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이 출입국·외국인 거류 관련 서류에서 한국의 국가명을 기존 ‘대한민국’에서 ‘남한’으로 바꿔 표기하기로 하면서 논란이 번지고 있다. 이는 한국 전자입국신고서가 대만을 ‘중국(대만)’으로 표기하는 것에 대한 맞대응 성격이다. 정부는 20년 넘게 한국에 거주하는 대만인의 외국인등록증에 ‘중국(대만)’ 표기법을 유지해 왔다는 점에서 대만의 새삼스러운 ‘국명 도발’을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지난 18일 대만 외교부는 ‘양자 대등의 원칙’을 명분으로 대만 내 장기 체류 한국인에게 발급하는 외국인 거류증에 표기되던 한국의 공식 명칭을 지난 1일부터 ‘남한’으로 바꿔 발급했다고 밝혔다. 또 한국이 31일까지 중국(대만) 표기에 관한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을 경우 외국인 거류증 외에 전자입국등록표에서도 한국을 남한으로 바꾸겠다고 했다.
한국 전자입국신고서의 출발지·목적지 항목에 대만을 ‘China(Taiwan)’’으로 표기하는 것은 부당하며, 대만 외교부와 주한대표처(주한대사관에 해당)가 한국 측에 수정을 요구해왔지만 한국 정부가 응하지 않았다는 게 대만 측 설명이다. 대만 외교부는 “한국 측의 이번 사안 처리에 대해 실망했다는 대중의 비판을 계속 접수하고 있다”며 “다시 한번 한국 측에 상호 존중과 대등의 원칙을 견지하고 대만의 요구를 직시해 조속히 수정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대만은 작년 12월부터 한국 정부를 상대로 이를 문제 삼고 나섰다. 같은 달 9일 류쿤하오 대만 외교부 동아시아·태평양사부사장이 “대만은 한국과의 관계를 전면적으로 검토하고 실행 가능한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노골적인 불만을 보인 데 이어 하루 뒤인 10일엔 라이칭더 대만 총통이 직접 “대만 국민의 의지를 존중해 달라”고 직접 압박했다. 중국이 주장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으로 인해 대만이 국제무대에서 국가 지위 표기에 제약을 받아 왔는데, 한국이 이를 고려해 표기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일본 등은 출입국 신고서와 비자 표기에서 대만을 ‘Taiwan’으로만 표기하고 있다.
이와 관련, 외교부는 “정부는 한·대만 간 비공식 실질 협력에 대한 기존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 중이며, 이러한 입장하에 제반 사안을 다루어 오고 있다”는 원론적 입장을 내놨다. 사실상 기존의 표기를 유지하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특히 정부 내부에선 대만 측의 이런 문제 제기에 대해 “의아하다”는 반응이 적지않다. 한국 정부는 2004년부터 장기 거주하는 대만인의 외국인등록증에 ‘China(Taiwan)’로 표기를 유지해 왔고, 지난해 12월 이전에는 이와 관련한 대만의 별다른 항의가 없었기 때문이다.
20년 넘게 유지한 표기를 대만의 요구에 따라 갑작스레 변경해주는 것은 자칫 중국과의 외교적 마찰로 번질 수 있어 사안을 신중하게 접근하려는 기류도 포착된다. 한국은 1992년 중국과 수교하면서 대만과 단교했다. 이후 ‘하나의 중국’ 즉, 중국 대륙과 홍콩·마카오·대만은 나뉠 수 없는 하나이며, 중국의 합법 정부 또한 오직 ‘중화인민공화국’ 하나라는 입장을 존중하고 있다.
외교가 안팎에선 대만의 이런 행보에 다른 의도가 내포됐을 것이라고 보는 시선이 상당하다. 강준영 한국외대 중국학과 교수는 “한·중이 관계 개선 모멘텀을 맞이한 시점에서 본인들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는 견제성 아니겠느냐”며 “한국을 상대로 일정한 대응을 했다는 메시지를 대내외적으로 발신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의 무력 침공 위협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중국 측으로 과도하게 밀착하는 것을 경계하는 메시지란 것이다.
또 11월 치러질 대만 내 대규모 지방선거를 의식한 국내정치용 행보의 성격이 짙다는 해석도 나온다. 라이칭더 총통이 이끄는 집권 민진당이 지지층을 반중 여론을 고리로 결집시키려는 포석이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