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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성인의 읽는 클래식 듣는 문학] 브람스의 죽음을 넘어선 사랑

중앙일보

2026.03.19 08:02 2026.03.19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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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성인 음악평론가·풍월당 이사
브람스(사진)는 독일 문화의 수준을 향상시키는 일을 자신의 소명으로 여겼다. 그의 음악 여정에서 일관성 있게 관찰되는 성실과 인내, 장인다운 진지함과 전통에 대한 존중은 독일적 미덕의 모범이었다.

그러한 지향이 가장 잘 나타난 작품은 ‘독일 레퀴엠’이다. 본래 레퀴엠이란 라틴어 가사로 불리는 ‘진혼미사곡’이다. 죽은 자를 위한 미사곡이므로 일반 미사에서 ‘글로리아(영광송)’가 나올 자리에 ‘디에스 이레’, 곧 ‘진노의 날’이 대신 들어간다. 그러나 브람스는 구약적인 라틴어 레퀴엠보다는 사죄의 은총과 영원의 희망을 약속하는 신약적인 레퀴엠을 쓰고자 했다. 그래서 통상 미사곡의 처음인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대신 루터의 독일어 성경에서 예수의 설교 ‘산상수훈’(마태복음)으로 곡을 시작한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세상에서 약하고 버림받고 멸시받는 이들에게 복을 약속하는 위로의 메시지가 먼저 울려 퍼지는 것이다. 두 번째 곡도 인생의 무상함을 말하긴 하지만 ‘디에스 이레’처럼 심판을 선포하는 대신 남은 자들이 노래를 부르며 본래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희망의 약속을 노래한다.

‘독일 레퀴엠’은 브람스가 어머니를 잃고서 쓴 곡이다. 만년에 브람스는 다시 한번 성경을 가사로 택한다. 평생의 은인이자 은밀한 연모의 대상이었던 클라라 슈만이 세상을 떠난 뒤였다. ‘네 개의 엄숙한 노래’에서 브람스는 죽음과 상실을 거쳐 결국 영원한 사랑을 노래한다. 사도 바울의 고린도후서 13장에 붙인 마지막 네 번째 곡은 사랑에 관한 위대한 묵상이다. 인간사의 모든 상실과 한순간의 에로스를 뛰어넘는 영원한 사랑에 대한 찬가다. 그렇게 브람스는 평생 가장 소중했던 두 사람의 여인과 독일 문화의 정수, 루터 성경을 함께 기념했다.

나성인 음악평론가·풍월당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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