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철거민 아픔 같이한 '푸른 눈의 성자'… 안광훈 신부 선종

중앙일보

2026.03.21 04:58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푸른 눈의 성자'로 불린 철거민들의 대부 안광훈 신부가 21일 선종했다. 사진 성골롬반외방선교회

60년간 한국의 가장 낮은 곳에서 도시 빈민들과 함께 호흡해온 '푸른 눈의 성자' 안광훈(본명 로버트 존 브레넌) 신부가 21일 선종했다. 향년 84세.

천주교 선교단체 성골롬반외방선교회는 선교회 소속인 안 신부가 이날 새벽 4시 서울 동서울병원에서 지병 악화로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1941년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태어난 고인은 1966년 20대의 젊은 나이에 한국으로 파견된 후, 한평생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곁을 지킨 '빈민의 대부'였다.

안 신부의 삶은 한국 현대사의 아픔과 궤를 같이한다. 1972년 원주교구 정선성당 주임신부 시절에는 고리대금으로 고통받는 주민들을 위해 정선신용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성프란치스코의원을 열어 의료 구호에 힘썼다.

1980년대 서울 목동성당 재임 시기에는 안양천변 철거민들에게 성당을 내어주고 함께 철거 반대 운동을 펼쳤다. 이후 미아동 달동네로 들어가 주민들의 자립을 돕는 삼양주민연대를 이끌었다.

특히 그는 재개발 과정에서 용역들이 불을 지르는 등 위협적인 상황 속에서도 주민들과 양동이로 물을 나르며 집을 지켰던 일화를 회상하며 "가난했지만 함께 아픔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였기 때문"이라며 연대의 가치를 강조해왔다.

고인은 생전 인터뷰에서 "교회는 세상 구원을 위해 존재해야 하며, 복음을 말로만 전할 것이 아니라 몸으로 실천하며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신념을 밝히기도 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2년 서울시 명예시민이 됐다. 2020년에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특별공로자로 인정받아 국적 증서를 받았다. 당시 그는 "한국은 제2의 고향이 아닌 고향 그 자체"라며 온전한 한국인으로 살게 된 자부심을 드러냈다.

성골롬반외방선교회는 "뉴질랜드를 떠나 낯선 한국으로 파견된 새 사제는 기도한 대로 그토록 사랑한 한국에서 영면하게 됐다"며 고인의 아름다웠던 삶을 기렸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10호실에 마련됐다. 장례 미사는 24일 오전 10시 서울대교구 명동대성당에서 교구장 정순택 대주교와 사제단의 공동 집전으로 엄수된다. 고인은 장례 후 충북 제천 배론성지 천주교묘원에서 영원한 안식에 든다.



고성표([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