(BTS)이 돌아온다. 20일 공개하는 정규 4집 앨범 타이틀은 ‘아리랑(ARIRANG)’. 첫 무대(21일)는 조선왕조의 궁궐 경복궁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이날 BTS와 함께 무대에 오르는 100여 명의 공연자 중엔 13명의 ‘아리랑 국악단’(가칭)이 포함됐다. 이번 컴백에 맞춰 내놓은 머리핀·치마 등 새 굿즈 5종엔 ‘에밀레종'(성덕대왕신종)의 문양이 새겨져 있다. 글로벌 ‘K’ 열풍의 원조 격으로 불리는 이들이 3년9개월 만에 완전체로 컴백하며 더욱 적극적으로 한국 전통문화를 강조하는 모양새다.
특정 가수가 경복궁부터 세종대로로 이어지는 서울 도심 공간 전체를 무대와 객석으로 활용해 단독 대형 공연을 개최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해외 사례로는 폴 매카트니의 로마 콜로세움 공연(2003), 샤키라의 멕시코시티 중앙광장 소칼로 공연(올해 3월 1일) 등이 있다. 도시와 유산, 아티스트가 결합되는 공연은 세계 대중문화사에서도 중요한 장면으로 기록된다.
안현정 성균관대 박물관 학예실장(평론가)은 “역사적 장소에서 라이브 무대를 펼치고 타이틀 역시 아리랑으로 잡은 BTS의 이번 컴백은 K팝이 일종의 K헤리티지를 담는 플랫폼으로 확고히 자리했음을 보여준다”며 “글로벌 K팝 아티스트들이 전통을 유물이 아닌 유행으로 소비하게 만들고 있으며 이는 층위가 뚜렷했던 대중문화와 전통문화가 같은 플랫폼 내에서 함께 소비되는 ‘플랫 컬처(flat cluture)’ 현상의 대표적 사례”고 말했다. 김민규 국가유산청 전문위원은 “BTS 공연의 배경이 되는 근정전 주변의 동물 조각, 광화문 천장에 그려진 단청 등은 우리의 민본사상과 전통미를 잘 보여주는 작품들”이라며 “그간 한국이 축적한 문화의 힘을 세계에 보여줄 기회”라고 말했다.
BTS는 꾸준히 한국 전통문화를 작품에 접목시켜왔다. 글로벌 팬덤이 형성된 후인 2018년 발표한 ‘아이돌(IDOL)’의 퍼포먼스가 대표적이다. 국악 장단을 기본 비트로 깔고 있는 이 음악은 가사에 ‘얼쑤 좋다’ 등의 추임새까지 포함시켰다. 뮤직비디오에는 탈춤과 사자놀음 등이 등장한다. 그해 MMA(멜론뮤직어워즈) 무대에서 지민이 보인 부채춤은 팬들에게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후 블랙핑크·스트레이키즈 등 다양한 K팝 그룹이 ‘K헤리티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BTS가 전통 문화를 전방위로 활용하는 이유 중 하나는 “글로벌 시장에서 잘 먹히기 때문”(대형 기획사 관계자)이다. 글로벌 K팝 그룹이 소속된 한 기획사 관계자는 “해외 음악 시장에서 수 많은 글로벌 팝 스타들과 경쟁하려면 나만이 가진 특별함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 중 하나가 자신만의 정체성”이라고 말했다. 김도헌 평론가는 “글로벌 팝스타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건 일종의 트렌드”라고 말했다.
올해 그래미 어워즈에서 ‘올해의 앨범’을 수상한 배드 버니가 지난달 수퍼볼 하프타임 공연에서 자신의 고향 푸에르토리코의 풍경을 옮겨놓은 듯한 무대를 배경으로 스페인어로만 노래한 것이나, 리한나가 자신의 고향인 바베이도스에서 열리는 전통 축제 ‘크롭 오버 카니발’에 화려한 카니발 의상을 입은 채 참여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BTS 리더 RM도 지난 17일 공개된 넷플릭스 다큐 예고편에서 “우리가 여전히 한국에서 온 촌놈이라는 사실”이라며 한국인의 정체성을 당당히 드러냈다. 외신들도 이번 BTS의 앨범에 대해 “정체성을 명확히 보여주겠다는 신호탄이 될 것”(영국 가디언) 등 긍정적인 반응이다.
정부와 지자체도 BTS를 홍보대사 삼아 K헤리티지 확산에 나서는 모습이다. 국가유산진흥원은 18일부터 다음 달 24일까지 경복궁과 온라인 쇼핑몰 등에서 전통문화 상품 특별전을 운영하며 광화문 월대의 동물 조각상 서수상을 본뜬 키링, 아리랑 손수건 등을 판매한다. 서울 중구는 21일 BTS 공연에 맞춰 글로벌 팬들을 대상으로 전통 공예품 만들기, 식혜·약과 시식 등 한국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K패스’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다만 K팝과 K헤리티지의 만남이 맥락 없는 물리적 결합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우려도 나온다. 익명의 한 평론가는 “최근 블랙핑크와 국립중앙박물관이 협업해 리스닝 세션을 진행하며 비속어가 섞인 ‘에프 보이(fxxxboy)’가 대대적으로 울려 퍼졌다”며 “블랙핑크의 음악과 국중박 각각이 추구하는 바가 무엇이며 콜라보 이후 어떤 시너지가 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는데, 이런 식의 결합은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헌식 평론가는 “현재까지 공개된 바로만 보면 BTS의 앨범 타이틀은 아리랑인 반면 수록곡 제목들이나 참여 뮤지션들의 면면은 딱히 한국적 정서와 관련이 없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며 “깊은 숙고없이 이뤄진 결합이라든지, 공적 이미지 강화만을 위해 K헤리티지를 마케팅에 활용한 것으로 읽히면 오히려 반감을 살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