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테랑 키즈'로 사회당서 정치적 성장
시라크 시절 동거정부 운영…외규장각 의궤 반환 논의도
'주 35시간 도입' 프랑스 조스팽 前총리 88세로 별세
'미테랑 키즈'로 사회당서 정치적 성장
시라크 시절 동거정부 운영…외규장각 의궤 반환 논의도
(파리=연합뉴스) 송진원 특파원 =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시절 동거 정부를 운영한 사회당 출신 리오넬 조스팽(88) 전 총리가 22일(현지시간) 별세했다.
유가족은 이날 AFP 통신에 그가 전날 사망했다고 밝혔다.
조스팽 전 총리는 지난 1월 중대한 수술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으나 구체적으론 언급하지 않았다.
르피가로에 따르면 1937년생인 조스팽 전 총리는 프랑스 정치인의 엘리트 코스이자 최고 명문 그랑제콜(소수정예 특수대학)인 국립행정학교(ENA)를 나와 외무부 경제국에서 경력을 시작했다.
1971년 사회당에 입당해 당시 당 지도자였던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의 총애를 받는다.
1981년 1월 미테랑 전 대통령이 대선에 뛰어들자 당 지도자 자리를 맡아 그해 치러진 총선에서 당선돼 의원직을 겸하면서 프랑스 정치 무대의 거물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한다.
1988년 미테랑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뒤엔 교육부 장관으로 자리를 옮겨 1992년까지 재임했다.
그러나 이듬해 치러진 총선에서 사회당 전체와 함께 참패당하며 정치적 위기를 맞는다. 그간 노선 갈등을 겪던 미테랑 전 대통령과도 이즈음 완전히 결별하게 된다.
당시 정치계를 떠날까 망설였지만 대선 출마라는 더 큰 목표에 뛰어들었다. 당내 경선을 거쳐 1995년 2월 사회당 대선 후보로 지명됐으나 우파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에게 패배한다.
이후 사회당 대표로 복귀해 사회당과 공산당, 녹색당을 아우르는 좌파 연합을 구축했다. 덕분에 1997년 시라크 전 대통령이 갑자기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치렀을 때 승리를 거두게 된다.
우파 인사인 시라크 전 대통령은 의회 권력을 쥔 좌파 인사를 총리로 앉힐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조스팽 전 총리가 내각을 이끄는 3차 좌우 동거정부가 탄생하게 된다.
조스팽 전 총리는 정통 좌파의 가치를 고수하면서도 실용주의적 개혁을 단행해 프랑스 현대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당시 마르틴 오브리 노동장관의 주도로 기존 주 39시간이었던 법정 근로 시간을 35시간으로 단축했고, 경제적 여력이 없는 저소득층도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보편적 의료 보장 제도를 도입했다.
결혼하지 않은 커플(이성·동성 포함)에게도 법률적 혼인 관계에 준하는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는 시민연대협약(PACS)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조스팽 전 총리 재임 기간 견고한 경제 성장을 이뤄 실업률을 대폭 낮췄고, 국영 기업(에어 프랑스 등)의 민영화를 전략적으로 추진해 효율성을 높이는 실용주의적 면모를 보였다.
한국과의 인연도 있다. 총리 시절인 2000년 프랑스를 국빈방문한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 프랑스군이 1866년 병인양요 때 가져간 외규장각 의궤를 한국에 반환하는 문제를 논의하기도 했다.
조선 왕실의 중요한 유산이자 '조선 기록문화의 꽃'으로 평가받는 이 외규장각 의궤는 그로부터 10년 뒤인 2011년에서야 장기 임대 형식으로 한국에 돌아왔다.
이런 굵직한 업적에도 그에게 대권 운은 따르지 않았다.
조스팽 전 총리는 2002년 대선에 다시 도전했으나 1차 투표에서 극우 후보 장 마리 르펜에게 밀려 3위로 탈락하는 충격적인 결과를 맞이했고 이 일을 계기로 정계 은퇴를 선언한다.
2015년∼2019년 한국의 헌법재판소 격인 헌법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게 그의 마지막 공직 활동이다.
그는 최근 한 TV 프로그램에서 2002년 대선의 충격적 패배에서 벗어났다고 회상했다. 그는 "20년이 넘게 지난 지금, 나는 어느 정도 평온함을 되찾았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송진원
저작권자(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