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이 단순 군사 충돌을 넘어 에너지 전면전으로 옮겨가는 양상이다. 지난 18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이 이란의 가스 심장부 격인 사우스파르스 가스전과 아살루예 정제시설을 타격했다. 지난달 28일 전쟁이 시작된 이후 이란의 핵심 에너지 생산 거점에 대한 가장 심각한 공격이다. 이란은 즉시 세계 최대 규모의 카타르 라즈라판 가스 시설에 보복 공격을 가했다.
이스라엘의 공격을 받은 사우스파르스는 이란 최대 천연가스전으로, 이란 가스 공급의 약 70%를 담당하는 핵심 축이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이 “(이란의) 이번 공격은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통제 불능의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고 보복에 나선 이유다. 이란 의회 지도부 역시 “새로운 단계의 대결이 시작됐다”고 선언했다.
이란의 보복 대상이 된 라스라판은 세계 LNG 공급의 약 20%를 처리하는 거점으로, 카타르에너지는 이번 미사일 공격으로 “광범위한 피해”가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이어 19일엔 사우디아라비아 정유시설 2곳도 이란의 공격을 받았다고 파이살 빈 파르한 알사우드 외무장관이 밝혔다.
군사시설 중심 공습이 에너지 인프라로 확산되는 상황에 대해 이란인터내셔널 등 현지 언론은 “이란 전쟁이 사실상 에너지 전쟁으로 전환됐다”고 분석했다.
시장은 바로 반응했다. 양측의 에너지 시설 공격 사실이 알려지면서 18일 브렌트유는 8% 가까이 폭등, 한때 배럴당 111달러까지 치솟았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트레이딩이코노믹스에 따르면 이날 영국 도매 가스 가격도 하루 6% 상승했다.
더 큰 문제는 장기화다. 가스전의 생산시설이 훼손될 경우 복구에 수년이 걸릴 수 있다. 영국 가디언은 한 에너지 전문가의 발언을 인용해 “이건 단순한 공급 차질이 아니라 구조적 충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전쟁이 끝나도 에너지 시장 불안은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이미 가동이 중단된 라스라판 헬륨 생산 시설도 복구에 최대 수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이에 따라 반도체 웨이퍼 냉각에 필수적인 헬륨도 공급 압박이 커지고 있다. 카타르는 전 세계 헬륨 생산의 약 3분의 1을 차지한다.
여기에 호르무즈 해협 변수까지 겹치며 리스크는 한층 커지고 있다. 이 해협은 하루 약 2000만 배럴의 원유와 전 세계 LNG 물동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핵심 수송로다. 최근 이 일대에서 선박 공격이 잇따르고, UAE 코르파칸 인근에서는 피격 선박 화재까지 발생하는 등 해상 운송 불안도 현실화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심각한 에너지난을 겪고 있는 인도는 군함을 배치해 자국 선박 보호에 나섰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인도 해군은 오만만과 아라비아해에 군함 6척 이상을 전개했으며, 현재 22척의 선박이 해협 통과를 대기 중이다.
미국의 계산도 복잡해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공격을 사전에 인지하고 호르무즈 봉쇄에 대한 경고 차원에서 지지했지만, 추가 에너지 시설 타격에는 신중한 입장으로 돌아섰다”고 전했다.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전쟁에 대한 여론이 급격히 악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미국은 중동 작전 강화 및 호르무즈 안정을 위해 수천 명 규모의 병력을 추가로 파견할 예정이라고 로이터 통신이 18일 전했다.
이와 관련,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지역연구센터장은 “미국은 애초 에너지 시설을 피하려 했지만, 이스라엘이 레드라인을 넘었다”며 “결과적으로 이란의 걸프 시설 공격 명분을 키우고 내부 민심에도 변수를 만들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는 “이스라엘은 전쟁을 끝내지 않을 생각이며 에너지 시설 공격은 전쟁을 장기화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며 “잘못하면 10년 단위 장기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국면”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