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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의 시선] ‘빵집 주인의 이기심’ 간과한 노란봉투법

중앙일보

2026.03.19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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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논설위원
정치인들이 정치적으로 편향된 한쪽의 말만 듣고 제도를 만들면 부작용이 뒤따른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 도입된 비정규직보호법이 그런 경우다. 기업이 비정규직을 늘려나가자 근무기간 2년을 초과하면 정규직으로 고용하도록 의무화한 법이다. 얼마나 좋은 취지인가. 공정과 정의, 취약계층에 대한 배려가 떠올라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러나 현실은 이상과 달랐다. 대다수 기업은 2년이 되면 계약직 직원을 기계적으로 내보냈다. 제도에 대한 시장의 역습이다. 결과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못한 청년들은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청춘을 보낸다.

하청 노조의 교섭 요구 봇물
사용자는 로봇 더 늘리게 돼
교섭 범위 좁혀야 노사 상생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최저임금 1만원 정책도 많은 사람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 제도였다. 최소한 시급 1만원은 받아야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는 것 아니냐는 취지였다. 시장의 역습은 거셌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은 취약계층인 비정규직부터 내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아르바이트 직원을 내보내는 편의점 사장이 줄을 이었다. 최저임금이 가파르게 오르자 키오스크가 봇물 터지듯 설치되면서 종업원 자리를 대체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이던 2012년 국무회의를 통과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전통시장 보호를 명분으로 대형마트 의무휴업과 영업시간 제한을 강제한 이 제도는 유통시장 전체를 보지 않고 대형마트 규제 필요성을 강조한 쪽의 얘기만 들었다. 그 사이 온라인 유통이 급성장했고, 획일적 규제로 한국 기업의 손발이 묶인 틈을 타 유통시장은 미국계 쿠팡 중심으로 재편됐다.

지난 10일 시행된 노란봉투법의 파장은 앞선 세 정책보다 더 클 수 있다. 노동조합법을 개정한 이 제도 시행 첫날 407개 사업장에서 “진짜 사장 나오라”는 하청 노조의 투쟁이 막을 올렸다. 시장의 역습은 이미 시작됐다. 기업들은 로봇 투입과 공장 자동화를 서두르고 있다. 이에 따른 경제적 귀결은 일자리 위축이다. 이를 막기 위해 노조가 반발하겠지만, 시대적 흐름인 로봇 투입과 공장 자동화를 막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오히려 하청 노조의 무차별적 교섭 요구는 로봇 투입 속도를 더 재촉할 수 있다.

비정규직보호법, 최저임금, 유통산업발전법, 노란봉투법은 모두 정의로운 취지를 내세운 정책이다. 하지만 경제적 귀결은 취약계층의 일자리 기반을 흔들고 경제 생태계를 오히려 불안하게 만드는 시장의 역습으로 이어졌다. 왜 이런 정책 실패가 반복될까. 한쪽만 보기 때문이다. 정통 경제학자는 단정적으로 말하는 법이 없다. 어떤 정책이 있으면 “한편으로는 효과가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부작용이 있다”는 점을 반드시 말한다. 오죽했으면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어디 한손잡이 경제학자 없느냐”고 했을까.

정부는 서둘러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원청 기업과 하청 노조의 분쟁이 발생하면 노동위원회 조정 절차를 거쳐 노사가 자율적으로 풀어나가도록 하자는 식으로는 부족하다. 노사 분쟁이 늘어나는 것 자체보다 더 큰 우려는 사람이 해도 될 일자리까지 급격히 로봇으로 대체되는 사태다. 이 정책을 국회에서 통과시킨 국회의원 자신이 기업을 경영한다면 어떤 판단을 하게 될지 생각해보면 결과는 자명하다. 하청 노조와 일일이 경영상 사항을 논의하고 끝없는 임금 인상 요구를 받게 된다면 기업 경영자는 하청과의 거래를 끊거나 줄이는 출구를 찾게 된다. 이런 인간의 이기심이 시장경제의 원리다. 애덤 스미스가 250년 전 『국부론』에서 빵집 주인은 자비심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 빵을 만든다고 설명한 그대로다.

물론 노란봉투법의 취지 자체를 반대할 사람은 많지 않다. 기업 활동이 아무리 분업화·전문화되었다고 해도 원청 기업이 생산 활동의 성과를 독점한다면 경제 생태계는 유지되기 어렵다. 이재명 대통령이 SNS에서 말했듯 호랑이도 풀밭이 있어야 생존한다. 초식동물이 살아야 호랑이도 산다는 뜻일 것이다.

노사 상생을 위해 노란봉투법이 필요하다면 사용자도 수용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법은 유지하되 허용된 행위만 가능하고 나머지는 금지하는 ‘포지티브 방식’으로 하청 노조의 무차별적 교섭 요구를 제한해야 한다. 지금처럼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친다면 경영상 사항도 교섭 대상이 되고, 노조가 원하면 교섭창구를 단일화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라면 기업은 연중 노사 교섭으로 몸살을 앓게 된다. 하청 노조의 원청 교섭 요구도 사용자성이 명확할 때만 가능해야 한다. 정부는 무차별적 교섭 요구가 가능한 현행 시행령 해석 지침을 조속히 고쳐 써야 한다. 불 보듯 뻔한 혼돈의 경제적 귀결을 방관해서는 안 된다.





김동호([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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