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리셋 코리아] 호르무즈 파고 비켜간 일본의 실리 외교

중앙일보

2026.03.22 08:10 2026.03.22 13:23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조양현 국립외교원 교수·리셋코리아 한일관계 분과장
지난 19일 워싱턴 D.C.에서 개최된 미·일 정상회담은 양국 간 폭넓은 협력을 확인하고 큰 충돌 없이 마무리되었다. 미국은 일본의 대규모 대미 투자를 얻었고, 일본은 이란 정세 관련 미국의 강한 압박에 맞서 전투가 지속하는 현시점에서의 자위대 파견 불가 원칙을 지켜냈다. 이번 회담은 당초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에 앞선 대중국 정책 협의가 주된 목적이었으나, 2월 말 이란 전쟁이 발발하면서 호르무즈 해협 관련 일본의 대응이 최대 현안으로 급부상했다. 다카이치 총리의 첫 방미가 극도로 어려운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일본은 헌법적 제약과 동맹의 의무 사이의 줄타기에서 노련한 외교술을 선보였다.

안전 항로 확보에 일본 공헌 약속
군함 파견 압박 막고 신뢰도 얻어
실익 추구와 리스크 관리가 교훈

회담 전 트럼프 대통령은 SNS를 통해 일본을 비롯한 동맹국들의 비협조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호르무즈해협의 안전 확보를 위한 함선 파견을 강하게 압박했다. 그러나 실제 공개된 정상회담의 모두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의외로 온화한 태도를 보이며 “일본은 충분히 대응하고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이러한 반전은 다카이치 총리의 철저한 논리적 대응과 전략적 메시지 관리 덕분이었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란의 핵 개발, 호르무즈 봉쇄 관련 미국의 입장을 지지하면서 “미국과 긴밀한 소통 지속”을 약속하였고, “세계 평화와 번영을 가져올 사람은 트럼프 대통령뿐이다”라고 치켜세웠다. 그렇지만 그는 무력행사를 영구히 포기한 일본 헌법 9조와 안보법률의 한계에 대한 설명과 함께 이란 정세의 조기 안정이 중요하다는 일본의 입장을 전달하고, 군함 파병 등 구체적인 공헌책은 약속하지 않았다. 일본은 아베 신조 내각 시기에 헌법 해석 변경과 안보법제 개정으로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가능해졌다. 다카이치는 이번 전쟁이 미국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되었기에 법률 적용에 의한 자위대 파견이 곤란함을 설득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이러한 법적 한계를 이해하고, 지난해 일본이 보여준 관세 및 방위비 협력의 진정성, 그리고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대중국 견제를 위한 다카이치 내각의 역할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일본 외교의 노련함은 이란 관련 다자간 공동성명의 도출 과정에서 빛을 발했다. 일본은 회담 2시간 전에 영국·프랑스·독일 등 6개국과 공동으로 이란의 호르무즈 봉쇄를 강력히 규탄하고 안전한 항로 확보를 위한 ‘적절한 노력’에 공헌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는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함으로써 그의 체면을 세워주는 동시에, ‘적절한 노력’에 대한 각국의 입장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향후 대응의 유연성을 남긴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미국은 호르무즈해협의 자유 항행을 위한 국제연대를 제안하고 있다. 이번 회담의 비공개 세션에서 일본은 전쟁 종료 후 유엔 결의를 통한 다국적 관리체제에 소해정 파견, 상선 호위 등 비전투적 기여 가능성을 제안하여 미국의 장기적 기대를 충족시키려 했을 수 있다. 동맹의 도리는 다하면서 당장의 위험한 군사적 개입은 피하는 전략이다.

주목할 점은 일본 외교가 미국 일변도로 기울어지지 않고 실익 추구와 리스크 헤지도 병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1970년대 오일쇼크의 뼈아픈 경험을 기억하는 일본은 중동 산유국들과 우호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2019년 미·이란 갈등 당시 호위 연합에 참여하는 대신 독자적인 정보 수집 활동을 펼치며 중재를 시도했던 전례가 있다. 현재도 자국 선박의 안전 항행을 위해 이란 측과 독자적인 채널로 협의 중이다.

일본 외교의 이러한 모습은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에 과잉 반응하기보다는 긴밀한 소통을 통해 미국의 진의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점을 보여줬다. 우리 역시 관세, 대미 투자, 방위비, 핵 협상 등 다양한 현안이 얽혀 있는 만큼, 전쟁의 장기화 가능성 등 불확실성을 전제로 국제사회와 보조를 맞추는 현실적인 로드맵을 그려야 한다. 우리 선박의 안전과 전후 복구를 고려해 이란과의 양자 관계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유연함도 필요하다. 중동 분쟁으로 인한 인태 지역 내 미국의 전략자산 약화에 따른 안보 공백에 대한 철저한 대비 태세를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조양현 국립외교원 교수·리셋코리아 한일관계 분과장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