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이스라엘 예루살렘 인근 베이트셰메시에서 발생한 큰 폭발이 났다. 이스라엘 매체 타임스오브이스라엘(TOI)의 에마뉴엘 파비안 군사 전문 기자는 이스라엘 구조당국의 발표와 관련 영상을 바탕으로 “이번 폭발이 이란의 탄도 미사일에 의한 것”이라며 “미사일 한 개가 주택 지역에서 500m 떨어진 숲에 떨어졌고 인명피해는 없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날 오후부터 이메일과 SNS를 통해 파비안에게 기사 내용을 수정하라는 요청이 빗발쳤다. 지상에 떨어진 것이 탄도 미사일이 아닌 요격미사일에 의해 격추된 잔해라고 정정하라는 요구였다. 하지만 파비안은 “이스라엘방위군(IDF) 정보와 폭발 영상을 종합하면 잔해가 아닌 탄도 미사일이 분명하다”고 답했다.
그러자 “내 돈 90만 달러를 날린 대가로 당신을 파멸시키겠다” “90분 이내에 기사를 고치지 않으면 가족까지 해치겠다” “15일 오전 1시까지 수정하지 않으면 상상도 못 했던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는 거친 메시지가 쏟아졌다. 한 사람이 100회 이상의 수정 요청 메시지를 보내며 압박하자 파비안은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이 사건을 수사한 뒤에야 파비안은 사람들이 왜 자신의 보도를 집요하게 고치려 했는지 알게 됐다. 이들이 바로 글로벌 예측 시장 플랫폼 폴리마켓에서 ‘3월 10일, 이란이 이스라엘을 타격할까’에 내기를 건 도박꾼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도박에선 2300만 달러(약 340억 원)의 판돈이 걸렸다. 규칙상 요격된 미사일은 공격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결국 기사를 수정하라고 요구한 이들은 ‘이란의 미사일이 투하되지 않는다’에 베팅한 이들인 셈이었다.
이에 파비안은 TOI에 자신이 겪은 일을 상세히 공개했다. 이후 폴리마켓 측도 “파비안에 대한 협박을 강력히 규탄한다”며 “관련 계정 모두를 정지하고 정보를 사법 당국에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폴리마켓이나 칼쉬와 같은 글로벌 예측시장 플랫폼에선 최근 스포츠를 넘어 정치와 전쟁, 특정 인물의 사망까지 베팅 대상으로 삼고 있어 윤리적·법적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고 BBC가 보도했다.
플랫폼 예측 도박은 지난 1년간 440억 달러(약 61조원) 이상의 거래액을 기록했다. 2018년 스포츠 도박 합법화와 2024년 선거 베팅 허용 판결 이후 급성장하고 있다. 주로 스포츠 경기 결과 예측이 주가 되지만 선거와 미국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 가능성, 예수의 재림 등 수 없는 주제에 돈을 걸 수 있다.
지금도 폴리마켓에선 ‘이란 정권이 3월 31일 혹은 4월 30일까지 붕괴할까’ ‘미국이 지상군 병력 투입할까’ 등 이란 전쟁을 둘러싼 여러 사안을 놓고 각각 수천만 달러짜리의 내기가 진행되고 있다.
이들 플랫폼은 2024년 미 대선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을 정확히 예측하며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라는 평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란과 베네수엘라, 이스라엘 등 분쟁 지역의 군사 행동과 관련된 ‘잔혹한 베팅’이 도를 넘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실제로 폴리마켓에서는 이란 전쟁 관련 베팅에만 5억 달러(약 7480억원)가 몰렸으며, 한때 ‘핵폭발 발생 여부’에 돈을 거는 상품까지 등장했다가 삭제됐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실각 여부’를 두고는 5400만 달러(약 805억원) 규모의 판돈이 오가는 등 전쟁과 죽음이 오락화하는 양상이 이어지고 있다고 영국 가디언은 지적했다.
특히 기밀을 아는 누군가가 이를 이용해 베팅한 뒤 거액을 챙기는 내부자 거래 의혹이 강하게 제기된다. 지난 1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전 대통령 체포, 이란 공격 직전 베팅을 해 많은 이익을 챙긴 계정들이 대거 적발된 것이다. 군사 작전 일정을 사전에 인지한 트럼프 행정부 또는 군 관계자의 소행이란 의혹에 미 의회는 예측 시장 규제를 골자로 한 법안(BETS OFF Act)을 발의했다.
가디언은 “블록체인 기술이 자본의 탐욕과 결합하여 ‘반인륜적 도박장’을 만들어냈다”고 비판하지만, 플랫폼 측은 생각이 다르다. 이것이 도박이 아닌 ‘금융 상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정 사건의 발생 가능성을 가격으로 환산해 기업들이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비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논리다. BBC는 미국 내 예측 플랫폼들을 금융 거래소로 볼 것인지, 도박장으로 볼 것인지를 두고 주 정부와 연방 정부 간의 법정 다툼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