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 때요? 제가 1등했던 영상을 봐요. 그날의 희열을 느끼고 싶어서 스스로 일어나는 거죠. 우승 레이스요? 아마 500번, 아니 1000번은 돌려봤을 걸요.”
쇼트트랙은 0.001초를 다투는 종목이다. 선수들은 시속 50㎞로 얼음 위를 달리며 찰나에 승부를 가른다. 그 순간은 너무 짧아서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다. 몸이 이미 알고 있어야 한다. 김길리(22·성남시청)가 우승 장면을 1000번이나 돌려본 그 희열을 몸 깊숙이 새겨두기 위해서다. 가장 힘든 순간, 그 감각이 그를 다시 일으킨다.
2026년 자타공인 ‘월클(월드클래스)’로 인정받은 그는 여전히 밝고 거침없었다. 지난달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 동메달 1개를 따더니 지난 16일(한국시간) 캐나다에서 끝난 국제빙상연맹(ISU) 쇼트트랙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2관왕에 올랐다. 수퍼카에 빗댄 별명 ‘람보르길리’처럼 기어를 올리는 순간 펼쳐지는 ‘추월쇼’가 압권이었다.
김길리를 20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만났다.
Q : 세계선수권 여자 1000m에서 맨 뒤에서 아웃코스로 치고 나와 날들이밀기로 0.009초 차 우승을 거뒀다. 0.009초는 눈 깜빡이는 데 걸리는 시간의 400분의 1이다.
A : “준결승 때 산드라 펠제부르(네덜란드)와 레이스하면서 ‘다음 경기에서는 추월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 왔다. 뒤에 처져 걱정도 됐는데 반 바퀴가 남았을 때 갑자기 속도가 확 붙더라.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추월을 시도했는데 끝까지 속도가 살았다. 날들이밀기 직후엔 솔직히 살짝 늦었다고 생각했다. 제 기록이 먼저 뜨는 걸 보고 기뻤다.”
Q : 여자 1500m에서도 5위에 있다가 아웃코스로 치고 나갔다.
A : “스피드와 체력이 남아 있어 그냥 계속 밟았다.”
두 경기 모두 뒤에서 앞으로, 아웃코스로 파고드는 패턴이었다. ‘람보르길리’라는 별명처럼 후반으로 갈수록 속도가 붙는, 수퍼카의 고회전 엔진을 닮은 레이스 스타일이다. 아웃코스 추월은 인코스보다 주행 거리가 길다. 그럼에도 이기려면 압도적인 순간 가속이 뒷받침돼야 한다. 김길리는 그 무모해 보이는 선택을 경기의 무기로 만들었다.
Q : 최민정에게 닮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A : “아웃코스 추월 능력이다.”
Q : 가장 까다로운 상대는.
A : “펠제부르가 엄청 빠르다. 일반 선수들과 다른, 뭔가 새로운 코스를 탄다. 인코스 추월도 잘한다.”
Q : 스스로 목표 수준에 도달했나. 보완할 부분이 있다면.
A : “저만의 경기 운영 방식을 어느 정도 터득한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이제 시작이구나 싶다. 500m를 보완하고 싶고 장점은 더 극대화하고 싶다. 스타트에서 탄력으로 이어지는 게 핵심인데, 인코스를 파고드는 스피드라든지 선두에서 끌고 가는 능력을 더 키우고 싶다. 내 레이스로 많은 이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고 싶다. 스케이트가 즐겁다. 올림픽 혼성 계주 2000m에서 아직 메달이 없다. 그 종목을 제패할 때까지는 뛸 것이다.”
Q : 최근 JTBC ‘냉장고를 부탁해’ 출연, 청와대 오찬 건배사, 케이팝 그룹 코르티스와의 댄스챌린지까지 이어졌다.
A : “TV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아 신기했다. 승자를 고를 때 고민이 많았는데, 전체적인 완성도 면에서 박은영 셰프님이 조금 앞섰다고 생각했다. 청와대 건배사는 너무 떨렸다. ‘이런 경험을 언제 또 해보겠냐’는 마음으로 즐기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은 건 코르티스를 만난 일이었다고 했다. “평소 노래를 많이 듣고 춤은 따라 추는 정도인데, 같이 촬영한 스노보드 최가온은 부끄러웠는지 도망 다녔다고 하더라(웃음). 저는 대화도 많이 하고 재밌게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