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달의 시작은 보좌관에게 내던진 언어공격행위였다. 초대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후 신문, 방송, 유튜브, 국회 청문회에서 막말과 함께 공개된 부정직, 몰염치, 탈법 의혹은 국민을 놀라게 했다. 1월 21일 대통령은 지명을 철회했다.
지명 취소에 이르게 한 많은 이유 중에서 ‘수십억 원 차익 로또’로 불린 반포동 원펜타스 부정 청약을 포함하는 경제적 이슈가 언론에 집중적으로 부각되었다. 우리 사회를 압도하고 있는 경제 만능주의, 돈에 종속된 현실을 대변하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상대를 존중하는 품격있는 말을 할 줄 모르거나 폭력적인 언행을 일삼는 행위만으로도 세금으로 월급을 받으며 권력을 행사하는 장관직이나 공직에 오를 수 없는 문화를 정립해야 한다. 빈곤을 타파한 산업화와 평등한 권리 신장을 목표한 민주화에 성공한 나라로 세계로부터 칭송받는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사회의 모습은 대화하고 설득하는 공동체가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말 폭력은 존재를 부정하는 행위
폭력에 둔감한 사회 초래할 수도
공직 못 오르게 하는 기준 돼야
후보자의 ‘말 폭력’은 가혹했다. 상대에 대한 배려는커녕 존재 자체를 무시했다. 윤리 의식도 부재했다. 자신의 활동을 다룬 언론보도 관리가 마음에 안 든다고 “너 그렇게 똥오줌을 못 가려?”라고 소리쳤다. 바보로 비하하며 인성을 모욕한 것이다. “너 뭐 아이큐가 한 자리야”라며 능력을 부정하고, “너 대한민국 말을 못 알아들어?”라며 정체성을 조롱하고 부정했다. 더욱이 “내가 널 정말 죽였으면 좋겠다”며 신체에 대한 위협도 서슴지 않았다. 두려움으로 얼어붙은 보좌관을 “야 답을 해라 정말”로 다그치며 투명 인간으로 멸시하였다. 악을 쓰는 고음, 비하하는 호칭, 속사포 힐난이 담긴 녹취록의 정황은 살벌한 비언어적 상황을 보여준다. 이러니 보좌관들은 신경안정제 복용으로 자아의 상실에 대한 좌절과 분노를 진정시켜야만 했다.
폭력적인 언어공격행위는 “상대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고, 상대가 자기 자신에 대하여 비하하거나 부정적으로 느끼게 하는 언어 행위”로 타인을 물리적·상징적으로 지배하려는 행위에서부터 타인의 신체, 소유물, 정체성, 논쟁적 이슈에 대하여 완벽하게 통제하려는 것이다(‘Verbal aggressiveness’, Infante & Wigley). 언어폭력이 사람의 인성·인격·능력을 부정하고 두려움을 야기하며 개인과 공동체의 존재감을 파괴한다는 의미이다. 물리적으로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는 폭력이 아닌 언어 행위라고 해서 결코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더욱이 언어적 공격은 신체적 공격보다 쉽게 따라 할 수 있고, 법적·사회적 제재가 가볍고 낮아서 모방할 가능성도 크다. 따라서 가정, 학교, 일터, 사회적 인간관계와 같은 일상생활에서 있을 수 있는 일로 여겨지게 한다. 또한 공격적인 말과 공격적인 대응이 지속하며 발생하는 ‘나선 현상’은 폭력적인 환경을 확대하고 언어적 폭력에 둔감한 공동체 의식을 초래할 수 있다. 파괴적인 말에 대한 엄격한 대처와 함께 건설적인 말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고 말의 가치를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하는 까닭이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는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소피스트, 프로타고라스의 말처럼 각자의 생각과 주장을 진리의 척도로 받드는 시대다. 절대 진리는 후퇴하고 모든 게 상대적이 되었다. ‘상대적’의 대두에 따른 불확실성 속에서 자기(집단)의 이익을 위한 공격적, 폭력적 언행과 타인과 공동체에 대한 불신감 증가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인간은 유일하게 말을 사용해 자신을 표현하고, 타인과 관계를 형성 유지 발전하고, 공동체의 유대감과 협력을 고양할 수 있는 동물이다. 동시에 인간은 말 때문에 타인과 관계가 악화되고 해체되며, 공동체의 구성원끼리 분열하고 적대시할 수 있는 동물이다. 인간의 공동체는 결국 말이 만드는 공동체이다. 말이 폭력적이면 공동체도 폭력적이고, 말이 따뜻하면 공동체도 따뜻하다. 사람들은 좋은 말로 이웃과 소통하며 신뢰의 정을 나누는 좋은 관계가 빚어내는 행복감을 그리워한다. 대화와 설득의 좋은 말이 정치·경제적 요소 못지않게 중요하게 인식되고, 개인의 인성, 능력, 품성을 판단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될 때 합리적인 행복한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