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안 인터뷰] 원로에게 길을 묻다…현오석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세계는 뛰는데 우리는…경제·안보 통합 컨트롤타워 필요” “정부 역할은 시장 개입자 아닌 ‘혁신 생태계 설계자’여야”
산넘어 산이다. 세계 경제는 코로나19 팬데믹, 미·중 무역 갈등,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통해 지정학 리스크와 공급망 취약성이 겹겹이 쌓인 상태였다. 여기에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이 더해지면서 중첩된 위기를 맞게 됐다.
1976년 경제기획원(현 기획예산처)을 시작으로, 박근혜 정부 초대 부총리를 역임한 현오석(76)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상황을 ‘위기 위의 위기’로 정의했다. 중동발 원유 공급 차질과 운송 리스크 증가가 국제유가를 불안정하게 하면서 물가 상승 압력이 재점화한 데다 중동 항로 불안에 따른 글로벌 관광·항공 산업 위축 등이 현실화한 탓이다.
현 전 부총리는 “중동 사태는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정상화를 지연시키고, 이미 분열된 글로벌 금융시장을 다시 긴장시키는 요인”이라며 “중장기적으로는 금융시장 불안이 실물경제로 전이되는 이른바 ‘2차 충격’이 우려된다”고 했다.
미국·이란 전쟁이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 경우 투자 심리 위축과 위험 회피 성향 강화로 인해 글로벌 자금이 안전자산으로 이동하면서 신흥국 통화의 약세 압력이 불가피하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글로벌 금리 수준이 여전히 높은 상황에서 기업 부채 부담과 부동산시장 불안이 겹치면 구조적 저성장이 고착화할 가능성이 크다.
그는 “냉전 이후 글로벌화가 주도하던 질서에 균열이 생기면서 경제·기술·안보가 복잡하게 중첩되는 새로운 경제 구조가 나타나고 있다”며 “한국 경제는 추격형 산업 모델의 타성을 하루라도 빨리 벗어 던져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백팩에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는 현 전 부총리의 편의를 위해 hy(옛 한국야쿠르트)에 협조를 요청하고, 그의 자택과 가까운 잠원동 hy빌딩에서 3월 9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
“경제 구조 근본 재편 시급”
Q : 현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고 계신가?
A : “‘초불확실성’의 시대에 ‘위기 위의 위기’마저 덮쳤다. 올해 세계 질서는 명실상부한 전략적 변곡점에 진입했다. 냉전 이후 글로벌화가 주도하던 질서에 균열이 생기면서 경제·기술·안보가 복잡하게 중첩된 새로운 경제 구조가 나타나고 있다. 현재의 초불확실성은 단순한 경기 순환의 변동이 아닌, 경제 체제 수준의 패러다임 전환에 가깝다. 그 특징은 두 가지 축인 ‘경제 안보의 확대’와 ‘기술 혁신의 가속’으로 압축할 수 있다. 경제 안보 측면에서 미·중 간 전략 경쟁은 단순한 무역전쟁을 넘어 산업·기술·자원·데이터 영역 전반으로 확산 중이다. 자유무역 대신 ‘리쇼어링’과 ‘친 국가 동맹형 공급망’이 부상하고 있다. 개방과 효율 중심의 글로벌 경제에서 회복 탄력성, 안정성과 통제 중심의 블록 경쟁 체제로 이동 중이다. 이는 각국 정부가 기업의 투자와 기술 선택에 직접 개입하는, 말 그대로 ‘국가·시장 복합 체제’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한국 역시 반도체, 배터리, 인공지능(AI), 방산 등 전략 산업을 중심으로 자국 중심의 안보 경제 체계를 강화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다. 특히, 글로벌 AI 시장 선점을 목표로 경제 구조 근본을 재편해야 한다.”
Q : 어떤 식의 재편이 필요하다는 뜻인가?
A : “챗GPT 세대의 등장, 자율 생산 시스템, 생성형 AI 기반 경영 등은 생산성의 비약적 향상을 가져올 것이다. 다만, 일자리 구조와 교육 체제, 사회적 불평등 측면에서는 새로운 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 기술 혁신은 단순히 ‘산업 혁신’이 아니라 사회와 국가의 거버넌스 혁신을 요구하는 전면적 과제다. 그럼에도 세계가 우리를 바라보는 시각은 ‘한국은 저성장·저출산·정치적 불확실성이 복합적으로 얽혀 변화를 흡수할 제도적 유연성과 전략적 민첩성이 부족하다’는 시각이 주를 이룬다. 향후 한국이 취해야 할 방향은 다음과 같다. 첫째, 가칭 ‘국가경제안보원’과 같은 경제 안보 컨트롤타워 구축을 통해 산업·기술·외교·교육·정보 등을 통합 관리하는 체계 개편이 필요하다. 둘째, AI와 반도체 등 전략 기술 분야의 인재·연구 개발·표준·윤리 체계를 국가 경쟁력의 핵심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셋째, 저출산·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한 사회 혁신형 성장 전략, 즉 ‘기술기반 사회복지국가’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Q : 미국·이란 전쟁을 계기로 지정학적 리스크에 취약한 한국 경제의 약점이 또 한번 여실히 드러났다.
A : “단기적 차원에서는 에너지 수급 안정과 물가 상승 완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전략 비축유 방출, 에너지 수입선 다변화, 주요 에너지기업의 해외 자원 개발 협력 확대가 긴급 과제다. 중기적 차원에서는 공급망 다층화 전략이 필요하다. 핵심 원자재·반도체·식량·의약품 등 주요 품목에 대한 국가 차원의 ‘공급망 리스크 매트릭스’를 구축하고, 민·관 합동 위기대응 체제를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 차원에서는 금융 안전망 강화와 산업구조 혁신을 병행해야 한다. 글로벌 불확실성 속에서도 기술혁신 주도형 투자, 특히 AI·친환경·디지털 전환 분야의 경우 지속적인 투자 확대가 필요하다.”
━
“부동산 정책은 한결같아야”
Q : 국내 이슈로 넘어가 보자. 대통령의 “시장 이기는 정부도 없지만, 정부 이기는 시장도 없다”는 발언이 부동산 시장에서 연일 회자되고 있다.
A : “대통령의 발언은 시장과 정부의 상호 견제 관계를 강조한 점에서 상징적 의미가 크다. 그러나 이 표현은 동시에 ‘정책 기능의 한계’와 ‘정책 책임의 이중성’을 모두 내포한다. 한국 부동산 시장은 단순한 수요·공급의 균형을 넘어, 금융·세제·규제·인구 구조 등 복합 요인의 산물이다. 따라서 ‘시장과 정부의 균형’이라는 말은 곧 정책 신뢰성과 시장의 예측 가능성 간 조화의 문제로 읽어야 한다. 한국은 1970년대 경제 개발 시절부터 주택을 경기 부양 수단으로 활용해왔다. 그간 경험이 보여주듯 정부가 시장 기능을 과도하게 제어하면 단기 안정은 가능하지만, 중장기적으론 공급 왜곡과 가격 불안을 초래했다. 반대로 정부의 방임적 태도는 투기적 과열을 허용하며 주거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결국 대통령의 언급은 ‘정책의 주도권은 정부가 갖되, 시장의 자율성과 신뢰를 침해하지 말라’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시장 친화적이되 투기적 수요는 억제하고, 실수요자 중심의 정책 원칙을 분명히 하는 것이 정부 신뢰를 높이는 길이다. 결국 핵심은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주체’가 아니라 ‘건전한 시장 질서를 조성하는 조율자’로 자리매김하는 데 있다. 지금 시점의 과제는 정부가 ‘시장을 이기려는지’, ‘시장에 끌려다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정부가 시장 규범을 어떻게 설계하고 신뢰를 재구축할지가 포인트다. 정책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이 확보될 때 시장의 기대도 점진적으로 안정될 것이다. ”
Q : 정부의 대책에도 효과는 단기간에 그칠 뿐, 집값 상승을 오히려 부채질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A : “다시 강조하지만, 부동산 정책은 단기 처방보다는 ‘지속 가능한 신뢰’가 관건이다. 과거 정부들도 부동산 가격 안정화 대책을 반복적으로 내놨지만, 대부분 단기 효과에 그쳤다. 그 이유는 다섯 가지다. 첫째, 정책 타이밍이 시장 반등기와 맞물려 심리적 기대를 자극했다. 둘째, 공급 정책이 토지·건축 인허가 제도의 병목으로 지연됐다. 셋째, 부동산 시장의 ‘자산 효과’가 경기 회복기마다 재점화했다. 넷째, 투기 억제를 위해 강력한 규제를 시행했지만, 정책 피로감과 풍선 효과로 인해 집값 상승이 재연됐다. 다섯째, ‘정책 기대 리스크’, 즉 시장이 정부의 추가 개입을 예상해 매물을 잠그는 현상이 반복될 가능성도 있다. 일시적 가격 안정이 나타나더라도 중기적으로 공급 불균형이 해소되지 않으면 가격은 다시 반등할 것이다. 이번 정부가 같은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선 구조적 접근이 필요하다. 부동산 정책의 지속성은 공급의 질적 균형 개선, 즉 ‘서울 중심의 초집중 구조 완화’, ‘생활 인프라 기반의 지역 공급 확대’ 같은 구조적 접근에 달려 있다. 이를 위해 토지 공급 확대, 공공임대 비중 조정, 세제의 일관성, 금리 및 가계부채 관리도 함께 작동해야 한다. 정책의 핵심은 ‘시장 진입 장벽을 낮추고, 투기 수익률을 낮추는 것’이어야 한다. 이런 신호가 실제 거래 행태에 반영될 때만이 장기 안정으로 이어진다.”
Q : 요즘 또 하나의 이슈가 주식 시장이다. 마치 ‘주식 공화국’이 된 듯하다.
A : “자금이 부동산에서 자본시장으로 이동하는 건 경제 구조 전환의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볼 수 있다. 장기적으로 보면 부동산 중심 자산 포트폴리오에서 금융자산 중심의 투자 문화로 바뀌는 것은 한국 경제 선진화 과정에 있어 긍정적 신호다. 다만, 이것이 곧 ‘생산적 금융’으로 이어지려면 세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첫째, 자본시장이 건전한 규율과 투명한 정보 기반 위에서 작동해야 한다. 둘째, 투자금이 실물 투자로 연결될 수 있는 산업 생태계 연계 구조가 있어야 한다. 셋째, 금융 교육과 위험 관리의 사회적 인프라가 강화돼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증시 활황이 경기 심리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순 있다. 정책당국은 이를 자본시장 구조개혁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돈이 이동하는 현상’을 넘어 ‘자본이 성장하는 구조’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지 않으면 자산 버블의 축이 바뀌는 데 그칠 뿐 실질적 생산성 상승은 기대하기 어렵다.”
Q : 빚을 내 투자하는 신용거래 규모도 크게 증가했다.
A : “신용거래 확대는 개인투자자의 참여 확대와 함께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다만, 이른바 ‘빚투’열풍은 금융 안정 측면에서 우려된다. 한국 증시는 유동성이 높고 외인 자금 이동에 민감해 변동성이 큰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는 개인투자자 비중이 높고, 파생상품 연계 거래가 많으며, 기업 실적 변동성이 큰 산업 구조 때문이다. 따라서 개인 레버리지 확대는 시장 충격 시 손실이 증폭될 가능성을 키운다. 금융당국은 단순한 경고를 넘어 총신용 잔액 관리, 증권사 신용공급 한도 조정, 그리고 투자자별 리스크 관리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등 시스템 리스크를 통제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동시에 투자자 스스로도 ‘단기 수익’보다는 ‘위험 감내 능력’을 우선 점검해야 할 시점이다. 신용거래는 시장의 활력이지만, 과도할 경우 경제 전체의 불안 요인으로 전환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
“‘생산적 금융’ 위한 투자자 보호 필수”
Q : 일각에서는 정부의 지나친 개입 등에 따른 부작용으로 부동산·주식 시장 모두 향후 양극화 격차만 더욱 심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A : “충분히 공감한다. 정부의 역할은 시장 실패를 보완하는 것이다. 시장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다. 지나친 개입은 오히려 시장 왜곡과 자산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 특정 정책군이 부동산·주식 양쪽 시장 모두에 강하게 작용하면 자금이 정책의 빈틈을 찾아 이동하는 풍선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이를 막으려면 일관된 정책 메시지와 균형 있는 자산 과세 체계가 필수적이다. 소득·자산·금융자산 간 세제 불균형을 최소화하고, 장기 보유 인센티브를 강화해 시장 참여자들의 행태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결국 핵심은 조세·금융·복지 등 시스템 전반이 함께 작동해야만 진정한 자산 양극화 해소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Q : 야당은 “대통령 SNS에는 부동산뿐 아니라 환율도, 물가도 그리고 일자리도 담겨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환율 불안 문제가 여전하다.
A : “환율은 더이상 ‘외환시장 안정’으로만 볼 문제가 아니다. 국제 금융 질서 속에서 한국 경제의 신뢰도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최근 원화는 글로벌 위험 회피 심리와 미·중 경기 국면차로 인해 널뛰기 변동이 잦아졌다. 환율은 수출 경쟁력뿐 아니라 자본 유출·입, 물가, 투자 심리와 직결된 복합 변수다. 따라서 정부는 단순한 환율 개입보다는 ‘시장 신뢰를 기반으로 한 안정 관리’에 초점을 둬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외환 보유액 운용과 외환 스와프 라인 점검을 통한 급등·락 완화가 필요하다. 중기적으로는 물가·금리 정책과의 조화, 대외 불확실성 완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외환 정책도 투명성과 일관성이 핵심이다. 시장이 정부의 방향성을 예측할 수 있어야 투기적 움직임이 차단된다. 환율은 ‘조정 대상’이 아니라 ‘경제 체력의 반영치’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Q :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최근 열린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2.50%로, 6연속 동결했다. 일각에서는 한은이 올해 안에 금리 인상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A : “한은의 6연속 동결은 경기 불확실성과 가계부채 부담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으려는 판단으로 해석된다. 현재의 실질금리 수준은 완화적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인플레이션 압력을 억제하는 수준이다. 다만, 향후 세계 주요국의 금리 인상 사이클 재개나 원화 약세 심화 시에는 방어적 인상을 검토할 여지가 있다. 통화정책의 목표는 ‘선제적 억제’가 아니라 ‘완만한 정상화’여야 한다. 금융시장의 기대 심리가 급변하지 않도록 점진적 시그널링이 필요하다. 한은은 향후 금리 조정의 ‘속도와 시점’보다는 ‘메시지 관리’에서 신뢰를 유지해야 한다.”
━
“반도체는 물론 신산업도 육성해야”
Q : 물가 상승 우려와 관련해서는 한은이 올해는 경기 회복에 따른 상승 강도가 약할 수 있다고 내다보기도 했는데…
A : “한은이 밝힌 물가 압력 둔화 전망은 원자재 가격 안정, 글로벌 공급망 회복, 소비자 심리 완화 등에 기반한 판단으로 보인다. 그러나 서비스 물가나 임대료 등 구조적 요인은 여전히 상방 리스크로 남아 있다. 최근 미국과 이란의 전쟁에 따른 공급망 교란과 유가 급등이 커다란 글로벌 인플레 요인으로 등장했다. 아울러 경기 회복 속도가 완만하다면 물가 상승 강도는 제한적일 수 있지만, 만약 내수 진작책이 확산되거나 임금 상승세가 지속된다면 물가 안정이 예상보다 지연될 수 있다. 물가 정책은 단기 통계보다는 중기 흐름을 봐야 한다. 지정학적 요인을 감안한 수요·공급 양측 요인을 균형 있게 관리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한은은 물가 안정 목표 2%를 기준으로 유연하게 대응하되, 경기 부양과의 균형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Q : 한은은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8%에서 2.0%로 상향 조정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견해는?
A : “미국·이란 전쟁 발발이라는 새로운 지정학적 하방 리스크의 규모를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한은의 성장 전망 상향은 수출 회복, 제조업 회복세, 그리고 서비스 소비 증가를 반영한 결과다. 이는 경기가 저점을 통과했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다만, 이는 잠재성장률이 회복했다기보다는 ‘기저효과와 단기 회복세’에 따른 조정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내수와 투자 부문은 여전히 제약을 받고 있고, 가계부채 부담과 고금리 환경이 회복세를 제약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정책의 초점은 ‘성장률 수치’보다는 ‘성장의 질’에 맞춰져야 한다. 구조개혁, 생산성 향상, 신산업 투자 확대가 병행돼야만 이번 회복이 일시적 반등이 아닌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Q : 다만, 내년 성장률 전망치의 경우 지난해 11월 1.9%로 처음 제시한 이후 최근 1.8%로 0.1%p 하향 조정했다.
A : “미국·이란 전쟁 등 글로벌 경제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성장률 전망치의 0.1%p 하향 조정은 단순한 수치 변동이 아니라 수출 주도 회복세의 속도 둔화를 반영한 신호로 봐야 한다. 특히, 올해 반도체 경기 반등이 예상보다 빨리 소진되고, 내년에는 기저효과 약화로 성장세가 제한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는 여전히 ‘반도체 편중 성장’에 있다. 수출과 투자가 반도체 경기 진폭에 동조하면서 전반적 경기 사이클이 산업 단일화 현상에 종속됐다. 이런 구조에선 세계 경기 둔화나 기술 경쟁 구도의 변화가 곧 성장률 변동으로 직결된다.”
Q : 지적하신 것처럼 수출은 물론 주식 시장 등 한국 경제 전반에 걸쳐 반도체 부문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데 따른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다.
A : “반도체는 우리 산업 경쟁력의 핵심이면서도 경기 변동에 가장 민감한 품목이다. 수출, 주가, 고용, 설비 투자까지 반도체에 지나치게 연동된 구조는 분명 리스크 요인이다. 그렇다고 이를 위험 요소로만 볼 필요는 없다. 해결책은 ‘의존도 축소’가 아닌, ‘경쟁력 확장’이다. 반도체 생태계를 고도화하면서 시스템 반도체·AI 반도체 등 미래형 분야로 기술 기반을 넓히고, 동시에 시장 구조를 다변화해야 한다. 정부는 인력 양성, 인프라 확충, 기술 주권 확보를 뒷받침하고, 기업은 공급망 안정을 중심으로 장기적 투자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
“‘규제의 명료화와 균형화’ 절실”
Q : 특히,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가 미국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A : “트럼프 행정부가 다시 등장하면서 ‘미국 우선주의’ 기조가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전략산업 중심의 관세 및 보조금 정책은 한·미 간 공급망 관계에도 구조적 긴장을 불러올 것이다. 한국은 단순한 피해 최소화 전략을 넘어 공급망 참여 구조의 재설계에 나서야 한다.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 정치적 리스크 분산이 절실하다. 미국 중심의 공급망 외에도 유럽연합(EU)·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중동 등 제3시장과의 균형 있는 협력축 다변화가 필요하다. 둘째, 미국과의 기술 동맹 강화다. 단순 수출입 관계에서 벗어나 공동 연구·표준, 첨단 산업 공동 투자 등 전방위적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 셋째, 우리 정부의 자체 외교적 교섭력 제고도 필요하다. 무역정책을 산업정책 일부로 인식하고, 경제·안보·외교의 체계화를 이뤄야 한다. 미국의 통상정책은 더 이상 관세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경제안보’의 문제다. 한국 역시 산업·외교·금융 전략을 통합적으로 재정비해야 한다.”
Q : 중대재해처벌법·상법· ‘노란봉투법’이 기업 경영을 위축시킨다는 우려를 어떻게 보나.
A : “기업이 법을 준수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다만, 일률적 형사처벌 중심의 접근은 혁신 위축과 투자 지연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해결책은 ‘규제 완화’가 아니라 ‘규제의 명료화와 균형화’다. 선진국은 법률의 추상성을 줄이고, 기업이 사전에 준수할 가이드라인을 명확히 제시함으로써 예방 중심의 체계를 갖췄다. 한국도 이제 ‘처벌의 시대’에서 ‘예방과 혁신의 법제 환경’으로 전환해야 기업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정부는 안전과 노동권을 보호하면서도 규제와 책임 범위의 합리적 조정을 병행해야 한다. 특히 중소기업이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 마련과 컨설팅·교육 등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안정적 법 환경이 결국 일자리와 투자 확대의 전제가 된다.”
━
“AI 제도·인프라·인력 기반 서둘러야”
Q : 정부의 노동시간 단축 기조도 기업 경영에는 부담 요소다.
A : “노동시간 단축은 근로자 삶의 질 향상과 생산성 제고라는 목표를 갖지만, 제도 설계와 기업 현실 간 괴리가 크면 오히려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인력 대체 여건이 부족해 실제 근로시간 단축이 불가능한 구조적 제약이 존재한다. 정책의 핵심은 ‘시간의 총량 규제’가 아니라 ‘노동의 유연성 관리’다. 선진국형 근무제 모델처럼 선택적 근로시간제, 성과연동형 근무제 등 다양한 운영 방식을 병행해 노동·기업 양측의 탄력성을 높여야 한다. 근로자와 기업이 협의해 근무시간과 성과를 유연하게 관리할 수 있는 제도적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은 규제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을 설계하는 사안이다. 정부가 현장 운영 데이터를 토대로 업종별·규모별 맞춤형 모델을 재정비해야만 제도의 취지가 현실적 효력을 가질 수 있다.”
Q : 특히, 정년 연장에 따른 청년 실업률 증가 우려가 세대 간 갈등으로 확산하고 있다.
A : “정년 연장은 고령화 사회의 필연적 과제지만, 청년층의 일자리 축소 우려가 현실화할 경우 사회적 갈등으로 비화할 수 있는 게 사실이다. 핵심 문제는 하나의 일자리를 세대 간에 나누는 ‘제로섬 구조’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이를 해소하려면 두 단계 접근이 필요하다. 정년 연장과 관련해서는 생산성 기반의 정년제 개편이 필요하다. 경력과 성과 중심의 재고용 제도로 노년층의 노동 효율을 유지해야 한다. 청년 고용 확대와 관련해선 창출형 산업정책이 필요하다. 신산업·서비스업 관련 R&D 분야 등으로 청년 일자리 수요를 확장해 ‘세대 간 일자리 총량’을 늘려야 한다는 얘기다. 세대 갈등은 일자리의 총량 부족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일자리의 구조적 확장 없는 정년 연장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세대 간 갈등을 방지하기 위해선 ‘일자리 파이의 재분배’가 아니라 ‘새로운 파이의 창출’로 접근해야 한다는 뜻이다. 정부는 단기적 연금 보전보다는 ‘노사세대 공존형 노동시장’의 청사진을 제시해야 할 시점이다.”
Q : 전 세계가 AI·로봇 패권 경쟁에 돌입한 가운데 한국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진 상황이다.
A : “AI와 로봇 산업은 이제 산업혁명급 변화를 이끄는 메가트렌드다. 한국의 기술력은 상위권이지만, 인프라·데이터·인재 생태계 측면에서는 아직 선진국에 뒤처져 있다. 정부의 역할부터 ‘시장 개입자’가 아니라 ‘혁신 생태계의 설계자’로 전환돼야 한다. 우선, 개인정보 보호를 강화하고 산업 활용의 균형을 재조정하는 등의 노력이 절실하다. 대학·산업계 공동 플랫폼 구축을 통해 실무형 교육을 강화하는 등 AI 인재를 양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아울러 행정·복지·의료 등 공공분야에서부터 AI를 실증 도입해 점차 민간으로 확산되도록 유도해야 한다. AI와 로봇은 단순한 기술 경쟁이 아니라 국가의 시스템 혁신 경쟁이다. 정부가 기술 개발을 직접 주도할 필요까진 없겠지만, 생태계 설계자로서 제도·인프라·인력의 3대 기반을 완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