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유럽 TV 생산의 핵심 축이었던 슬로바키아 갈란타 공장을 설립 24년 만에 폐쇄한다. 글로벌 TV 시장의 장기 저성장과 현지 생산 비용 상승이 겹치며 수익성이 악화하자, 사업 운영 효율화를 위한 구조 재편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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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유율 1위’의 역설…결국 철수
20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슬로바키아 갈란타 TV 공장 가동을 오는 5월 최종 폐쇄하기로 하고 관련 절차에 착수했다. 약 700명의 현지 인력에 대해서는 재취업 지원 방안을 마련한다.
2002년 설립된 이 공장은 한때 “만드는 대로 팔려나가 수송 트럭이 부족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유럽 시장 공략의 핵심 기지였다. 날개 단 듯 팔렸던 ‘보르도TV’(2006년 출시)의 생산을 담당했던 덕분이다. 액정표시장치(LCD) TV인 보르도 TV는 측면에 위치했던 스피커를 아래로 옮기고, 와인을 연상케 하는 곡선형 모서리와 붉은색을 적용했다.
하지만 시장 환경은 빠르게 얼어붙었다. 삼성전자 가전·TV(DA·VD) 사업부는 지난해 4분기 매출 14조8000억원을 기록했지만, 영업손실 6000억원을 내며 적자 폭이 직전 분기(약 1000억원) 대비 5000억원 늘었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 기준 지난해 글로벌 TV 시장 점유율은 15%로 여전히 1위인데도, TCL(13%)과 하이센스(12%) 등 중국 업체의 거센 추격 속에 가격 경쟁이 심화한 탓이다.
여기에 전 세계적인 TV 수요 둔화까지 겹치며 수익성은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평가다. 슬로바키아 현지 매체 우이소(Új Szó)는 로베르트 피초 슬로바키아 총리의 말을 인용하며, “최근 몇 년간 두드러진 세계 TV 수요의 급격한 감소가 공장 폐쇄의 결정적 배경이 됐다”고 전했다. 이렇다 보니 과거 ‘TV의 제왕’이던 일본 소니는 지난 1월 사실상 TV 사업을 접는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원가 부담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가파른 현지 인건비 상승과 인근 국가 대비 높은 에너지 비용이 경영 압박을 가중했다. 야로슬라프 질카 삼성전자 슬로바키아 법인 부사장은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결정은 글로벌 TV 제조 시장의 광범위한 구조적 변화를 반영한 것”이라며 “슬로바키아의 높은 에너지 가격 또한 경영 환경 변화에 영향을 미친 주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세계 1위’ 타이틀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고비용 구조를 타파하기 위해 생산 거점 재편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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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띠 졸라매자”…출구 전략은
실제로 삼성전자는 TV, 가전, 스마트폰 등을 담당하는 디바이스경험(DX)을 중심으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경영지원담당(최고재무책임자·CFO) 주도로 지출 구조를 점검하고, 해외 출장 경비도 대폭 삭감 중이다. 그중 하나로 부사장급 이하 임원들은 해외 출장 때 ‘비즈니스석’ 대신 ‘이코노미석’을 타야 한다. ‘프리미엄 TV’와 ‘인공지능(AI) TV’ 등 고부가 제품 전략을 고수하고 있지만, 시장 반등 기약이 없자 내부적으로 ‘비상 경영’ 기조가 한층 강화되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단순한 비용 절감을 넘어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류형근 대신증권 연구원은 “AI 시대에 맞춘 사업 구조 전환을 추진할 수 있는 환경”이라며 “삼성전자의 견고한 재무 체력을 고려하면 향후 유의미한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사업 재편에 나설 가능성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