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 의대 정원을 2024학년도보다 490명 늘어난 3548명으로 확정된 가운데 의대 시설을 확충하고 인력을 보강하지 않으면 교육의 질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또한 늘어난 의대생이 졸업 후 지역병원에서 수련의로 근무할 무렵 임금·시설에 대한 준비 부족으로 혼란이 가중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23일 지역 국립대 의대 관계자들은 본지에 이메일 등을 통해 의대 증원에 따른 인프라 투자에 더욱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특히 상당수 의대에선 해부학 실습 등 기초의학 강의의 부실화를 우려했다. 일부 의대에서 수강 인원이 지난해부터 두 배 이상 늘어 올해 2학기부터 임시 건물에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병헌 경북대 의대 학장은 “1931년에 지은 만든 해부실습실을 그대로 쓰고 있다”며 “건물이 노후화돼 무영등 설치가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무영등은 의사의 손 그림자 등이 생기지 않게 하는 조명 장치로 수술, 해부학 실습 등의 필수 장비다. 이 학장은 “실습실의 환기시설도 오래돼 포르말린 증기 배출 효율도 충분하지 않다”고 소개했다. 실습용 시신을 방부 처리하는 데 쓰이는 포르말린은 휘발성이 강한 1급 발암물질이기 때문에 환기 시설이 중요하다.
강경표 전북대 의대 학장은 “우리가 같은 국립대학은 종교 재단과 연계된 의대보다 연구용 시신 기증 받기 어렵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매년 20구 정도 카데바(시신)가 확보되어야 정상 수업이 가능하나, 2025년 의정 사태 이후 기증이 급격히 감소해 현재는 연간 10구 미만으로 운영해야 하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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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병원 수련의 당직실 감당 가능한가”
이들 대학만의 얘기는 아니다. 김민전 국민의힘 의원실이 전국 9개 거점 국립대 의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부산대는 올해 8월 해부학 실습을 위한 임시 교사를 활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마저 공사가 지연될 경우 2024·25학번은 오전과 오후로 나눠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제주대는 “해부 실습 시 의료기술직인 보조 인력이 최소한 한 명 더 충원되어야 한다”고 했다. 의대 증원으로 늘어난 학생들이 졸업한 뒤 지역 병원서 수련의로 근무할 때 드는 인건비, 당직실 등 관련한 시설이 감당 가능한지에도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날 전북대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 의학교육 평가인증 결과 ‘불인증 유예’ 잠정 판정을 받고 재심사 신청을 했다. 의평원에 따르면 전북대 가정의학과 전임교원(1명)과 2024·25학번을 수용할 수 있는 강의실이 확보되지 않았다. 의평원은 전국 30개 의대(의학전문대학원인 차의과대 포함)를 대상으로 2025년(2차) 의학교육 평가인증 주요 변화 계획서를 평가했는데 이번에 ‘불인증 유예’ 처분을 받은 4개 대학 중 국립대는 전북대가 유일하다.
전북대가 재심사를 신청한 만큼 최종 결과는 별도로 발표될 예정이다. 나머지 3개 대학인 건국대·동국대·한림대는 이의 신청을 하지 않아 평가 결과가 그대로 확정됐다. 불인증 유예를 받은 학교는 1년간 보완 기간을 거친 뒤 재평가를 받는다. 재평가에서도 불인증 판정을 받으면 신입생 모집 정지와 정원 감축, 졸업생 국가고시 응시 불가 등 처분이 내려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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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재정당국과 협의해 지원 방안 마련”
의평원은 이날 평가 결과를 발표하면서 “2024학번과 2025학번을 동시에 교육하는 ‘더블링’ 상황 때문에 의대들이 교육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특히 기초의학과 임상의학 전임 교수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육 인프라를 단계적으로 확충해 실습이 충분히 이뤄지도록 하겠다”며 “정원 확충 계획을 재정 당국과도 협의해 지원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