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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10년 후 이재명 정부 사법개혁은 어떻게 평가받을 것인가

중앙일보

2026.03.22 08:22 2026.03.22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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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섭 전 국회의원
소위 ‘사법개혁 3법’ 중 어떤 것이 가장 악법일까? 다수의 전문가는 법왜곡죄를 최악으로 꼽는다. 판사나 검사 등이 의도를 가지고 법을 잘못 적용하는 것을 막겠다고 만든 이 법은 내용과 적용 범위가 불분명해서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처벌을 받는다는 것인지 미리 알기 힘들다. 사건 결과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판·검사를 상대로 고소를 남발하는 것은 덤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이 법이 대한민국 사법 질서에 큰 타격을 입히기는 어렵다. 위헌이라는 점이 너무나 명백하기 때문이다. 로스쿨 형법 강의 첫날에 배우는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정면으로 반한다. 만에 하나 이 법조항 위반으로 판사나 검사가 기소된다면 틀림없이 위헌 결정을 받을 것이다. 혼란을 초래할 뿐 영구적인 퇴행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법왜곡죄, 위헌 결정으로 정리 가능
대법관 증원법, ‘사법개혁’ 중 최악
학급당 학생 수 넘는 대법관 25명은
민주주의 퇴보시킨 실패 사례 될 것

재판소원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상 4심제가 되고 분쟁 해결에 더 큰 비용과 시간이 소요된다는 비판은 분명히 일리가 있다. 그러나 조직의 크기나 인력 구조에 비추어 볼 때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에서 확정되는 사건을 전반적으로 살펴보겠다고 나설 가능성은 극히 작다. 초기에는 신청이 폭주하겠지만 조금 지나면 찻잔 속의 태풍처럼 큰 파장 없이 자리를 잡을 것이다. 헌법재판소를 아래로 보던 대법원 자존심에 생채기는 남을 수 있겠다.

가장 큰 부작용을 불러올 것은 대법관 증원법이다. 사실 여기에 대해서는 여권의 사법개혁 방향에 부정적인 사람들도 큰 반대는 하지 않았다. 연간 4만 건이 넘는 사건에 시달리는 대법원에 인력을 증원해서 사건 처리를 신속하게 한다는 명분은 일견 그럴듯해 보이기 때문이다. 비판은 대체로 현직 대통령이 너무 많은 신임 대법관을 임명하게 되어 대법원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 그쳤다. 그러나 대법관의 수를 대폭 늘리는 일에는 그보다 훨씬 큰 함의가 있다. 최고법원의 권위를 실추시킴으로써 3권분립의 한 축인 사법을 약화시키고 더 나아가 우리 사회에서 약자, 소수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보호에 큰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왜 그런지 보자.

대법원은 원칙적으로 전원합의체에서 사건을 심판한다. 전원합의체는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12명의 대법관이 모두 참여하고 대법원장이 재판장을 맡아서 13명으로 구성된다. 대법원에 오는 사건이 워낙 많아서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사건은 대법관 4명으로 이루어진 부(部)에서 처리하지만 어디까지나 예외적이고 불가피한 현상일 뿐이다. 기존의 판례를 바꾸거나 행정법규의 위헌, 위법이 문제되는 경우는 물론 국민의 인권과 관련되는 중요한 사건은 모든 대법관이 참여해서 논의하는 전원합의체에서 숙의를 거쳐야 한다. 때문에 대법관의 숫자는 지극히 중요하다. 너무 많으면 제대로 된 토론이나 합의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정원 9명을 고수하는 것도 그래서이다.

민주당의 대법관 증원법은 이 숫자를 25명으로 늘린다. 2025년 대한민국 학급당 학생수 20.91명을 훌쩍 넘는다. 13명이 하는 회의와 25명이 하는 회의는 질적으로 다르다. 각자 한마디씩 하기도 힘들다. 결과에 대한 각 구성원의 책임이 절반으로 줄어들기 때문에 엉뚱하고 무책임한 주장을 펼치기도 쉽다. 자신을 임명해 준 권력자의 눈에 드는 의견을 내려는 대법관도 등장할 것이다. 전통적으로 ‘위대한 반대자’의 산실이었던 소수의견 란은 일부 자격 미달 대법관들이 독단적인 입장을 내세우는 장이 될 수 있다. 국회나 거리에서 양극단의 강경파들이 쏟아내는 거친 주장들이 대법원 판결문에 실리는 시대가 오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결국 전원합의체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대법관들은 4명씩 모여 하급심 판결의 사소한 흠집이나 잡아내는 제3심의 역할만을 하게 될 것이다.

민주주의에 관한 모든 교과서가 삼권분립과 사법의 독립을 이론 없이 지지하는 것은 선거를 의식하거나 여론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법원이야말로 가장 어두운 시기에 소수자, 약자가 의지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대법원에서 그 역할을 해온 것은 전원합의체다. 대법관 증원법을 그대로 시행해서 전원합의체를 형해화하면 그 후과는 지금 권력을 잡고 있는 사람들이 소수자가 됐을 때도 반드시 나타날 것이다. 불과 얼마 전에 권위주의 시절을 겪었고 최근에도 2명의 대통령이 탄핵된 나라에서 사법의 힘을 이렇게 약화시켜도 되는 것일까.

대한민국의 다른 모든 부문과 마찬가지로 우리 법원은 공도 있고 과도 있다. 정당하지 않은 판결을 한 일도 있고 정치권력의 눈치를 본 굴욕스러운 기억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법부를 적대시하고 무력화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토대를 무너뜨리는 일이다. 10년 후 이재명 정부의 공과를 판단할 때 대법관 증원법 강행은 가장 크게 실패한 대목으로 꼽힐 가능성이 크다. 어렵겠지만, 합리주의와 실용주의를 표방하는 이번 정부가 유연성을 발휘해서 되돌리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바란다.

금태섭 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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