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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박물관 박제, 그 후 잊혔다…테슬라 앞서고도 몰락한 기업

중앙일보

2026.03.19 13:00 2026.03.19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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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개발된 혼다의 휴머노이드 아시모(ASIMO). 달리기와 뜀뛰기 등의 기능을 업그레이드 했지만, 별다른 활용처를 찾지 못한 채 프로젝트가 종료됐고 2022년 공식 은퇴를 선언했다. 연합뉴스
“전기차를 생산할수록 손실이 커진다. 미래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창자를 끊는 마음(断腸の思)으로 결단했다.”

일본 2위 자동차기업인 혼다의 미베 토시히로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2일 전기차 프로젝트 포기를 공식화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 결정으로 투자는 중단됐고 관련 금액이 모두 손실로 확정되면서 혼다는 1957년 상장 이후 69년 만에 최초로 연간 적자를 기록하게 됐다. 2025회계연도(2025년 4월~2026년 3월) 기준 최대 6900억엔(약 6조4540억원)의 적자가 예상된다.

‘엔진의 혼다’, ‘기술의 혼다’로 불린 혼다는 뛰어난 기술력으로 현대차는 물론 테슬라보다 먼저 혁신을 보인 기업이었다. 1997년 양산 전기차 ‘EV플러스’를 내놨고, 2000년엔 이족보행 휴머노이드 ‘아시모(ASIMO)’를 선보였다. 하지만 이제는 시장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또 하나의 기업 사례로 남을 위기에 처했다.

혼다가 3종의 전기차 신차를 포기로 입게 될 손실은 향후 회계연도까지 무려 2조5000억엔(23조3800억원). 여기엔 자체 투자비는 물론, 부품 공급을 준비하던 협력업체에 보상해야 하는 막대한 비용까지 포함됐다.

지난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쇼(CES)'에서 공개된 혼다의 '제로 시리즈' 전기차 모델. 혼다가 전기차 프로젝트를 포기하면서 이 차는 결국 출시되지 않았다. 연합뉴스
2024년만해도 혼다는 ‘제로 시리즈’ 전기차 프로젝트를 공개하며 2030년까지 10조엔 투자를 선언했다. 전기차 개발이 늦은 만큼 과감한 투자로 역전을 시도했다. 하지만 전기차 캐즘(수요정체)이 길어졌고, 2년이 지나도록 신차가 나오지 않으면서 시장에서 존재감은 점차 약화했다. 경쟁사들이 전기차 투자를 줄여나가는 시점에 반대로 움직인 결과는 처참했다.

자동차 업계에선 빠르게 변하는 시장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한 기업은 누구든 혼다와 같은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 캐즘에 어떻게 대응했는지가 성적표를 갈랐다. 지난해 미국시장 판매량을 보면 현대차그룹은 7.5%, 토요타도 8% 성장했지만 혼다는 평균(2.2%) 이하인 0.5% 성장에 그쳤다. 현대차는 내연차·하이브리드·전기차까지 균형잡힌 라인업을 갖춰 선전했고, 토요타는 강점인 하이브리드에 주력하며 캐즘에 대응했다.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혼다는 중국의 내연차 퇴출이란 흐름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한 상태에서 미국 관세란 변수를 맞아 결국 중국에도, 미국에도 차를 팔기 어려운 상황에 빠졌고, 뒤늦은 대규모 전기차 투자로 무너졌다”고 분석했다.
미베 토시히로 혼다 CEO. AP=연합뉴스

핵심은 시장 요구에 맞는 기술을 개발하느냐다. 혼다는 2000년 세계 최초로 이족보행 휴머노이드 아시모를 내놨지만, 기술 시연 외에 수익화 전략이 없었다. 박물관에 전시되던 아시모는 결국 2022년 프로젝트 종료와 함께 은퇴했다. 반면 현대차그룹의 ‘아틀라스’나 테슬라의 ‘옵티머스’ 등은 산업 현장에 배치해 수익을 내겠다는 로드맵이 확실하다.

전문가들은 기술의 의미가 달라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과거 일본 제조업의 경쟁력은 ‘스리아와세(擦り合わせ·미세조정)’와 ‘장인정신’으로 설명됐지만, 워낙 변화의 속도가 빠른 지금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과 명예교수는 “엔진 기술은 오래 축적된 장인정신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빠른 결단과 실행이 필요한 시대다. 일본 장인정신의 위기이고, 모험적 기업가정신의 시대가 된 것”이라고 짚었다.

혼다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기를 강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조철 연구위원은 “그간 현대차는 한두개가 실패해도 두세개를 새로 하는 식의 빠른 연구개발로 경쟁력을 키워왔다. 소프트웨어중심차량(SDV), 자율주행 등에서도 빠른 의사결정과 연구개발 투자가 필요하다”고 했다.



남윤서([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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