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드블러드] 2014년 경기 파주 무인모텔 살인사건 내막 공장서 발견된 상반신 시신…범인은 30대 성매매 여성 SNS로 만난 남성 살해 후 훼손…시체 사진 보여주자 ‘씩’
2014년 5월 31일 13시.
인천시 남동공단의 한 화학공장 앞 담벼락에 남동경찰서 강력2팀 형사들이 다가가자, 앞서 현장에 출동한 파출소 경관들이 경례한다. 그리고는 담벼락에 쳐둔 폴리스라인으로 형사들을 안내한다. 거기엔 여행용 캐리어가 놓여 있다.
경관이 보고한다. “여기 직원이 좀 전에 신고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없던 건데 오늘 아침에 눈에 띄었다고요.”
왜 반쯤 열려 있냐는 강력2팀장의 추궁엔 신고자가 호기심에 열어봤다고 대답한다. “근데 더는 건드리면 안 되겠다 직감해서 손을 뗐답니다. 냄새도 역하고 파리도 들끓는 게 영 이상했다고.”
강력2팀장은 허리를 숙여 폴리스라인 안으로 들어간 뒤 쭈그려 앉아 캐리어를 살펴본다. 안에는 커다란 물체가 담긴 빨간색 부직포 비닐이 들어 있다. 노끈 여러 개가 내용물이 흘러나가지 않도록 비닐을 꽉 묶고 있는데, 가만 보니 습기가 서린 비닐 겉면으로 핏물이 고여 있다. 강력2팀장은 일어서면서 콧잔등을 매만진다. 공기 중에 훅 끼쳐오는 썩은 내는 익숙한 시체 냄새다.
곧이어 과학수사팀(이하 ‘과수팀’)이 와서 임장(臨場)을 시작한다. 공장 직원들이 무슨 일인가 구경하러 오지만 형사들이 최대한 떨어져 있으라고 경고한다. 현장 보존은 강력계에서 신성불가침이다. 사소한 족적이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되는 때도 있다. 유류품, 침, 타액, 소변, 머리카락, 담배꽁초 등 모든 게 단서다. 과수팀이 현장의 단서를 채취하는 작업을 마칠 때까진 형사들조차 함부로 현장을 돌아다니지 않는다. 그들도 폴리스라인 안으로 들어가려면 원칙상 마스크를 쓰고 장갑을 끼고 구두에 덧신을 끼워야 한다.
이윽고 과수팀이 조심스럽게 캐리어를 열어 부직포 비닐을 꺼낸다. 비닐 상단을 풀어내자 누가 헛기침을 한다. 안에는 죽은 남성의 상반신이 있다. 머리와 몸통, 팔, 골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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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캐리어에 담긴 상반신 시체
강력계 형사들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자신이 이 직업을 갖게 됐는지 모른다며 냉소하기도 한다. 일반인은 평생에 걸쳐 한번 보기도 어렵다는 살인 사건 시체를 마주하는 게 일상의 업무이기 때문이다. 칼에 난도질당한 시체, 둔기에 두개골이 함몰된 시체, 불에 탄 시체, 중장비에 깔린 시체, 몸통에 갯강구가 들러붙은 채 항구에서 건져 올려진 시체 등.
이날 현장의 시체는 정교하게 잘려 있었다. 살과 근육은 짓이겨져 있지만 뼈는 도려낸 듯 단면이 깨끗했다. “전기톱으로 썰어낸 거예요.” 과수팀 직원이 말한다. 피해자는 30~50대 남성이며 흉기에 수십 회 찔려 사망한 것으로 추정됐다.
남동경찰서 형사과 5개 팀은 강력2팀장의 주관으로 남동공단 전역에 대한 현장 수사에 돌입했다. 1팀은 시체를 유기한 범인이 남동공단을 돌아다닌 동선을 역추적하고자 일대 CCTV를 전수조사하는 업무를 맡았다. 그들은 화학공장을 중심으로 부채꼴로 펼쳐나가며 인접지의 CCTV를 확보하고 다녔다. 신고자가 전날 퇴근할 때까지 캐리어를 못 봤다고 했기에 영상 재생 시간은 전날 22시경부터 이날 04시경 사이로 추려졌다.
3팀은 발견되지 않은 하반신이 남동공단 어딘가에 버려졌을 수 있다는 가정 하에 다른 공장이나 길가, 공터, 도로를 탐문했다. 캐리어나 붉은 부직포 비닐이 주요 물색 대상으로 일부는 쓰레기 분리수거장까지 훑었다. 4팀은 전날 심야에 남동공단을 배회한 거동수상자를 본 적 없냐며 공단 직원들을 탐문했고, 5팀은 시신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 의뢰할 영장 서류를 작성하고 인천지검에 살인 사건을 보고하는 행정 절차에 들어갔다. 2팀은 주무 수사팀으로 서에서 모든 수사 과정을 총괄했다.
3시간쯤 지난 시각, 1팀의 형사들이 복귀해 특이사항을 보고했다.
“팀장님, 이거 보세요. 화학공장 앞 CCTV에서 나온 건데. ” 1팀이 입수한 CCTV를 틀자 30일 23시 57분경, 은색 승용차가 공장 앞에 서더니 10분가량 머물다가 떠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은색 차량이 사라진 후 이전에 없던 캐리어가 놓여 있다. 범인이다.
다만 야간이라 어둡고 화질이 떨어지는 탓에 이 영상만으로는 차량 번호가 식별되지 않는다. 수십 개의 다른 CCTV 영상을 돌려가며 은색 차량이 어디를 경유해 어디로 빠져나갔는지를 추적해보지만, 번호판은 여전히 흐릿하다. 그때 자동차에 조예가 깊은 형사가 미등 모양이 국산차는 아닐 거라고 말한다. “크라이슬러 같은데요? 가만 보니까 프런트 펜더도 찌그러졌고.”
그때부터 은색 크라이슬러가 등장한 영상을 모두 짜깁기해 현미경 보듯 동선을 따라간다. 그리고 31일 0시 43분, 크라이슬러가 경기 일산 방면의 김포 톨게이트를 빠져나가는 장면에서 번호판이 드러난다. 차주는 35살 여성 고미영(가명). 경기 파주의 모 아파트에 거주 중이다.
“남편이 나간 게 5월 26일이었어요. 서울에 미팅이 있어서 고객 만나러 나간다고. 근데 다음날에도 안 들어오고 전화기도 꺼져 있으니까….” 피해자 김성원(가명·50)의 부인이 진술한다. 그에 따르면 27일 서부경찰서에 남편의 실종 신고를 했다. 서부경찰서에 문의하자 그쪽에선 피해자의 차량인 소렌토가 경기 파주의 자동차극장 주차장에 세워져 있던 걸 발견했다고 설명한다.
“아니, 서울 간다는 남편의 차가 왜 파주에서 발견됐을까요.” 형사의 물음에 부인은 본인이 어떻게 아냐며 고개를 젓는다. 형사들은 조사실에 부인을 몇 시간 더 붙잡아두며 속내를 읽어내려고 노력한다. 평소 자주 싸웠는지, 외도를 의심한 적 없는지, 혹은 금전 문제로 갈등이 일어난 적은 없는지. 부인의 진술이 사실에 입각했는지 따져보기 위해 피해자의 1년치 휴대폰 통화 내역과 문자 메시지를 뽑아내 부인의 진술과 대조해본다. 강력계 업무에는 인정이나 연민 같은 휴머니즘에 사로잡힐 여유가 없다. 특히나 살인 사건의 범인이 가족의 소행으로 드러난 사건이 얼마나 많은지 안다면. 용의자 명단에서 가족을 삭제할 때는 모든 인과관계를 파악한 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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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에게 거짓말하고 외출한 피해자
물론 그 덕분에 수사의 실마리를 얻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 사건이 그렇다. 피해자가 생전 마지막으로 통화한 상대가 크라이슬러 차주로 나온 것이다. 발신 위치도 피해자의 소렌토가 발견된 자동차극장 근처다.
한편 피해자의 계좌를 확인하자 그가 숨진 뒤에도 누가 신용카드와 체크카드를 18회나 사용한 흔적이 나왔는데, 그중에는 단순히 넘기기 어려운 구매 물품이 있었다. 5월 27일 정오 경기 일산 매장에서 여행 캐리어 구매, 같은 날 14시 일산 철물점에서 전기톱 구매, 28일 운반용 손수레, 부직포 비닐 구매 등이다.
시체를 토막 내고 유기한 범인이 분명하다. 27~ 28일 사이엔 파주의 한 무인모텔에서 숙박을 연장한 내역도 나왔다. 범행 현장일 개연성이 짙다.
31일 밤, 강력2팀 임상도 형사는 후배와 함께 고미영이 거주하는 파주의 모 아파트로 향했다. 법원에 신청한 고미영에 대한 체포영장은 아직 발부되지 않은 터라 당장 수갑을 채울 순 없지만, 도주 위험성을 고려해 감시 차원에서 미리 간 것이다. 당시는 경찰이 긴급체포를 남발한다는 법조계의 지적에 검찰에서 영장 승인을 안 해주는 기류가 강했다. 그래서 피해자 사후 카드가 결제된 사업장을 방문해 누가 카드를 썼는지 CCTV를 확인하고 카운터 직원의 진술까지 영장 신청의 근거 자료로 첨부하고 나온 터였다.
CCTV에는 분홍색 꽃무늬 투피스 또는 검은 원피스 차림의 고미영이 모두 등장했다. 철물점 주인은 여성이 전기톱을 구매하는 게 신기해 어디에 쓸 거냐고 묻자, 그녀가 태연하게 “아버지가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셔서 갖다 드리려고” 했던 것을 기억해냈다. 손수레가 무거울 듯해서 대신 트렁크에 넣어주겠다고 하자 손사래를 쳤던 것도.
임상도 형사는 우선 그녀가 거주하는 동의 지하 주차장에서 은색 크라이슬러를 발견했다. 운전석이며 조수석 창문이 손가락 마디만큼 내려가 있었는데 그 틈새로 지독할 정도의 복숭아 방향제 냄새가 흘러나온다. 그사이 희미하게 섞인 피 냄새도.
체포영장이 나온 것은 이튿날 6월 1일 오전, 임상도 형사는 쓰레기를 버리러 검은 봉지를 손에 쥐고서 아파트 입구를 나오던 고미영을 가로막았다. “누구세요”라고 묻는 고미영에게 그는 경찰 수첩을 보여준 뒤 남동경찰서에서 나왔다면서 체포영장을 제시했다. “인천지법 법원장에 의해 고미영 씨를 살인 혐의로 체포하는 겁니다.”
“저를요? 왜요?”
“김성원 씨 알죠? 그쪽이 죽였잖아요.” 고미영의 침묵을 무시하고 임상도 형사는 계속한다. “본인 차에 전기톱하고 캐리어, 부직포 비닐 들어 있는 것도 봤습니다. 근데 차에다 방향제는 왜 그렇게 뿌렸어요?”
“… 피 냄새 나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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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시체 사진 보고 왜 웃었을까
강력2팀은 유치장에 가둔 고미영에게서 피해자 하반신은 파주 남서부 지역 한 농수로에 유기했다는 진술을 받아낸 후 시체를 수거했다. 취조 결과, 고미영은 피해자와 5월 25일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애인하자’ 등 성매매 목적의 문자를 주고받은 뒤, 26일 파주 자동차극장에서 접선했다. 둘 다 차를 끌고 온 터라 피해자의 소렌토는 주차장에 세워두고 둘은 고미영의 크라이슬러를 타고 인근의 무인모텔에 출입했다.
그런데 돌변한 고미영이 평소 소지하던 칼로 소파에 있던 피해자를 41회에 걸쳐 찔렀고, 이후 피해자의 신용카드로 추가 숙박 결제를 하고는 외부로 나가 전기톱 등을 구매했다. 모텔 객실 화장실에 루미뇰 시약을 뿌리자 욕조부터 타일까지 사방이 시퍼렇게 발광했다.
고미영은 체포된 당일 피해자가 자신을 강간하려 해서 죽인 거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2차 조사에서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제가 왜 여기 있어요? 제가 왜 조사받아요?”
취조 담당 형사는 어이없어서 피해자의 시체 사진을 보여주며 추궁했는데, 고미영은 그걸 보더니 씩 웃더라는 것이다. ‘야, 이거 제정신 아니구나. 확 소름이 돋았다.’(담당 형사의 회고)
“꿈꾸고 온 거야, 뭐야. 왜 그래? 사실대로 얘기해.”
“제가 왜요?”
고미영의 주거지는 머리카락 한 올도 발견되지 않을 만큼 깨끗했다. 거실이며 방에는 고가의 명품 브랜드가 다수 발견됐는데 정작 크라이슬러 할부와 통신요금은 밀려 있었다. 대부업체의 빚 독촉은 일상이었다. 과거 피아노 강사를 하다 관뒀다고 했지만, 그녀 가족들은 그런 적 없다고 진술했다. 조사 결과, 고미영은 수년간 성매매로 생활비를 벌어왔다. 피해자를 살해한 뒤에도 시체가 담긴 캐리어를 뒷자석에 둔 채 또 다른 성매매 남성을 자기 차에 태우고 모텔로 향하기까지 했다.
아울러 피해자가 강간을 시도한 정황도 발견되지 않았다. 형사들은 고미영이 허영과 물욕 때문에 범행을 저질렀을 거라고 판단했다. 실제로 피해자 신용카드로 귀금속 등을 구매하는 데만 총 2100여만원을 결제하려다 실패하기도 했다.
법정에서 고미영은 자신이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으며 피해자를 살해하거나 유기한 것도, CCTV에 나온 여성도 모두 본인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1심은 이를 모두 기각하고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사이코패스 진단검사 결과는 정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