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 전 인천시 서구의 한 폐수 처리 위탁업체 공장에서 발생한 이른바 '폐수탱크 살인' 사건 용의자가 1·2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사건이 미궁에 빠졌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고법 인천원외재판부 형사1부(정승규 부장판사)는 살인 혐의로 기소된 당시 해당 공장에서 근무하던 외국인 노동자 A씨에게 원심과 같은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당시 업체에서 차장으로 근무하던 B씨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B씨는 1997년 12월 17일 실종됐고, 한 달여 만인 이듬해 1월 22일 업체 공장 내 지하 폐수 탱크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그는 가슴에 20㎏짜리 모터가 묶인 채 마대로 싸여 있었고, 머리에는 5㎝ 크기의 함몰된 상처도 있었다. 부검 결과 B씨의 사망 원인은 익사와 폐수 오물에 의한 질식사로 드러났다.
당시 폐수 탱크로 향하는 길은 파이프와 산소 발생기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일부는 폭이 15∼20㎝ 정도로 좁았다. 무거운 모터까지 매단 성인 남성을 혼자 옮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에 경찰은 최소 2명 이상이 시신 유기에 가담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수사망은 공장에 근무하던 A씨 등 외국인 근로자 3명으로 좁혀졌다. 공장 관계자 조사에서는 술에 취한 B씨가 종종 공장 기숙사를 찾아 이들에게 욕설이나 폭행을 했다는 진술이 나왔다. B씨가 실종되기 이틀 전에도 "야간 근무 시간인데 일을 안 하고 잔다"며 A씨 뺨을 때렸다는 동료 진술도 나왔다.
뒤늦게 B씨의 시신이 발견됐을 땐 A씨 등 외국인 근로자 3명 모두 여권과 물품을 챙겨 한국을 벗어난 상태였다. 이들 중 주범으로 의심받던 C씨와 D씨는 B씨 실종 13일 만인 1997년 12월 30일 자국으로 도주했고, A씨 역시 이듬해 1월 20일 황급히 한국을 떠났다.
C씨는 출국 후 지인과의 통화에서 "너무 괴롭혀 죽일 수밖에 없었고 한국에 남아있는 (A씨 등) 2명도 이 사건을 다 안다"며 범행을 시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력 용의자들이 모두 도주하면서 사건은 영구 미제로 남는 듯했으나, 27년이 지난 2024년 7월 인터폴 적색수배를 피해 도피하던 A씨가 외국 공항에서 체포되면서 사건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난해 2월 국내로 강제 송환된 A씨는 살인 혐의로 법정에 섰지만,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당시 법원은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했다거나 살해를 공모했다는 사실을 직접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확인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검찰은 항소심에서 A씨가 직접 살해하지 않았더라도 사건 당일 야간 근무자로서 범행을 알고도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며 '살인 방조'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항소심 법원도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A씨가 임금까지 포기하고 급히 도주한 점 등은 의심스럽지만, 범죄를 증명할 직접적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수사 기관이 사건 현장으로 추정되는 공장을 2차례 수색했는데도 범행에 쓰인 흉기와 피해자 혈흔 등이 발견되지 않았다"며 "피고인이 남긴 작업복과 신발은 물론 피해자 시신에서도 피고인과 관련된 증거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고인이 C씨, D씨와 달리 피해자를 살해할 만큼의 적개심을 갖고 있었다는 범행 동기도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다"며 "피고인이 피해자의 사망을 알고 사건에 연루되는 것이 두려워 도주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살인 방조 혐의와 관련해서도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당시 범행 자체를 아예 인지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변 증언처럼 피고인이 평소처럼 야간 근무 중 잠이 들어 범행 자체를 몰랐을 가능성이 있다"며 "피고인이 피해자가 위험에 빠진 사실을 알고도 구조하지 않아 범행을 도왔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검찰 항소를 기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