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열린 방탄소년단의 광화문 컴백 콘서트는 60분간의 화력 시범으로 느껴졌습니다. 지금껏 대한민국의 이런 공간에서 이런 퍼포먼스가 펼쳐지는 것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떤 형용사로 표현하는 것이 좋을지 바로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제가 찾은 답은 ‘기분 좋은 오만함’입니다. 공간, 비주얼, 메시지에서 모두 오만할 정도의 자신감이 느껴졌습니다.
공연 일주일 전부터 전 세계에 공개된 이번 콘서트의 무대는 사각형의 거대한 문 모양이었습니다. 조선 왕조의 법궁인 경복궁의 정문 광화문, 그리고 현재 대한민국의 심장 역할을 하는 광장. 그 둘을 연결하는 공간에 놓인 문은 설명할 필요 없이 한국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포털을 상징합니다. 그 일직선 상에서 조선총독부 건물이 사라진 것이 새삼 다행스럽게 느껴지더군요.
공연 시작부터 멤버들은 ‘우리의 뿌리’를 언급했고, 첫 곡에 ‘아리랑’이 삽입됐고, 아직 일반에 공개되지 않은 다큐멘터리 예고편에도 ‘우리는 아직 한국에서 온 촌놈’이라는 코멘트가 들렸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갇혀 있겠다는 것은 아니었죠. 과거와 현재, 두개의 시공간을 하나로 엮는 지점을 선택한 순간 BTS는 메시지를 던진 겁니다. ‘지금부터 역사는 우리가 리드한다.’
이런 느낌은 디자이너 송지오와 협조한 의상까지도 이어졌습니다. 일면 ‘아시아풍’이라고 뭉뚱그려 말할 수 있겠지만, 뜯어 놓고 보면 각각의 문명이 갖고 있는 디테일이 느껴졌습니다. 예를 들어 슈가의 상의는 조선 시대 무인들의 경번갑(鏡幡甲: 사각 철판을 사슬로 엮어 만든 갑주), 진의 상의는 한복 마고자를 변형해 한국적인 요소를 강조한 듯했지만, 동시에 뷔의 화려한 하의에선 일본식 하카마 스타일이 엿보였고, RM이 입은 재킷은 중국식 탕좡(唐裝)과 한국식 도포의 조화를 보는 듯했습니다.
물론 이런 느낌은 매우 주관적인 것이지만, 한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아리랑’이라는 표제 안에서 이렇게 다양한 요소들을 결합하는 시도는 탄탄한 자신감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밖에서 무엇을 가져오건, 우리가 가진 힘으로 녹여 소화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 말입니다.
2002년, 당시 중국을 넘어 세계적인 영화 장인으로 군림하고 있던 장이머우 감독은 영화 ‘영웅’의 의상 디자이너로 일본 출신의 와다 에미를 기용합니다. 이 영화는 진시황의 천하 통일을 통해 현대 중국 정부의 정통성을 그려내자는 야심이 담긴 대작이었죠.
이런 작품에 일본 디자이너, 그것도 1985년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란’으로 아카데미 의상상을 받은 세계적인 거장을 끌어들인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런 와다의 능력을 활용해 세계를 향한 보편적 미감을 창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선택입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2026년, 방탄소년단은 이제 그런 문화적 주도권이 한국에 있음을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음악 하나하나, 가사 하나하나를 뜯어볼 수는 없지만, 이번 앨범 수록곡, ‘에일리언스(Aliens)’의 가사에는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Pardon 김구 선생님 tell me how you feel
영어는 또 나밖에 못 해 but that is how we kill
여기서 ‘김구 선생님’이 소환되는 것은 그의 글 ‘나의 소원’의 한 대목 때문이겠죠. 우리나라에 기대하는 것은 부강한 경제력도, 막강한 무력도 아니고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고 한 부분 말입니다. 많은 사람이 이 문장이 실현되고 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제 서구 중심의 가치를 허물고, 우리가 새로운 기준을 제안할 수 있다는 자부심이 담긴 가사입니다.
이번 무대를 통해 한국은 세계를 담을 젊은이들의 대담함을 보여줬고, 동시에 60분 동안 미래 도시 같은 한국 도심의 이미지를 세계에 생중계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 라이브를 통해 넷플릭스는 무엇을 얻고, 하이브는 무엇을 얻고, 관광객은 얼마를 썼고, 서울시장은 무엇을 얻었는가를 이야기하는 것은 이제 좀 좀스럽게 느껴집니다. 이제는 부디 대한민국의 기업이, 학교가, 정치가 어떤 실천으로 이 퍼포먼스와 균형을 맞출지, 어떻게 하면 이 젊은이들의 배포에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여줄지 진지하게 논의할 때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