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자. 방탄소년단의 새 앨범 ‘아리랑(ARIRANG)’은 웰메이드 앨범이다. 의심할 것 없는 팝 뮤직의 쾌작이다. 수많은 영미권 톱 프로듀서들의 역량, 그리고 방탄소년단 멤버들의 재능이 모여 만든 금빛 조형물이다. 열네 곡, 41분 내내 스피커를 꽉 채운 초일류 비트(beat)의 호사 위로, 멤버들은 유려한 랩과 가창을 아낌없이 쏟아붓는다. 노랫말 대부분이 영어인 것은 ‘국가대표’로서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서일 것이다.
타이틀곡 ‘스윔(Swim)’은 ‘동양에서 온 틴 팝(teen pop) 아이돌’ 정도로 ‘방탄’을 인지한 서구권 대중을 향해 날리는 달콤한 카운터 펀치다. 음악적 성숙도와 깊이를 보여준 수작. 100% 영어 가사, 미국 배우 주연으로 포르투갈에서 촬영한 뮤직비디오도 서구권 대중을 홀릴 만하다. 방탄소년단의 새로운 챕터는 이렇게 출항지부터 글로벌 레벨이다.
문제는 ‘아리랑’이란 거대한 간판의 활용법이다. 민요 아리랑은 90% 영어 가사의 강렬한 힙합 송 ‘바디 투 바디(Body to Body)’에 한 번 등장한다. 2분 25초부터 30초간 꽹과리·태평소와 함께 이어진다. 민요는 정겹다. 하지만 음악적 개연성은 한참 난맥이다. ‘이런 조화가!’ 하고 무릎을 칠 화학적 결합이 전혀 아니다. 힙합 빵에 김치 한 조각 얹어둔 격. 어쨌든 김치를 알렸으니 대단하다고만 할 건가.
음원 사이트의 곡 해설을 읽어봤다. 그런데 ‘바디 투 바디’에 삽입된 아리랑에 대한 정보는 ‘전통 타악과 합창을 더한 후반부
…’라는 짧은 묘사가 다다. 샘플링된 연주라면 어떤 음악가의 어떤 음반·음원에서 가져온 건지, 만약 새로 녹음한 거라면 그 연주자나 가창자는 누구인지, 알 수 없다. ‘합창’이란 설명도 문제다. 여기서 들리는 본조 아리랑은 같은 선율을 여러 사람이 부르므로 굳이 서구 관점으로 본다 쳐도 합창이 아닌 제창이 맞다.
‘국보 29호’에서 착안해 이름을 붙인 ‘No. 29’은 성덕대왕신종의 종소리가 1분 38초간 지속되는 곡이다. 일견 재치 있고 사려도 깊어 보이는 작명이지만, 뜯어보면 그 반대다. 국가유산 지정번호는 이미 5년 전 폐지된 제도다. 가치 순위가 아닌 행정 편의로 붙인 숫자가 오해를 부를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렇게 방탄소년단의 새 앨범 ‘아리랑’이 우리 전통문화를 갖다 쓰는 방식은 뜻밖에 가볍고 단편적이다. 힙합이나 프로레슬링의 기믹(gimmick·관심을 끌기 위한 속임수 설정)에 가까워 보일 지경이다. 넷플릭스 독점 중계 컴백 콘서트를 위해 다수의 국민이 서울의 ‘큰길’을 내준 데는 ‘아리랑’을 비롯한 전통문화 콘셉트가 한몫했을텐데, 정작 우리문화는 몰이해와 무관심이 대상이 돼버린 듯했다.
21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026 BTS 컴백쇼 서울’은 이런 아쉬움의 상쇄는커녕 확인과 확장이 돼줬다. 이 정도면 그냥 장소만 광화문 앞인, 그냥 컴백쇼다. 이곳을 비춘 넷플릭스의 방식은 무신경 그 자체다. 인트로의 웅장한 드론 숏(shot)을 제외하면 경복궁과 광화문의 아름다움을 적확히 드러내는 화면은 찾기 힘들다. 멤버들의 퍼포먼스와 무대 디자인은 담백하고 품격 있었지만 넷플릭스 카메라가 한 시간 내내 집중한 것도 결국 그 ‘작은 사각형’ 안에 머물렀다. ‘컴백 공연장’에 들어 있는 충무공이순신장군상, 세종대왕상조차 1초 비출 틈이 없을 정도다.
33시간 교통 통제, 26만 운집 예상이란 터무니 없는 추산, 1만 이상의 경찰과 공무원 인력 동원, 광화문 일대의 미학과 역사성이 거세된 연출
…. 정부·서울시·국가유산청은 뭘 했나. 관객과 안전 요원의 수가 엇비슷할 지경의 적은 인파 덕에 무사히는 끝났지만, 이것은 ‘문화적 대참사’다. 인명 피해를 남긴 사회적 대참사는 아니지만, 한 나라 문화 정책에서 철학과 방향성과 대외 협상력의 부재를 총체적으로 드러낸 난국이다.
부디 주도권을 잡길 바란다. 경복궁·광화문·세종대로 일대는 국가 상징 공간이다. 우리 당국은 아예 콘티 작성 단계부터 주최사·주관사와 ‘이런 숏, 이런 인서트를 넣어 문화유산을 충분히 조명한다’는 식의 논의와 계약을 진행했어야 한다. 영국인 총연출자 해미시 해밀턴에게만 전권을 넘긴 건가. 컴컴한 도심에 전광판의 ‘붉은 N’만 유독 빛나는 넷플릭스 첫 화면이나 고담 시티 같은 전경 숏으로 세종대로를 190개국에 보여주려면 왜 국가 상징 공간을 내줬나. ‘세계인이 열광
…’ 같은 헤드라인만 봐도 배가 불러오던 문화적 곤궁기는 지났다. 문화 강국은 속부터 다져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