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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정의 음악의 세계] ‘샬라메의 공습’에 대처하는 법

중앙일보

2026.03.19 08:08 2026.03.19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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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정 음악에디터
한 진영이 공격을 받았다. 적절한 대응은 뭘까.

즉각 응수한 이들이 있었다. “발레와 오페라는 특별한 재능이 있어야 발을 들일 수 있다.”(발레리나 메건 페어차일드) “인공지능의 세상에서 인간이 필요한 곳이 오페라와 발레다.”(안무가 마틴 샤익스)

오페라·발레 디스하는 듯한 발언
관련 종사자들 똘똘 뭉치게 해
통 큰 후원 필요한 현실 일깨워

영화배우 티모시 샬라메가 오페라와 발레에 대한 부적절한 발언을 한 후 거센 비판을 받게 됐다. [AFP=연합뉴스]
발단은 할리우드의 수퍼스타인 티모시 샬라메의 문제적 발언이었다. 그는 지난달 말 CNN·버라이어티가 주최한 토크 프로그램에서 오페라와 발레에 대해 “아무도 관심이 없는데 계속 유지해달라는 식의 일”이라며 “나는 그런 일은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빠르게 후회한 듯 “발레와 오페라 관계자 여러분께 존경을 표합니다”라고 수습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오페라와 발레를 조용히 사랑해온 사람들이 공습경보를 울리고 대대적인 반격을 퍼부었다.

이 과정에서 새삼 부각된 사실이 있는데, 바로 샬라메의 발레 DNA다. 외할머니·어머니·누나가 발레를 배웠고 무용수로 활동했다. 특히 어머니 니콜 플렌더와 누나 폴린 샬라메는 아메리칸 발레 스쿨에서 공부했다. 그가 발레를 몰라서 이런 얘기를 했을까. 오히려 매우 잘 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따라서 정색한 반격이 조금 어색해진다. 발언의 맥락을 보면 더 그렇다. 대화의 흐름은 이랬다. “요즘 영화는 앞부분에 클라이맥스를 배치해 눈길을 끌려고 한다. 하지만 Z세대는 오히려 더 진지한 영화 관객이다. ‘프랑켄슈타인’은 전개가 빠르지 않았지만 관객이 많았다. 나 또한 ‘영화관이 죽어가니 살려달라’고 한 적이 있지만 ‘바비’ ‘오펜하이머’ 같은 영화는 홍보 없이도 사람들이 볼 거라고 믿는 중간적 입장이다.” 여기에 이어서 발레와 오페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매우 악의적인 공격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이런 상황에 적절한 대응 매뉴얼을 쓴다면 다음 두 단체를 꼽아야 할 것 같다. 우선 시애틀 오페라 극장. 이 오페라단은 샬라메의 발언을 영리하게 역이용했다. 5월 열리는 오페라 ‘카르멘’을 예매할 때 할인 코드로 ‘TIMOTHEE(티모시)’를 입력하면 일부 좌석을 14% 할인해주기 시작했다. 티모시가 문제의 방송에서 “시청률이 14% 떨어졌겠다”며 웃었던 장면을 이용했다.

효과가 있었다. 프로모션 게시물은 조회수 320만을 기록했다. 또 시애틀 타임스에 따르면 13~15일 티켓 203장이 할인 코드로 판매됐고 2만8000달러(약 42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오페라와 발레의 숭고함을 강조하는 대신 즉각 행동을 끌어내는 방식이 울린 작은 승전보다. ‘우리가 관심 있어(We care)’라는 문구를 앞세운 런던 로열 오페라, 무대 뒤 수많은 스태프의 노고를 영상으로 빠르게 편집했던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보다 앞섰다.

다음은 뉴욕타임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의 피터 겔브 대표 취임 20주년을 맞아 공들여 취재한 기사를 ‘샬라메 타이밍’에 발행했다. 10년 전보다 2000만 달러(약 298억원) 감소한 티켓 판매금액, 손대지 않는 불문율을 깨고 3분의 1을 인출해야 했던 오페라단 기금, 내년 2월까지 갚아야 할 대출 6200만 달러(약 924억원). 겔브 대표는 사우디 정부의 투자를 유치하고 있으며 일론 머스크에게 우주 오페라 제작을 제안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의 기사는 수퍼스타가 느슨하게 쏜 탄환을 정밀 타격으로 변환시켰다. 현대 오페라가 과감하게 도입해 오페라의 미래가 될 것 같았던 영상화 작업도 오페라단을 심폐 소생할 수는 없음이 증명되고 있다. 제작비와 인건비가 막대한 오페라와 발레는 태생부터 그랬듯 통 큰 후원자를 기다릴 뿐이다. 다만 그 규모가 매우 크다. 겔브 대표의 희망 후원 금액은 10억 달러. 1조5000억원이나 된다.

예고 없이 터진 샬라메 발언은 오페라와 발레 종사자, 애호가를 똘똘 뭉치게 했다. 큰물이 거친 파도 같이 들어오는데도 노를 잘 젓는 곳은 있었다. 그의 발언이 아주 틀리지는 않아서, 현실을 정확하게 보도록 했다. 무엇보다 누군가 여력 있는 이가 이 장르를 멋지게 후원할 시점을 만들어줬다. 이 동네가 오히려 나아질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





김호정([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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