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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조의 혁신의 우주경제] 운명처럼 느껴지는 일론 머스크의 화성 탐사

중앙일보

2026.03.22 08:14 2026.03.22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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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조 서울대 명예교수
1969년 7월 20일. 인류가 처음으로 다른 천체에 발을 디딘 역사적 순간이었다. 닐 암스트롱의 “인류를 위한 한 걸음”이라는 말과 함께 달 표면에 새겨진 발자국. 전 세계 6억 명이 흑백 TV 앞에서 숨을 죽이고 지켜봤다. 그 장면을 가능하게 한 건 거대한 새턴 V 로켓이었다. 그리고 그 로켓을 설계한 사람은 베르너 폰 브라운(1912~1977)이었다. 나치 독일에서 V-2 로켓을 만들던 과학자가 미국으로 건너와 우주개발의 아버지가 됐다. 그는 달 착륙을 이뤘지만, 그의 눈은 늘 달 너머를 향해 있었다. 붉은 행성, 화성. 1961년 존 F 케네디가 “1960년대 안에 인간을 달에 착륙시키겠다”고 선언했을 때도 폰 브라운은 속으로 화성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에게 달은 단지 중간 기착지일 뿐이니까.

달 탐사 로켓 제작한 폰 브라운
1948년 쓴 책서 화성탐사 기획
최고 관직명이 공교롭게 ‘일론’
탐사 방식도 스타십 쏙 빼닮아

일론 머스크가 꿈꾸는 화성의 돔시티. 스타십이 화성의 대지를 박차고 올라가고 있다. [사진 스페이스X]
텃세 답답함 풀기 위해 화성탐사 집필
하지만 그는 끝내 화성 땅을 밟지는 못했다. 그러나 1948년, 전쟁의 기억이 채 가시지 않은 시절에 한 권의 기묘한 책을 썼다. 본인에게 더 편한 언어인 독일어로 쓴 책, 『프로젝트 마스(Das Marsprojekt)』. 이건 단순한 공상과학(SF) 소설이 아니었다. 로켓 공학자로서의 치밀함이 그대로 녹아든 기술 청사진이었다. 당시 폰 브라운은 뉴멕시코 화이트 샌즈 미사일 실험장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냉전 초기라 로켓 개발 예산이 넉넉지 않았고, 기존 로켓 전문가들의 텃세 속에 천재의 재능을 쏟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 답답함을 풀기 위해 그는 펜을 들었다. 소설 속 배경은 1980년대. 인류는 이미 지구 궤도에 거대한 우주정거장을 완성하고, 그곳에서 10척의 거대한 우주선을 조립한다. 연료 보급을 마치고 화성으로 향하는 대함대. 놀랍게도 그가 계산한 비행시간은 오늘날의 정밀 계산과 거의 일치한다.

아폴로 우주선을 쏘아올린 새턴 V를 만든 베르너 폰 브라운이 1948년 직접 쓴 『프로젝트 마스(Das Marsprojekt)』의 표지. 책 속 화성 최고지도자 직함이 ‘일론’으로 묘사된다. [중앙포토]
이 책은 1952년에 일부 내용이 기술 서적으로 먼저 나왔고, 완전한 영어 소설 형태로는 2006년에야 세상에 공개됐다. 그리고 그 안에, 아무도 예상치 못한 한 문장이 숨어 있었다. ‘화성의 최고 지도자 직함은…일론(Elon).’ 폰 브라운은 화성을 이미 고도로 발달한 문명사회로 설정했다. 소설 속 문장은 명확했다. 화성 정부는 상원과 하원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그들의 최고 행정 지도자는 보통 투표로 선출되었는데, 그 직함은 ‘일론(Elon)’이라 불렸다. 그는 이 단어를 히브리어에서 따온, 그냥 멋진 관직명 정도로 생각했을 뿐이다. 누군가의 실제 이름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그로부터 72년이 흐른 2020년 12월 30일 밤. 남아프리카에서 태어나 캐나다와 미국을 거쳐 테슬라와 스페이스X를 이끄는 한 남자가 영화 ‘영 프랑켄슈타인’의 대사를 인용하며 “Destiny, destiny. No escaping that for me”(운명, 운명. 나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것)라는 글을 X(옛 트위터)에 남겼다. 화성 이주라는 거대한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자신의 심경을 대변하는 듯한 문장이었다. 사람들은 늘 그를 미치광이냐 천재냐로 갈랐다. 그때 한 사용자가 댓글을 달았다. 오래된 책 페이지 사진 한장. 희미한 흑백 인쇄 속에 선명하게 박힌 단어 하나. ‘Elon’. 일론 머스크는 스마트폰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며 숨이 막혔을 것이다. 1948년에 쓰인 소설 속에서 화성의 최고 지도자 직함이 정확히 자신의 이름과 일치한다니. 철자 하나 틀리지 않았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답글을 썼다. ‘Are we sure this is real?(이게 정말 사실인가요)’ 이어 곧바로 덧붙였다. ‘Time to read this book(이 책을 읽어볼 때가 됐군요).’

온라인은 폭발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스크린숏을 퍼 나르고, 논쟁이 벌어졌다. 머스크 본인조차 이 사실을 전혀 몰랐다. 평소처럼 밤늦게까지 일하다가 알림 하나에 깜짝 놀랐으리라. 70년 전 과거의 한 페이지가,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삶과 오버랩된 것이다. 각본 없는, 소름 돋는 운명의 장면이었을 것이다.

베르너 폰 브라운. [중앙포토]
폰 브라운 씨앗, 일론 머스크가 키워
이 우연은 이름의 일치로 끝나지 않았다. 더 섬뜩한 건 기술적 유사성이었다. 폰 브라운이 1948년에 구상한 화성 탐사 방식은 지금 스페이스X의 스타십 계획과 놀랍도록 닮았다. 지구 저궤도에 대형 정거장을 만들고, 거기서 다수의 우주선을 조립, 연료 보급 후 함대 형태로 출발. 폰 브라운은 종이와 연필로 계산한 그 시나리오를, 머스크는 21세기 최첨단 로켓으로 구현하고 있다. 단순히 한 번 다녀오는 탐사가 아니라, 대규모 이주와 영구 정착을 목표로 한다는 점도 똑같다.

폰 브라운은 많은 전문가들의 회의적인 시각 속에서도 새턴 V로 달을 정복했다. 머스크 역시 민간 로켓을 만든다고 했을 때 전문가들은 “돈만 태우다 끝난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새턴 V는 달에 갔고, 팰컨 9이 재사용 로켓 시대를 열고, 스타십은 화성 착륙을 꿈꾼다. 2026년 무인 화성 착륙, 2030년대 초반 유인 착륙. 76년 전 한 과학자가 꿈꾼 청사진이 이제 현실의 시간표가 됐다. 이건 초자연적인 예언이 아니라, 인류의 우주 개척 의지가 만들어낸 서사의 연속이다. 폰 브라운이 뿌린 씨앗이 머스크라는 토양에서 자라난 것이다. 언젠가 화성 붉은 먼지 위에 인류의 첫 도시가 세워지고, 첫 발자국이 찍히는 날. 우리는 그때야 비로소 깨달을 것이다. 2020년 12월 트위터에 글을 올리는 순간, 머스크가 지은 놀란 표정이야말로 우주가 우리에게 보낸 가장 강렬한 신호였음을.

김승조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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