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신임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로 신현송 국제결제은행(BIS) 통화경제국장을 22일 지명했다. 미국-이란 전쟁으로 자칫 국가 경제 전반이 흔들릴 수 있는 상황에서 신 후보자는 물가안정과 성장, 금융 리스크 관리를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 중책을 맡게 됐다.
이규연 청와대 홍보소통수석은 이날 브리핑에서 “신 후보자는 국제금융·거시경제 분야 세계적인 권위자”라며 “학문적 깊이와 실무 통찰력을 모두 갖춘 인물”이라고 밝혔다. 신 후보자는 인사청문회를 거쳐 다음 달 20일 임기를 마치는 이창용 총재의 뒤를 이을 전망이다. 현재 스위스에 체류 중인 신 후보자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청문회 일정 등이 정해지면 귀국할 예정”이라며 “(통화정책 방향 등) 현안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한국에 가서 말씀드리겠다”고 짧게 소감을 밝혔다.
신 후보자는 1959년 대구 출생으로 영국 옥스퍼드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경제학 석·박사를 받았다. 이후 영국 런던정경대(LSE)와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로 재직하며 국제금융 연구를 이끌었다. 2014년 아시아인 최초로 BIS 조사국장에 올랐다. 이후 BIS 통화경제국장으로 글로벌 중앙은행 정책 논의를 주도했고 국제통화기금(IMF)과 뉴욕 연방준비은행 자문역 등 정책 경험도 쌓았다.
신 후보자를 세계적 경제학자로 만든 것은 금융위기 연구다. 2005년 잭슨홀 미팅, 2006년 IMF 연차총회 등에서 그는 세계 금융위기(2007∼2008년)를 예측하고 경고한 것으로 이름을 알렸다.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인 2006년 그는 BIS 연구보고서 ‘시스템 관점에서 본 위험과 유동성’에서 레버리지 확대와 자산 가격 상승이 맞물려 금융 시스템 위험을 키우는 구조를 설명하기도 했다.
이 논문은 금리 만으로 경제를 안정시킬 수 있다는 기존 인식에서 벗어나 금융시장과 환율 충격까지 함께 봐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호황기에는 부채가 늘어나도 건전해 보이는 ‘착시’가 나타나지만, 위기 국면에서는 부채 축소가 자산가격 하락과 신용경색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까지 신 후보자와 공동 연구를 진행해 온 신관호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많은 경제학자가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지만, (신 후보자는) 핵심 메커니즘을 짚어낸 소수 인물 중 한 명”이라며 “그 연구를 계기로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았고 이후 관련 분야에서 꾸준히 연구를 이어왔다”고 말했다.
현대 경제사 연구자인 애덤 투즈 미 컬럼비아대 교수는 2022년 “노벨경제학상 위원회가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역동성과 실물경제 연결을 이해하게 한 경제학자에게 상을 준다면 그 상은 신현송에게 돌아갔어야 한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에는 청와대 국제경제보좌관으로 근무하면서 은행 선물환 규제, 외국인 채권 과세, 외환 건전성 부담금(일명 은행세) 등 외환 거시건전성 3종 세트를 주도적으로 만들었다. 당시 외환시장 개입 논란 속에 국제금융기구의 비판을 감내해야 했다. 신 후보자는 2022년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금융위기 이후 관련 연구가 축적되면서 거시건전성 정책이 주류로 자리 잡았다”고 평가했다.
학계에서는 신 후보자의 통화정책 성향을 단순한 ‘매파(금리 인상 선호)’나 ‘비둘기파(금리 인하 선호)’로 구분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많다.
신관호 교수는 “신 후보자는 인플레이션 자체보다 금융안정과 관련된 연구를 많이 해온 학자”라며 “금리를 낮출 때 발생하는 부작용을 지적해온 만큼 향후 금리 인하에는 신중한 접근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은 관계자도 “다소 보수적인 접근을 취할 수 있지만 통화정책 성향을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시장에서는 그의 이런 성향을 두고 ‘거시건전성을 중시하는 실용적 매파’로 평가하기도 한다.
최근 그의 연구 분야는 글로벌 자본 흐름과 채권시장으로 확장됐다. 은행 규제 강화 이후 비은행 금융기관이 채권시장을 중심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위험, 특히 원화 표시 채권 등 현지통화 채권 시장의 취약성을 분석해왔다. 가상자산과 관련해서도 스테이블코인 등이 금융 불안정이나 범죄에 활용될 가능성을 지적하며 규제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다만 신 후보자가 맞닥뜨릴 과제는 만만치 않다. 일각에서는 오랜 해외 활동으로 국내 거시금융 상황에 대한 이해와 정책 경험이 상대적으로 부족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국내 통화정책 분야에도 꾸준히 관심을 갖고 세미나와 강연 등에 참여해 왔다”며 “국제경제와 국내경제를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오히려 글로벌 경험이 강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유가 상승으로 물가 압력이 커지는 동시에 채권금리 상승, 가계·기업 부채 문제로 금융시장 불안이 커지고 있고, 환율 안정과 내수 침체 방지까지 고려해야 하는 복합 위기 국면”이라며 “금리를 올리기도 내리기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신 후보자의) 정책 운용 능력이 시험대에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