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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호르무즈 파병 딜레마, 선례에서 묘수 찾아야

중앙일보

2026.03.20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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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선물과 배려 외교로 예봉 피한 다카이치



정부, 대미 투자 프로젝트 조속히 방향 잡아야



이라크전 비전투병 파견 선례 등에 해답 있어


이란 사태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 상황도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상황이 교착에 빠질수록 한국 등 호르무즈 항로 의존도가 큰 나라들의 어려움은 배가될 것이고, 해군 함정 등 파병을 요구해 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압박도 계속 높아질 것이다.

그런 가운데 같은 압박을 받아온 일본의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미국을 방문해 그제(19일)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했다. 2024년 기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 수입 의존도는 한국이 62%, 일본이 69%여서 두 나라의 처지가 대동소이하다. 그런 점에서 다카이치의 방미 행보는 한국에도 참고가 될만한 점이 많다. 다카이치 총리는 우선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기 전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규탄하고 안전한 항로 확보를 위해 행동에 나설 수 있다’는 7개국 공동성명에 참여해 대이란 공격의 적법성을 놓고 비판을 받아온 트럼프 대통령의 체면을 세워줬다. 그러면서 평화헌법 체제에서 자위대 파견이 쉽지 않은 점을 설명하고 법 테두리 안에서 할 수 있는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대신 파병 못지않게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관심사인 대미 투자와 관련해 다카이치는 선물 보따리를 안겨줬다. 소형모듈원자로(SMR) 건설을 포함해 총 730억 달러(약 109조원)에 달하는 2차 프로젝트를 추진키로 했다. 이는 1차 프로젝트의 360억 달러의 두배가 넘는 액수다. 다카이치 총리는 아베 전 총리가 애용했던 “일본이 돌아왔다”는 표현까지 쓰면서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했다.

정부는 한·일 외교채널을 가동해 다카이치 총리의 방미 결과를 공유 받고 향후 대응에 참고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이란 사태의 향방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머릿속 구상을 다카이치 총리를 통해 듣는 것은 향후 한국의 정책 결정에 활용할 수 있다. 국가안보실 차원의 소통은 물론 당초 3월 중 논의되던 다카이치 총리의 셔틀 외교 재개도 조속히 추진하길 바란다.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7개국 공동 성명에 추가로 참여해 안전한 항로 확보에 대한 의지를 밝힌 건 환영할 만한 일이다. 또 정부는 대미 투자 프로젝트 추진에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 일본이 2차 프로젝트까지 합의한 상황에서, 우리도 조선, 원자력, 에너지 등 투자비 회수 및 수익이 예상되는 투자처를 선점하는 노력을 가시화할 시점이다. 트럼프 시대 한·미 관계에 있어 통상과 안보 이슈는 분리할 수 없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통상 분야의 합의 이행이 파병 요구,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주한미군 위상 등 각종 안보 현안 협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트럼프 1기 때인 2019년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미국이 ‘호위 연합’을 추진할 때의 전례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본은 조사·연구 목적의 자위대 함정 파견, 한국은 아덴만 청해부대의 활동 범위 확대 카드를 통해 미국 요구를 일부 수용하되, 전쟁 개입 가능성을 최소화했다. 이에 앞서 2003년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파병 요구 사례도 참고했으면 한다. 당시 대규모 전투병 파병 요구에 정부는 이라크 내 상대적으로 안전한 지역에 3000명 수준의 비전투병 파병이란 대안을 찾은 바 있다.

이와 함께 정부는 과거 이라크 파병 요구를 둘러싸고 우리 사회가 극심한 국론 분열에 빠져들었던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 특히, 6월 지방선거를 앞둔 터라 더욱 우려된다. 정치권은 이념적·정략적 접근을 지양하고 함께 국익을 지키고 동맹을 배려하는 최선의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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