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이런 이벤트가 없으면 몇 년이라도 만나지 못하니까, (전시는) 자식에 대한 그리움의 표현이기도 하죠. "
딸과 함께 전시를 연 소회를 묻자 철학자 도올 김용옥(78)은 22일 이렇게 답했다. 서울 인사동 갤러리 루벤에서 31일까지 여는 '도올 문인화전'과 '김미루 회화전: 마야는 살아있다' 얘기다. 전시장 입구에 도올이 호방하게 쓴 '도(道)' 한 글자가 걸렸다. 맞은편엔 멕시코 유카탄 반도 메리다에서의 삶을 다채로운 색상으로 담아낸 김미루(45)의 그림이 아버지의 글씨와 마주보고 있다.
6~7세부터 어머니에게 서예를 배웠다는 도올은 "현대인의 가장 진실한 서예는 펜글씨나 연필 글씨"라며 "누구의 서체를 모방할 것도, 붓과 먹을 고집할 것도 없다"고 말했다. 때론 서양화 붓에 아크릴 물감 찍어 글씨를 쓰는 그는 문인화라고 해서 수묵만 고집하지도 않는다. 고향 천안의 능수버들 휘날리는 봄, 키우던 닭들 뛰놀던 서울 동숭동 서재 마당 풍경은 화사한 아크릴화다.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도올은 고려대 생물학과와 한신대 중퇴 후 고려대 철학과에 편입했다. 국립타이완대와 도쿄대에서 석사학위,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43세엔 원광대 한의과에 편입, 공부를 마친 후 도올한의원을 개원하기도 했다. 도올의 세 자녀 중 막내인 김미루는 끊임없이 탐구하는 아버지를 닮았다. 12살에 혼자 미국으로 유학, 컬럼비아대 불문과를 졸업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의대 진학을 준비했지만, 2006년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서양화로 미술학 석사(MFA) 학위를 받았다.
2007년 뉴욕의 버려진 공장, 폐쇄된 지하철역, 하수구 등지를 찾아다니며 셀프 누드 사진을 찍은 '나도(裸都)의 우수(憂愁)' 프로젝트로 뉴욕타임스에 "도시의 폐허를 탐험하는 어둠의 아이돌"로 소개됐다. 2011년에는 미국 마이애미의 한 갤러리에서 벌거벗은 채 돼지 두 마리와 생활하는 퍼포먼스 '돼지, 고로 존재한다'도 벌였다. 해부학 수업에서 돼지 태아를 해부한 게 계기. 당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해부학적으로 사람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 돼지라, 돼지를 통해 인체를 배운다는 사실이 신선했다"고 말했다. 이어 고비ㆍ타르ㆍ아라비아ㆍ사하라 사막의 거친 환경에서 3년여 동안 지속가능한 삶을 실험한 결과를 책 『문도선행록』(통나무)으로 펴냈다. 현재는 멕시코 유카탄 반도 메리다에서 9년째 살고 있다. 직접 부화시킨 닭 44마리를 키우며, 이곳만의 싱크홀 샘인 세노테를 탐험한다.
이름은 도올이 미륵(彌勒)의 '미(彌)'와 추할 '루(陋)'를 붙여 지었다. 도올은 "‘미(彌)’자에는 ‘더더욱’이라는 의미도 있다. 내 눈에 어린 딸이 너무도 예뻤기에 ‘더더욱 누추해져라’라는 의미로 조심스러운 마음을 담았는데, 실제로 누추한 곳을 찾아다니게 됐다“며 ”그저 안타깝게 바라볼 뿐“이라고 털어놓았다. 전날 멕시코로 돌아간 김미루는 유튜브 '도올TV'를 통해 "뉴스에서 멕시코 마약 카르텔이 자주 나와 부모님 걱정이 많으시지만, 안전한 지역에서 잘 지내고 있다"며 "이곳에서의 체험을 담은 그림을 한국에서 전시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전시도록을 대신해 『미루의 마야문명 탐험』(통나무)을 내놓았다. 멕시코에서도 사라져가고 있는 마야 문명의 흔적을 찾아다닌 기록을 담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