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화범은 주로 바람이 많이 부는 주말 야간시간대를 노린다. 또 낙엽 등 가연성(可燃性) 물질이 많은 곳을 선호한다. 이 같은 방화범 특성을 바탕으로 바위 상태, 토양색, 산불 패턴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화재 원인을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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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발화지 규명 등 단서와 증거 찾아
경남 함양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의 방화범이 최근 검거된 가운데 산림청의 산불 감식 방법이 주목을 받고 있다. 산림청 감식반을 중심으로 최초 발화지를 규명하는 등 방화검 검거에 중요한 단서를 찾았기 때문이다.
경남경찰청은 지난 16일 산불 방화혐의로 A씨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A씨는 15년 전 울산에서 96차례 산불을 내다 붙잡힌 희대의 연쇄 방화범 ‘봉대산 불다람쥐’였다. 함양 산불은 지난달 21일 오후 함양군 마천면 창원리 야산에서 시작돼 40시간이 지난 뒤에야 주불이 진화됐다. 이 불로 임야 234㏊가 탔고 피해액은 9억5449만원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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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화범은 불이 잘나 관심 끌 상황 선호
불이 꺼지자 산림청 산불 감식팀은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요원 등과 현장에 출동했다. 감식팀은 우선 산불이 날 당시 기상 조건과 시간 등을 분석하고 누군가 일부러 불을 냈을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감식팀에 따르면 방화범은 산불이 확산하기 좋고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 만한 조건을 고른다고 한다. 또 바람이 강하고 가연성 물질이 많으면서 사람 접근이 어려운 산 중턱 등을 찾는다. 또 주말 야간시간대를 택하는 습성이 있다.
함양 산불이 발생한 것도 토요일(21일) 오후 9시 14분쯤이었다. 발생 장소도 가파른 경사에 암반이 많은 해발 800m 안팎의 고지대였다. 한때 순간풍속 초속 20m의 강한 바람이 불었다. 평균풍속도 초속 6m 안팎이었다. 산림청에 따르면 초속 6m의 바람만 불어도 무풍(無風)일 때와 비교해 산불 확산 속도는 26배 빠르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뉴스에서 산불 소식을 보면 희열감을 느꼈다”며 “불을 지르고 싶은 충동을 참지 못하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산림청 원명수 산불연구과장은 “방화범은 자신의 행위에 따른 효과를 극대화하는 경향이 있다”라며 “함양 산불 상황은 그동안 보여온 방화범 습성이 거의 그대로 재현된 사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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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발화지점은 불길 강해 바위가 깨지기도
산불감식은 함양 현장에서 산불이 끝난 지점부터 역으로 훑는 식으로 진행했다. 가로·세로 1m씩 격자 모양으로 구역을 세밀하게 구분해 그을음 정도나 토양색깔, 바위 상태 등을 면밀히 조사한다. 불에 탄 흔적의 형태도 주요 관찰 대상이다. 감식의 주요 목적은 최초 발화지점을 찾는 데 있다. 최초 발화지점은 화력이 강해 다른 곳보다 토양이 더 검게 변하고 심한 경우 바위가 깨지기도 한다.
또 그을음도 더 높게 올라간다. 최초 발화지점은 불에 탄 흔적이 ‘V’자 형태를 띤다고 감식팀은 설명했다. 경사진 곳에서 발생한 불은 강한 바람을 타고 V자 형태를 띠고 산 위로 급속히 확산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산림청 관계자는 "발화지를 찾는 것은 산불 원인을 확인하고 책임 소재를 규명하기 위한 핵심적인 조사 과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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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꽁초에서 DNA채취도
국립산림과학원 권춘근 박사는 “최초 발화지점을 찾으면 담배꽁초나 라이터 등 발화 원인이 될 만한 증거물을 찾을 수 있다”라며 “담배꽁초는 타더라도 필터 부분은 덜 탄 채 형태가 유지된 경우가 꽤 있다”고 설명했다. 권 박사는 “담배꽁초 필터 부분에는 DNA도 채취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감식 작업에는 고해상 카메라, 돋보기, 금속탐지기, 드론 등 장비가 동원된다. 금속탐지기는 화재 원인이 될 수 있는 금속을 찾아내기 위해서다. 권 박사는 “예를 들어 군 사격장에서 날라온 포탄이나, 풍등을 날리다 불이 날 경우 남아있는 금속이 증거물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산불감식팀은 감식 결과를 토대로 '방화범 소행'으로 결론을 내리고 경찰에 통보했다. 경찰은 주민 신고 내용 등까지 참고해 방화범 검거에 나섰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현장에서 발견된 증거를 감식했다. 권춘근 박사는 “산불감식은 각종 사건사고 현장에서 인명 사망 원인 등을 조사하는 것과 유사하다”라며 “대부분의 산불은 사람 때문에 발생하는 만큼 과학적인 감식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