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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태의 타임머신] 수에즈 운하 마비

중앙일보

2026.03.22 08:04 2026.03.22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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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태 작가·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2021년 3월 23일 오전 7시 40분 지중해와 홍해를 연결하는 이집트 수에즈 운하 일대에 모래 섞인 폭풍이 몰아쳤다. 초대형 컨테이너선 에버기븐(Ever Given)호가 시속 74㎞의 강풍을 맞았다. 기울어진 배를 조종할 수 없게 되었고 선체가 항로를 이탈하면서 시계 방향으로 회전했다. 결국 에버기븐호는 수에즈 운하 남측 입구에서 약 6㎞ 떨어진 위치에 좌초되어 수로를 완전히 막았다. 수에즈 운하 마비 사고의 시작이었다.

수에즈 운하의 수면 폭은 약 200~280m에 불과하다. 그 좁은 틈으로 전 세계 해상 물동량의 12~15%, 컨테이너 물동량의 30%가 오가고 있다. 반면 에버기븐호는 폭 59m, 길이 400m, 22만t 크기의 초대형 컨테이너선이었다. 길이 20피트(6.09m)의 표준 컨테이너 1개를 1TEU로 표기하는데, 에버기븐호는 2만TEU급 선박이었다. 축구장 네 배 길이의 배 위에 촘촘하게 배치된 컨테이너는 바람이 빠져나갈 틈을 주지 않고 무게 중심을 높였다. 측면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세계 무역을 마비시키는 데에는 단 한 척의 배로도 충분했다. 19세기에 만들어진 수에즈 운하는 21세기의 물류를 감당하기 벅찼다. 구조 노력이 계속되었지만 사태는 쉽게 해결되지 않았고, 결국 보름달이 뜨면서 밀물이 높게 차오른 다음에야 에버기븐호가 물 위로 떠오를 수 있었다. 사고 발생 6일 만의 일이었다.

수에즈 운하 마비 사고는 국제 무역과 글로벌 경제 시스템의 취약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일부 핵심 해상 통로가 마비되면 물류가 멈추고 산업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걸프 산유국의 석유와 천연가스가 수송되는 호르무즈 해협 역시 마찬가지다.

실제 선박이 오가는 항로의 폭이 6㎞가량에 지나지 않는 바닷길을 통해 전 세계 원유 수송량의 20~30%가 지나간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서 국제 유가가 요동치고 세계 경제가 불안에 떨고 있다. 평화를 되찾은 바다 위로 풍요를 실은 배가 바삐 오가는 날이 어서 돌아오기를 희망한다.

노정태 작가·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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