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삼월. 서울 남산에도 노란 영춘화가 피었다. 며칠만 기다리면 목련 꽃봉오리가 터지고, 벚꽃과 개나리도 흐드러질 테다. 그러나 여행자는 마음이 다급하다. 달력이 넘어가길 기다리기보다는 몸을 부려 남도로 내려가는 게 되레 속 편하다. 남도에는 진즉에 봄이 와 있어서다. 목적지는 꽃축제가 한창인 전남 광양과 구례로 잡는 게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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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결 같은 꽃동산
광양시는 국내 최다 매실 생산지다. 지난해 매실 5100t을 생산했다. 매실은 5~6월에 수확한다. 그러나 매실나무는 과실만 안겨주는 식물이 아니다. 우리에게 꽃도 선물한다. 매혹적인 향기로, 눈부신 장관으로 가장 먼저 봄소식을 전해준다. 섬진강변에 자리한 광양시 다압면은 시방 매화 천지다. 새하얀 매화가 함박눈 퍼부은 것처럼 산과 밭을 하얗게 뒤덮고 있다.
광양 매화마을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매화축제(3월 13~22일)의 주무대인 청매실농원이다. 식품 명인 홍쌍리(84) 여사가 지리산 건너편 백운산 자락에 일군 16만㎡ 규모의 매실 밭이다.
지난 12일 청매실농원은 꽃동산이 다름없었다. 광양시에 따르면, 이날 매화 개화율은 약 60%였는데 매실나무 종류에 따라 개화율이 달랐다. 진분홍색 꽃을 피우는 홍매(紅梅)는 만개에 가까웠고, 가장 흔한 백매(白梅)는 개화가 늦은 편이었다.
그래도 백매와 홍매, 그리고 곳곳에 핀 청매(靑梅)까지 황홀한 꽃세상이 펼쳐졌다. 꽃나무 끼고 도는 돌담길에 한옥과 초가집까지 어우러져 옛 영화 속을 거니는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영화 ‘취화선’ ‘흑수선’ 등을 이곳에서 촬영했다.
청매실농원은 축제 개막 하루 전인데도 종일 북적였다. 차분하게 매실 밭을 걷고 싶다면 이른 아침이나 저물녘에 찾아가길 권한다. 오전 10시만 돼도 대형버스가 줄지어 몰려든다.
흥 넘치는 잔치 분위기를 즐기고 싶으면 섬진강 변 행사장에서 공연을 감상하고, 먹거리 장터를 즐기면 되겠다. 축제 기간에는 입장료(6000원)를 내야 한다. 대신 지역 상품권 6000원권을 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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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달 보고 홍매화 감상까지
청매실농원에서 차를 몰고 북쪽으로 약 1시간 거리인 구례 산수유마을을 찾아갔다. 산수유마을은 한 곳이 아니다. 광양 매화축제가 청매실농원을 중심으로 열리는 반면, 산수유꽃축제(3월 14~22일)는 구례 산동면에 뚝뚝 떨어진 5개 마을에서 진행된다. 하여 이 마을 저 마을 넘나들며 저마다 다른 풍광을 즐기는 재미가 남다르다. 광양 매화축제와 달리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산수유꽃이 가장 많이 피었다는 반곡마을을 찾았다. 구례군은 이날 개화율이 50%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광양 매화마을보다 꽃이 덜 피어서인지 훨씬 한산했다.
반곡마을은 산수유꽃과 서시천 계곡물, 파노라마로 펼쳐진 지리산 서부 능선이 한눈에 담기는 풍광이 기막히다. 강변 산책로를 걸으며 샛노란 꽃을 감상하다가 계곡 너럭바위에 걸터앉아서 맑은 공기를 들이켜면 세상 부러울 게 없다.
전남 순천에서 온 정인옥(58)씨는 산수유 흐드러진 풍경을 스케치북에 그리고 있었다. 정씨는 "직접 꽃을 보면서 그림을 그리고 싶어 봄이 오기만을 기다리다가 구례를 찾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