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사태로 국제유가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 이후 하락하던 휘발유 가격이 다시 들썩이고 있다. 오는 27일부터 적용될 2차 최고가격은 1차 대비 상향될 가능성이 크다. 휘발유·경유 소비자가격이 L당 2000원에 육박할 거란 전망이 나온다. 정유업계에선 다음 달이면 원유 수급 자체가 어려워질 거란 ‘4월 위기설’까지 거론되는 가운데, 정부는 “대체 물량 확보와 비축유를 통해 4월 수급에 문제없을 것”이라며 수습에 나섰다.
23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오후 기준 서울 주유소 평균 가격은 휘발유 1L에 1848.87원, 경유 1837.20원이었다. 전날보다 각각 1.07원, 0.56원 올랐다. 중동 사태가 발발한 지난달 28일 이후 급등한 전국 휘발유 가격은 지난 10일(1906.95원) 정점을 찍은 뒤 정부의 최고가격제 시행 소식이 알려지면서 12일 연속 하락했다. 서울 지역 역시 지난 9일(1949.53원) 정점 이후 13일 내리 하락했으나, 이날 다시 상승세로 돌아선 것이다.
국제유가가 고공 행진하는 사이 국내 석유제품 도매가는 최고가격제로 눌러놨지만, 오는 27일 발표될 2차 최고가격은 상향 조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2차 최고가격은 1차 최고가격에 국제유가 상승률을 반영해 조정되기 때문이다. 이날 오전 7시 기준 브렌트유는 배럴당 113.50달러,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99.98달러를 기록했다. 최고가격제 시행 전(12일)과 비교하면 각각 약 13.0%, 4.4% 상승한 수준이다. 최근 국제유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휘발유 2차 최고가격은 1900원대로 예상된다. 여기에 100원 안팎의 주유소 마진을 더하면 소비자가격은 2000원을 넘을 수 있다.
사태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단기 대책인 석유 최고가격제 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날 산업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석유 최고가격제는 단기적으로 가격 급등 억제에 기여할 수 있으나, 중ㆍ장기적으로는 시장 왜곡과 공급 축소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며 “단기적 수단으로의 제한적 활용이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제도 시행이 길어질수록 정유사 손실 보전에 대한 재정 부담이 커지고, 초과 수요 유발, 물량 축소 등의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연구원은 “유류세 인하, 직접지원 등 다양한 정책 수단을 결합한 패키지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산업별 연료 의존도와 비용 구조 차이를 고려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산업 현장에선 나프타(납사) 공급 차질 등으로 ‘4월 위기설’이 고조되고 있지만, 정부는 수급에 문제가 없도록 대응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양기욱 산업통상부 산업자원안보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각 정유사가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하는 항로로 대체 물량을 확보 중이고, 아랍에미리트(UAE)에서 도입하기로 한 2400만 배럴 중 일부가 3월 말, 4월 초중순 입항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또 민간이 보유한 원유 재고가 바닥나면 4월 중순쯤 비축유를 방출할 계획이다. 양 실장은 “비축유로 생산되는 나프타를 석유화학 기업들에 돌아갈 수 있도록 조치할 예정”이라며 “(기존에 정유사들이 수출하던 물량을 국내로 돌리는) 긴급 수급 조정 명령까지 발동하면 공장 가동 중단 시점을 4월 말, 5월까지 늦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날부터 서울청사에 ‘공급망 지원센터’를 설치하고, 12명의 전담 인력을 배치해 산업 생산에 밀접한 30∼40개 핵심 품목의 수급 상황을 모니터링할 계획이다. 박동일 산업부 산업정책실장은 “상황 변화에 따라 품목을 추가하고 공급망 애로 해소를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