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중국 랴오닝성 단둥시 기차역 출구 앞에서 한 남성이 목소리를 높였다. 또렷한 북한 말투였다. 누군가를 한참 기다리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일행들과 뜨겁게 포옹했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들은 그의 옆에서 방방 뛰었다. 평양발 여객 열차를 타고 중국으로 건너온 북한 승객들이다. 이날 이들을 비롯해 200여 명의 사람이 쏟아져 나왔다. 여행용 가방과 무언가 가득 담긴 대형 봉투를 양손에 들었다. 기차역 앞은 만남의 광장으로 변했다.
북한과 중국을 오가는 여객 열차가 코로나19 이후 6년 만에 다시 운행을 시작했다. 지난해 9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정상회담에서 만난 지 6개월 만이다. 압록강 위로 놓인 중조우의교(中朝友誼橋)를 매일 달린다. 평양과 베이징을 왕복하는 국제열차는 지난 1954년부터 운행했다. 북·중 우호의 상징의 복원과 함께 양국 관계도 정상화 궤도에 오른다. 지난 몇 년간 차갑게 식었던 오랜 혈맹 사이에 훈풍이 불기 시작했다.
각기 다른 계산기를 두드리던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북한은 경제적 이득을, 중국은 외교적 카드를 얻었다. 지난 1~2월 북·중 교역액은 1년 만에 20%나 늘었다. 무려 6000억원에 달한다. 2017년 이후 9년 만에 최고치다. 북한은 최근 노동당 제9차 당 대회에서 국가 성장 전략의 한 축으로 관광을 공식화했다. 러시아에 이어 중국 관광객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이다.
중국은 당근을 흔들며 북한을 품에 안는다. 대북 영향력 회복을 만천하에 과시한다. 지난해 천안문 망루에서 김 위원장을 첫 다자외교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그리고 시 주석은 머지않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한 테이블에 앉는다. 꾸준히 김정은에 러브콜을 보냈던 트럼프다. 중국을 뺀 북·미 대화는 꿈도 꾸지 말라는 신호를 보낸 셈이다.
북한과 중국에 미국까지 서로 시선을 교환한다. 한국이 낄 자리는 있을까.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 7일 내외신 기자회견서 90분 동안 질문 21개를 받았다. 한국 매체엔 2년 연속 입 열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한반도 문제 역시 일언반구도 없었다. 뒷전으로 밀린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다음 주 열릴 듯했던 미·중 정상회담이 한 달여 미뤄졌다. 트럼프 대통령도 재차 북한과의 대화를 언급했다. 복잡한 수 싸움 오가는 외교 바둑판 위에서 한국이 꺼내 들 카드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