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동 전쟁 이후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훌쩍 넘어 1500원을 오르내리고 있다. 환율 고공행진은 당분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원-달러 환율은 중동사태 훨씬 전인 지난해 9월 이후 계속 달러당 1400원을 웃돌고 있다. 1400원을 넘는 환율은 과거 외환위기 때나 보던 수준이다. 이번 고환율 현상에 대해 생각해 볼 대목이 있다. 지난해부터 달러는 다른 통화 대비 약세를 보이는데, 유독 원화 대비로는 강세를 보였다는 점이다. 〈그림1〉의 미국 달러인덱스(빨간색)는 세계 각국의 통화 대비 미 달러 가격(무역가중평균)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원화 대비 미 달러 가격 (원-달러 환율, 파란색)과 인덱스가 비슷한 하락세를 보이다가 여름부터는 유독 원화에 대해 큰 강세를 보이고 있다.
세계 중앙은행 외환곳간 금 18%
한국, 2013년 이후 금 매입 안해
트럼프의 불합리·변덕 정책 탓에
외환시장 변동성 더 커질 가능성
자본유출·대미투자, 낮은 생산성
고환율 초래하며 양극화 더 심화
원-달러 환율 움직임에는 원화 또는 한국의 경제여건뿐 아니라 달러 또는 미국의 경제 여건도 큰 영향을 미친다. 전반적인 달러의 움직임을 이해하는 것은 원-달러 환율의 움직임이 한국 고유의 여건 때문인지 아니면 달러의 전반적인 변화 때문인지 구분하는 등 원-달러 환율의 움직임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축이다. 그런 면에서 역사적이고 국제적인 시각에서 달러를 조망해 볼 필요가 있다. 세계 넘버원 통화인 달러의 지배는 영원할 것인가? 최근 달러 가치는 왜 하락하는 것인가?
트리핀 딜레마와 신트리핀 딜레마 영국 파운드화가 기축통화였던 시대를 뒤로하고, 세계 제2차대전 이후 달러 중심의 브레턴우즈 체제가 출범했다. 금 1온스와 미화 35달러의 교환을 보장해 달러 가치를 금에 고정시키고, 다른 통화들의 가치는 달러에 고정하는 고정환율제가 출발했다. 하지만 이후 트리핀 딜레마(Triffin Dilemma)라고 불리는 문제가 부각됐다. 이러한 체제가 잘 운영되기 위해서는 원활한 국제 거래를 위해 기축통화인 달러가 세계 각국에 지속적으로 공급되어야 하지만 과도한 공급은 달러의 금 태환에 대한 신뢰를 저하시켰고 결국 고정환율제도의 붕괴를 초래하였다.
이후 국제통화체제는 변동환율제도로 변화했다. 현재까지도 달러는 기축통화 역할을 하면서 달러 중심의 국제 통화 체제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현 체제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먼저 신 트리핀 딜레마(New Triffin Dilemma)가 나타났다. 현 국제통화체제 하에서 각국은 국제 거래와 외환보유액 등을 위해 안전한 달러 자산을 충분히 필요로 한다. 이를 위해 미국은 지속적으로 안전 달러자산이라 할 수 있는 미국 국채를 공급해야 하지만, 이 과정에서 미국의 재정적자와 대외부채가 확대된다. 장기적으로 미국 국채는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은 자산이 되며 달러에 대한 신뢰가 훼손돼 국제통화체제 유지가 힘들 수 있다는 것이다.
달러의 과도한 특권 남용한 미국 또한 미국은 기축통화로써 달러가 가지는 과도한 특권(exorbitant privilege)을 남용해 왔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막대한 통화 발행과 지속적인 재정적자는 물론, 달러의 국제통화로서의 특권을 이용해 대외 금융 제재의 수단으로 활용해 왔다. 예를 들어 2014년의 러시아 금융 제재는 러시아 압박에 많은 역할을 했지만, 이후 러시아와 다른 국가들이 미국 달러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다른 국제 결제 시스템을 모색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전쟁을 일으키면서, 무역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달러 체제에 대한 우려가 더해졌다. 〈그림 2〉는 전 세계 중앙은행의 준비자산 중 주요 통화의 비중을 보여준다. 미 달러는 2015년 60%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후 지속적으로 비중이 하락해 2024년 4분기에 50.3%, 이후 불과 1년도 안 되어 46.4%가 되는 등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더욱 급격히 하락했다.
한편 달러 비중 축소에도 불구하고, 유로·엔·위안 등의 비중은 거의 늘지 않았다. 유로·엔·위안은 여전히 달러의 위상을 대체하기에는 금융 시장의 깊이, 유동성, 경제 및 제도의 안정성, 거래 규모 등 여러 측면에서 미흡하다. 더욱이 일본 경제의 지속적인 저성장 추세, 중국의 자본 통제 등은 엔화와 위안화의 한계를 보여준다.
외환보유액 운용, 긴 안목과 비전 필요 달러 위상이 추락하고 다른 통화의 뚜렷한 약진이 없는 사이에, 금의 안전자산 역할이 확대되고,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은 외환보유액 중 달러의 상당 부분을 금으로 대체했다. 2015년 6%였던 비중이 2025년 3분기 18.4%까지 증가하였고, 특히 2024년 4분기 이후 비중이 4%포인트 이상 급증하였다. 최근에 나타난 금값 폭등에는 달러의 위상 저하와 이에 따른 세계 각국 중앙은행의 금 매입이 명확한 역할을 했고, 민간에서도 금을 사재기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아쉬운 부분은 한국은행의 금 보유 비중이 낮고, 2013년 이후로는 금 매입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계 중앙은행이 금 비중을 3배 정도 늘리는 동안 한국은행은 금 비중을 오히려 줄였다. 올해부터 한국은행이 금 매입을 하기로 하였으나 그사이에 이미 금 가격은 3배 이상 폭등했다. 외환보유액 운용에 긴 안목과 비전이 필요하다.
다시 시선을 한국으로 돌리면, 전반적인 달러 약세 흐름과 달리 최근 한국은 달러 강세를 걱정하는 몇 안 되는 (선진)국가이다. 이번 중동사태 후에도 다른 화폐들에 비해 달러 대비 원화가치가 더 많이 하락했다. 지난해 여름 이후 지속적인 원화 약세가 나타나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여러 요인을 들 수 있다.
환율 상승에 서학개미 역할은 제한적 자본 유출 증가, 특히 해외 주식 매입의 급증은 환율을 상승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종종 언급되는 서학개미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국제수지표의 (서학개미가 포함된) ‘비금융기업등’ 부문의 매입액은 2025년 313.5억 달러로 총 주식매입액 1143.4억 달러의 27% 정도에 불과하다. ‘일반정부’ 부문과 ‘기타금융기관’ 부문의 매입액은 각각 400억 달러 이상이다. 국민연금이 해외주식매입을 조정하는 등 다른 부문의 매입액이 줄어 2026년 1월 ‘비금융기업 등’의 비중은 증가하였으나 50%에는 훨씬 미치지 못한다. 또 하나 유의할 점은 환율 때문에 서학개미·국민연금 등의 해외주식매수를 줄이려다 국민의 투자수익이 크게 줄게 되면 오히려 국민경제에 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향후 예상된 자본 유출도 현재 환율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미국과 관세 협상에서 총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에 합의했고, 이 중 2000억 달러는 현금 형태의 직접투자로 하기로 했다. 외환시장에서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현금 형태를 연간 최대 200억 달러 한도 내에서 약 10년 이상에 걸쳐 분할 투자하기로 했지만, 상당액의 미래 자본 유출이 예상돼, 미래 환율 상승 기대를 형성하고, 이는 미래 여건을 반영하는 대표적인 금융 변수인 현재의 환율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한국의 생산성 저하도 역할을 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발라사-사무엘슨(Balassa-Samuelson)의 이론에 따르면 교역재 부문의 높은 생산성 향상은 실질 환율을 절상시킬 수 있다. 즉 미국에 비해 점점 더 감소하는 한국의 생산성이 원화의 실질 환율을 절하시키고, 이는 명목환율 절하를 이끌었을 수 있다. 미국의 유동성 증가와 재정 적자가 달러 가치를 하락시킬 수 있듯이, 한국의 상대적인 저금리와 유동성 변화, 정부 재정 상황 그리고 향후 재정 상황에 대한 기대도 원화 환율 상승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또한 최근 발발한 중동 전쟁은 안전자산 선호 심리 강화, 유가 급등에 따른 한국의 달러 결제 수요 상승 등으로 환율 상승을 더욱 부추겼다.
환율이 지속적인 고공행진을 하는 상황이지만 그동안 외환보유액의 축적, 대외 달러 부채 관리 등 다방면으로 위기 대비 준비를 해왔기 때문에 위기 가능성은 이전에 비해서는 작다. 하지만 트럼프의 예측하기 어려운 불합리하고 변덕스러운 정책들은 외환시장의 변동성을 급격히 상승시킬 수 있기에 만전을 기해야 하고, 환율 상승에 영향을 미치는 국내 경제 여건에도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한편 현 상황에서 고환율 지속으로 발생하는 또 다른 중요한 이슈는 양극화 심화이다. 고환율이 지속함에 따라 수출 중심의 기업들은 더 많은 이익을 얻고 있지만, 내수 중심의 기업들, 자영업자들은 수입 재료비 상승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동 전쟁 이후 유가 상승 등으로 그 어려움은 가중됐다. 현재 전체적인 수치로 나타난 경제 상황보다 이들이 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도 간과하면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