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인공지능(AI) 칩을 자체 생산하기 위한 초대형 공장 ‘테라팹(Terafab) 프로젝트’ 청사진을 공개했다. 삼성전자 등 기존 반도체 공급망만으로는 AI 칩 수요를 충족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다만 실현까지는 적잖은 난관이 예상되는 만큼 국내 반도체 업계는 향후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머스크는 21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 있는 테슬라 생산공장 ‘기가 텍사스’에서 “테라팹은 역사상 가장 장엄한 반도체 생산 프로젝트”라며 “사람들이 상상조차 못한 수준까지 모든 것을 한 단계 끌어올릴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발표는 X에서 생중계됐다.
테라팹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와 메모리 양산, 첨단 패키징을 한 데 묶은 일종의 ‘종합 반도체 제조기지’다. 설계·제조·패키징이 분리된 기존 반도체 산업 구조와 달리 이를 수직계열화해 칩 생산과 개선 속도를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월 100만 장의 웨이퍼 생산을 목표로 한다. 이는 월 10만 장 수준인 대만 TSMC 기가팹(Gigafab)의 약 10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이를 통해 머스크가 확보하려는 AI 연산능력은 연간 약 1테라와트(TW) 규모로, 현재 전세계 AI 연산 능력(20기가와트)의 약 50배에 해당한다. 테라팹이란 이름도 생산능력과 연산능력을 대폭 늘린 시설이란 의미다.
머스크의 반도체 직접생산은 자율주행·로봇을 넘어 우주까지 확장하려는 그의 사업 구상에서 칩 공급 부족이 가장 큰 병목이라는 판단에서 나왔다. 그는 “삼성·TSMC·마이크론 등 기존 공급망에 매우 감사하며 그들의 칩을 모두 구매할 것”이라면서도 “공급 속도는 우리가 원하는 수준에 훨씬 못 미친다”고 지적했다. 이어 “선택지는 테라팹을 짓거나, 아니면 칩을 확보하지 못하는 것뿐”이라고 덧붙였다.
테라팹에서는 두 종류의 AI 칩이 생산된다. 테슬라 자율주행차와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에 들어가는 저전력 추론칩과 우주 환경에서 구동되는 고성능 AI 칩이다. 특히 우주용 칩은 방사선과 고에너지 입자 등 극한 환경을 고려해 별도로 설계될 예정이다.
테슬라의 테라팹 건설 공식화로 반도체 업계 전반에 지각변동이 예고된다. 당장 글로벌 인력 쟁탈전이 한층 치열해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미 테슬라는 테라팹 엔지니어 채용 공고를 내면서 반도체 시스템온칩(SoC) 개발 엔지니어의 경우 연간 8만8000달러(약 1억3250만원)에서 24만8000달러(약 3억7000만원)에 이르는 연봉에, 추가 주식 보상을 제시했다. 앞서 머스크는 지난달 16일 자신의 테슬라코리아 X 계정에 ‘AI 칩 디자인 엔지니어’ 채용 공고를 직접 공유한 바 있다.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반도체 산업은 장기간 축적한 공정 기술과 경험이 중요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테슬라가 전기차에서 이뤄낸 ‘제로 투 원’(경쟁자가 없는 영역에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전략)의 성공 공식이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최대 450억 달러(약 67조원)로 추정되는 투자 비용 역시 부담 요인이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위원은 “선두 기업들이 50년 넘게 축적해온 기술을 테슬라가 단기간에 따라잡기는 현실적으로 쉽지않다”면서도 “미국이 반도체법 제정 이후 자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 구축 기조를 일관되게 유지하는 만큼, 트럼프 정부가 노골적으로 지원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