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이 인공지능(AI) 수요 확대에 힘입어 분기 매출이 3배 가까이 급증하며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업황 선행지표로 꼽히는 마이크론 실적이 크게 개선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 실적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마이크론은 18일(현지시간) 2분기 매출이 238억6000만 달러(약 35조8600억원)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전년 동기(80억5300만 달러) 대비 약 3배 증가한 규모다. 시장조사업체 LSEG 전망치(200억7000만 달러)를 크게 웃돌았고, 직전 분기(136억4000만 달러)보다도 70% 이상 늘었다.
실적 급증은 D램과 낸드 가격 상승이 견인했다. D램 매출은 188억 달러(약 28조원)로 전체의 79%를 차지하며 전년대비 200% 이상 증가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AI용 고부가 제품 수요 확대도 실적 개선을 뒷받침했다.
향후 성장세도 가파를 전망이다. 마이크론은 2026 회계연도 3분기 매출을 335억 달러(약 50조원)로 제시했다. 연간 설비투자(CAPEX)도 250억 달러(약 37조원) 이상으로 확대해 AI 수요 대응을 위한 생산능력 확충에 나설 계획이다.
마이크론의 고성장은 AI 메모리 경쟁력과 직결된다. 마이크론은 16일(현지시간) 엔비디아의 연례 개발자 콘퍼런스 ‘GTC(GPU Technology Conference) 2026’ 개막에 맞춰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가속기 ‘베라 루빈’용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 양산 출하를 공식화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마이크론이 보도자료에서 특정 고객을 언급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그동안 제기된 엔비디아 공급망 이탈 우려를 불식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마이크론의 HBM4 양산 합류로 AI 메모리 시장 경쟁은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2026년 HBM 점유율이 SK하이닉스 50%, 삼성전자 28%, 마이크론 22%로 재편되며 ‘3강 구도’가 굳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삼성전자는 전년대비 8%포인트, 마이크론은 2%포인트 점유율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GTC 2026’ 현장에서 차세대 HBM 기술을 공개하며 맞대응에 나섰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직접 행사장을 찾아 “AI에는 그래픽처리장치(GPU)가 필요하고, GPU에는 HBM이 필수다. 우리는 최선을 다하겠다”며 주도권 수성 의지를 강조했다. 삼성전자는 7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E)를 처음 공개하며 엔비디아와의 협력 확대를 부각했다.
기업 간 협력 경쟁도 본격화하고 있다. AI 반도체 시장에서 엔비디아의 핵심 경쟁자로 꼽히는 미국 AMD의 리사 수 최고경영자(CEO)는 2014년 취임 이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과 만나 메모리 반도체 공급망 협력을 논의했다. 네이버 최수연 대표와도 만나 GPU 공급을 협의하며 고객사 확보에 나섰다. 하정우 대통령실 AI미래기획수석과도 면담하며 협력 범위를 넓혔다.
정형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공급사와 고객사가 모두 모여 있는 한국이 반도체 분야의 전략적 요충지로 부상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라며 “엔비디아를 추격하는 AMD 입장에서도 한국 방문은 최우선 선택지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업 간 동맹은 고정돼 있지 않은 만큼 기술 경쟁력 유지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