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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없어 보이는 아이들도 아픔 있어...내가 느낀 희망·위로 말해주고파”

중앙일보

2026.03.22 22:23 2026.03.22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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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이는 책을 물에 비유한다. 탄산음료, 주류 등 여러 맛있는 음료가 있지만 결국 다시 돌아오게 되는 물. 몸에 좋다는 건 먹어봐야만 아는 점이 책과 닮았다는 이유에서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 처음엔 내가 남들과는 다른 동심을 가지고 있구나 했는데, 최근에 깨달았어요. 내 안에 자라지 못한 아이가 있구나. 걔가 내 이야기를 계속 해달라고 하는 거구나.(이금이) "

『영구랑 흑구랑』(1991), 『너도 하늘말나리야』(1999), 『유진과 유진』(2004), 『소희의 방』(2010), 『너를 위한 B컷』(2023) 등을 펴낸 42년 차 소설가 이금이(64). 지난 18일 중앙일보 사옥에서 만났을 때 그는 첫 소설부터 30여년간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를 쓰고 나서야 이유를 깨달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 치열한 고민이 세계를 두드리고 있다. 지난 1월, 그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최종 후보에 두 번째로 올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작가는 “2024년 처음 후보에 오를 때는 기대가 없어서 ‘보너스’ 같은 기분이었다”며 “최종 후보에 오르기 전까지는 부담이 컸었는데, 오히려 지금은 마음이 놓이며 감사한 분들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데르센상은 덴마크의 동화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1805~1875)을 기려 1956년 제정된 아동문학상으로, 2년마다 아동문학 발전에 공헌한 글·그림 작가를 한 명씩 선정해 시상한다. 각국 안데르센 위원회가 자국 대표 작가를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IBBY)에 추천하면, 국제 심사위원들이 작가의 업적을 평가해 수상자를 선정한다. 영어가 아닌 언어로 쓰인 도서의 경우 국제 심사위원들을 위해 영문 번역본을 제출해야 한다. 올해 최종 수상자는 4월 13일 이탈리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발표된다.
이금이는 이날 후보작으로 올린 책들과 최근 청소년판으로 재출간된 책『슬픔의 틈새』를 가지고 왔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번에 이 작가와 IBBY 한국지부가 함께 논의해서 올린 책은 2023년 영미권에 출간된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2016, 사계절), 『알로하, 나의 엄마들』(2020, 창비)과 따로 영문판이 출간되지 않아 심사를 위해 번역한 『하룻밤』(2016, 사계절), 『밤티마을 마리네집』(2024, 밤티), 『너를 위한 B컷』(2023, 문학동네)이다.

작가 설명은 이렇다. “영미권에 출간된 책은 ‘여성 디아스포라 3부작’에 포함되는 책이에요. 어린아이들을 위한 동화 『하룻밤』, 30여년 간 이어 온 ‘밤티마을 시리즈’의 최신간인 『밤티마을 마리네집』, 유튜버를 꿈이라고 말하는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책 『너를 위한 B컷』을 골랐습니다. 나라는 작가가 만들어 온 세계를 잘 보여주고 싶었어요.” 대표작으로 꼽히는 『유진과 유진』은 지난 2024년 추천작으로 들어가 이번에는 빠지게 됐다.

그에 따르면 “일반 소설로 분류되는 ‘여성 디아스포라 3부작’ 소설들도 사실 청소년들을 위해 쓴 책”이라고 한다.『거기…』, 『알로하…』, 『슬픔의 틈새』(2025, 사계절)는 각각 일곱살, 열여덟살, 열세살 소녀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 책들은 모두 청소년판으로 재출간됐다. 윤설희 사계절 편집자는 “교열 면에서 큰 수정사항은 없지만, 청소년들을 위한 ‘1318문고’로 다시 호명하면 청소년 입장에서 좀 더 자유롭게 책을 접할 수 있다고 봤다”고 전했다.
이금이가 청소년 도서로 리커버해 『슬픔의 틈새』를 다시 낸 이유는 명확하다. "사실 너희들을 위해 쓴 책이었어,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어요."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금이가 어린 독자들을 위해 신경쓰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가능한 선에서 개정판을 자주 내려 한다”고 했다. “문학은 시대를 담은 이야기라 개정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그러나 (초판을 쓸 때) 나도 몰랐고, 우리 사회도 잘 받아들이지 못했던 새로운 감수성과 감각을 세심히 반영하고 싶어요. 아이들은 ‘이건 옛날에 쓴 거야’ 이렇게 이해하면서 읽어주지 않거든요.” 그는 유튜브·SNS 등 잘 몰랐던 젊은 문화를 습득하고, 책을 쓰기 위해 놀이공원에 가기도 한다.

그는 “2020년대를 살아가는 청소년의 마음을 그리고 있지만, 그 속에 들어가는 건 청소년 이금이의 마음”이라고 말했다. “세상이 빠르게 바뀌지만 변하지 않는 보편적인 마음은 (지금의 청소년과) 저의 마음이 같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역시 열 살 때 알프스소녀 하이디를 읽으며 ‘하이디와 내 마음이 같다’는 사실에 놀라고, 위로받은 경험이 있다.
이금이가 어릴 때는 아이들이 읽을 수 있는 국내 창작 동화가 많이 없었다. 그는 "소년소녀 세계문학전집을 읽었던 기억이 좋게 남아있다"면서 "그때 위로받았던 경험이 저로 하여금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고 전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 “어른들이 보기에 아무 걱정 없고 문제없을 것 같은 아이들도 슬픈 마음이 있고 아픔이 있어요. 그런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도 내가 느꼈던 위로나 희망을 말해주고 싶습니다.” "

그의 책은 아시아, 영미권뿐 아니라 러시아, 중동 등에도 닿고 있다. 그가 신경 써서 담아 온 ‘보편적 정서’의 힘일 테다. 그러나 정작 아동·청소년들에게 책은 점점 먼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자극적인 주제의 드라마, 숏폼, 게임…아이들이 즐길 거리가 정말 많아요. 저는 아이들이 다양한 층위의 놀 거리를 즐겨보았으면 해요. 그런데 책, 소설도 그중 하나였으면 하는 거죠. 그래서 책도 재미있게 쓰려 노력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AI(인공지능) 등장 이후에 인간의 존재의미를 보여줄 수 있는 것 중 ‘공감 능력’이 꼽히잖아요. 그런데 한국 아이들의 현실은 틀에 박혀있고 쳇바퀴 돌 듯 생활해서 능력을 키울 새가 없어요 . 그럴수록 책을 통해 공감하고, 공감받는 경험을 해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강요할 수 없어요. 빨리 이 좋은 걸 경험해볼 수 있게 어른들이 노력해야죠.”



최혜리([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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