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을 향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호르무즈 해협 군사 작전 참여 압박이 거듭되고 있는 가운데 청와대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20일 “중동 상황은 국제 정세상 중대 사안으로 장기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며, 특히 호르무즈 해협의 통항 차질은 우리 에너지 수급과 경제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호르무즈 해협 상황에 대한 우리의 기여 방안과 관련해 미국을 포함한 주요 우방국과 긴밀히 소통 중이며 다각적인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우리 정부는 국제 해상교통로의 안전과 항행의 자유가 모든 국가의 이익에 부합하고, 국제법 보호 대상이며, 이에 기반해 글로벌 해상 물류망이 조속히 정상화 될 수 있기를 바라는 기본 입장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 국내법 및 절차와 한반도 대비 태세 등을 고려하면서 대처 방안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며 “우리의 국익에 최적화된 선택지의 조합을 모색 중”이라고 밝혔다.
사실상 봉쇄 상태에 가까운 호르무즈 해협 상황에 대해서는 미국뿐만 아니라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와 국제해사기구(IMO) 등도 국제사회 차원의 공동 대응 필요성을 제기한 상태다. 이에 따라 다른 국가들 역시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각자의 기여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이날 청와대의 입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에서 일본 측을 강하게 압박한 가운데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모든 면에서 일본으로부터 엄청난 지원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일본이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는 달리 정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믿는다”며 일본 측의 대(對)이란 대응 참여를 간접적으로 요구했다.
이에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는 “일본 법률의 범위 내에서 가능한 조치와 불가능한 조치가 있다”며 일본 국내 법규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고 한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기습에 대해 누가 일본보다 더 잘 알겠나. 왜 진주만 공격에 대해 저에게 말해주지 않았는가”라는 뼈 있는 농담을 남겼다.
일본과 유럽연합(EU) 소속 국가를 포함한 미국의 다른 우방들도 호르무즈 해협 파병엔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 정부 역시 미국 측이 공식 파병 요청을 하더라도 국회의 파병동의안 의결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2019년 미국·이란 갈등 때는 파병동의안 의결 없이 청해부대의 작전 범위를 호르무즈 해협으로 넓혔지만, 당시와 달리 이번엔 전시 상황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재 임무를 수행 중인 청해부대 47진이 운용하는 4400톤급 구축함인 대조영함(DDH-977)은 드론 등 최신 무기에 대한 대응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상태다.
민주당 일각에선 국회 파병동의안 통과가 쉽지 않을 거란 전망도 나온다. 이기헌 의원은 지난 16일 페이스북에 ‘파병 반대’ 입장을 낸 뒤 미국 대사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고, 한·미 연합군 사령부 부사령관 출신인 김병주 의원도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반대 입장을 공식화했다. 다만, 국방부 대변인 출신으로 국방위 간사인 부승찬 의원은 20일 S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정부에서 ‘적극 검토’ 정도는 (입장을) 내야 한다”고 했다. 한국갤럽의 17~19일 전화면접 여론조사에선 우리 군함의 호르무즈 해협 파견에 대해 “파견하지 말아야 한다” 55%, “파견해야 한다” 30%로 나타났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이란 사태 장기화에 대비해 원유 이외에도 나프타·액화천연가스(LNG) 등 공급망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부는 중동 상황에 따른 나프타 수급 불안에 대응해 업계와 긴밀하게 소통하며 나프타 대체 도입을 지원 중”이라며 “이미 밝힌 대로 나프타의 해외 유출을 최소화하기 위한 수출 관리 조치를 시행할 예정이며, 필요한 추가 조치 가능성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카타르가 장기 공급 계약의 불이행 가능성을 시사한 LNG는 당분간 수급에 차질이 없다고 정부는 판단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카타르산 LNG 비중(올해 14%)이 높지 않고, 대체 수입처도 있어서 가스 수급에는 문제없는 상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