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속노화 담론으로 인기를 얻은 의학박사가 지난해 말 사생활 스캔들에 휩싸였을 때, 관련 뉴스에 쏟아진 비난과 조롱의 배경은 단순하지 않았다. 유명인의 추락을 즐기는 반응도 있었지만, 그의 건강 담론에 반감을 품어온 이들이 이때다 싶어 불만을 표출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저속노화 식단은 소고기·돼지고기 같은 적색육, 빵·떡·면·백미밥 등의 정제 탄수화물, 가공식품을 줄이고 통곡물·채소를 늘리며 콩·생선 등으로 단백질을 섭취하자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숏폼 영상, 술, 커피, 자극적인 음식에서 오는 값싼 도파민을 억제하고 독서·음악·운동·명상 같은 느린 도파민을 추구하는 이른바 도파민 리모델링도 권한다. 그런데 왜 이런 메시지가 일부에서 강한 반감을 불렀을까.
적색육·지방 권장 식단 발표
기존 곡물 강조 식단과 충돌
적색육 유해성, 학계 의견 갈려
엘리트 불신 겹쳐 문화전쟁화
저속노화 의사 추락에 가해진 조롱 오늘날 건강 담론은 단순한 의학적 조언을 넘어 라이프스타일 코칭과 자기계발의 성격을 띤다. 반감을 가진 이들은 이런 조언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은근한 죄의식을 불어넣는다고 느낀다. 여기에 환경 담론까지 결합하면 압박감은 더 커진다. 이 의사는 ‘지구 건강 식단(planetary health diet)’이 자신의 저속노화 식단과 결이 같다며 “붉은 고기를 덜 먹어 내 건강도 지키고 환경도 지키자”고 여러 차례 말했다. 2019년 영국 의학저널 랜싯과 노르웨이 재단 EAT의 협업으로 발표된 이 식단은 대규모 축산업이 온실가스 배출과 기후 위기에 크게 기여하고, 붉은 고기가 심혈관질환과 암 위험을 높인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식물성 위주 식사를 하고 적색육은 일주일에 스테이크 반 개 정도만 먹으라고 권한다.
이런 캠페인이 확산될수록 붉은 고기를 즐기는 이들은 자신이 건강도 못 챙기고 환경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으로 취급받는다는 압박을 느낄 수 있다. 스캔들이 터졌을 때 “음식 절제하라더니 다른 데서 도파민을 찾으셨네” “저는 삼겹살로 도파민 충전하면서 건전하게 살게요” 같은 빈정거림이 쏟아진건 그런 죄의식에 대한 반작용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과학적 논쟁도 있다. 가공식품과 단순당이 건강에 해롭다는 데는 이제 큰 이견이 없다. 그러나 가공육이 아닌 적색육, 즉 스테이크나 갈비구이까지 얼마나 해로운가를 두고는 의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적색육에만 있는 필수 영양소가 있으므로 섭취는 하되 최소화해야 한다는 견해가 아직 주류지만, 적색육이 암과 심혈관질환 위험을 유의미하게 높인다는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논문도 최근 적지 않다. 국내 의사들 사이에서도 유튜브 등을 통해 관련 논쟁이 거세다. 다만 한국은 아직 미국처럼 본격적인 이념·문화 전쟁 단계까지는 아니다.
미국에서는 적색육 논쟁이 이미 전쟁에 가깝다. 올해 1월 트럼프 행정부가 내놓은 새 식단 지침은 그 불길에 기름을 부었다. 탄수화물은 과거보다 훨씬 줄이고 단백질은 늘리며 지방은 크게 제한하지 않는, 이른바 저탄고지에 가까운 방향이다.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보건부 장관은 과거 가이드라인에서 금기시되던 적색육과 전지방 유제품을 최상위에, 곡물을 최하위에 둔 역삼각형 도표를 제시하며 “진짜 음식(real food)을 먹을 권리”를 강조했다.
이전 식단 지침은 1977년 맥거번 보고서 이후 저지방 권고와 적색육 경고를 핵심으로 삼아왔다. 빵·시리얼 등이 권고 식단의 큰 비중을 차지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이것이 설탕·곡물 업계 로비의 결과였다고 의심한다. 2015년 세계보건기구가 가공육을 1군 발암물질, 적색육을 2A군 발암추정물질로 분류한 것도 이런 흐름을 강화했다. 비판자들은 지방과 지방 많은 적색육이 악의 축으로 공격받는 동안 정제 탄수화물과 당, 그리고 이들이 결합된 시리얼 같은 가공식품이 미국인의 건강을 망가뜨렸다고 본다.
트럼프 식단 뒤에 축산업계 로비 있나 물론 새 식단 지침도 축산업 로비 의혹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과거 지침이 지방의 위험만 과장하고 정제 탄수화물과 당의 위험을 과소평가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 가운데 적색육과 동물성 포화지방을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하버드 공중보건대학원의 월터 윌렛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의 적색육·전지방 권장이 “순전히 틀렸고 미국인의 건강에 위험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그 역시 예전 같은 무오류의 권위는 아니다. 그가 공동 주도한 지구 건강 식단 자체에 대한 반감과 반박도 최근 몇 년간 거세졌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첫째, 영양학 자체에 대한 불신이다. 어제는 지방이 적이었다가 오늘은 설탕이 더 큰 적이라 하니, 내일은 또 다른 말이 나올지 모른다. 둘째, 기후 정치에 대한 피로감이다. 건강하게 먹자는 권고가 어느 순간 지구를 구하기 위한 도덕적 의무로 제시되면 사람들은 지친다. 셋째, 엘리트 불신이다. 하버드와 국제기구, 글로벌 재단이 내놓는 식단이 과연 모두의 현실을 반영하느냐는 의심이다. 통곡물과 신선한 채소는 서민에게 오히려 경제적으로 부담이 될 수 있고, 고기를 귀하게 여겨온 오랜 정서도 있다. 그런데 이를 무시한 채 선민의식으로 가르치려 든다고 느끼는 것이다. 트럼프는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들어 식단 문제를 “평범한 미국 서민의 접시에서 스테이크를 빼앗으려는 글로벌리스트 리버럴 엘리트”의 문제로 프레이밍한다.
IT 거물들도 엇갈린 행보를 보이고 있다. 빌 게이츠는 식물성 대체육과 실험실 합성육을 미래의 대안으로 제시해 왔다. 반면에 일론 머스크는 적색육·고단백 식사를 공개적으로 옹호한다. 그는 2024년 어느 팟캐스트에서 “활력을 위해 아침으로 스테이크와 달걀을 먹는다”며 축산업이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라는 주장은 “완전 거짓말”이라고 일축했다. 머스크에게는 ‘환경 문제를 무시하는가’라는 비난이, 빌 게이츠에게는 ‘그럼 대체육은 초가공식품이 아닌가’라는 반박이 따라다닌다.
적색육의 진실은 무엇일까. 감정을 걷어내고 나면 남는 과학은 여전히 모호하다. 바로 그 애매함 위에 정치와 계급 감정, 기후 담론이 덧씌워져 있다. 우리가 할 일은 어떤 이론도 맹신하지 않는 것, 내 몸의 반응에 귀를 기울이는 것, 쏟아지는 정보 뒤에 숨은 자본과 권력의 의도를 읽어내는 것이다. 식탁에서도 비판적 태도가 필요한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