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달러대 유가와 1500원대 환율, 물가 불안까지 겹친 복합 위기 속에서 한국은행 수장이 바뀐다. 이재명 대통령이 차기 총재로 ‘실용적 매파’(통화 긴축 선호)로 평가받는 신현송 국제결제은행(BIS) 통화경제국장을 지명하면서 통화정책 운용 방향에도 변화가 예고됐다.
23일 국내외 주요 투자은행(IB)은 신 후보자의 통화정책 성향을 분석하는 보고서를 일제히 쏟아냈다. 손범기 바클레이즈 이코노미스트는 “신 후보자는 인플레이션 목표제를 중시하면서 금융 불균형과 신용 주기(대출 확대와 축소가 반복되며 자산가격과 금융 위험이 함께 움직이는 흐름)도 신중하게 고려하는 매파적 경제학자”라고 평가했다. 김진욱 씨티 이코노미스트도 “물가와 금융 안정에 높은 우선순위를 두는 실용주의적 매파로, 데이터 기반 접근을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 후보자는 물가 상승(인플레이션)에 대한 선제적 대응을 강조해온 인물이다. 그는 2022년 주요 20개국(G20) 콘퍼런스에서 “인플레이션은 한 번 시작하면 확산하는 특성이 있어 초기 단계에서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통화정책 만능론과는 거리가 있다. 신 후보자는 2022년 BIS 연차보고서 등에서 “공급 충격에는 통화정책 대응의 한계가 있으며 일시적 충격에는 과도한 대응을 지양해야 한다”고 했다. 2024년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도 “통화정책은 진공 상태에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재정정책이 있고, 또한 건전성 정책도 있다”고 밝혔다.
신얼 상상인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신 후보자는 금리와 거시 건전성 정책을 결합한 ‘정책 조합형’ 접근을 선호한다”고 분석했다. 김지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기본적으로 매파적 성향이지만 중동 사태의 지속 여부에 따라 정책 대응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조건부 긴축’에 나설 것이란 진단이다.
한은의 통화정책 운용 방식도 변화가 예상된다. 신 후보자는 경제 여건 변화에 맞춰 정책은 탄력적으로 운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사전에 금리 경로를 제시하는 포워드 가이던스에는 회의적인 시각을 보여왔다. 정형기 DS투자증권 연구원은 “중앙은행의 과도한 신호 제공은 시장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도입된 ‘K점도표’(금통위원들이 6개월 조건부로 금리 전망을 해 점으로 표기) 등 금리 경로 사전 제시 방식은 유지하더라도, 향후에는 방식이 보다 제한적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
단기적으로는 신 후보자가 상황을 관망할 것으로 시장에선 예상한다. 박준우 하나증권 연구원은 “선제적 금리 인상 가능성은 작다”고 분석했다. 다만 고유가 장기화가 변수다. 김진욱 이코노미스트도 “빠르면 5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 인상 시그널이 나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최지욱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준금리는 올해 10월 한 차례 인상 가능성이 있으며, 상황에 따라 3분기 조기 인상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내다봤다.
이창용 한은 총재의 마지막 금통위인 다음 달 10일 회의에서는 기준금리 동결(연 2.50%)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중동 전쟁 영향이 아직 본격적으로 반영되지 않았고, 환율 변동성까지 커진 상황에서 금리 조정이 외환시장 불안을 자극할 수 있어서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실장은 “전쟁 여파로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질 가능성이 큰 만큼 금리 인하는 사실상 어려워진 상황”이라며 “총재 교체 시점과 맞물려 한은도 당분간 금리 동결 속에서 인상 시점을 고민해야 하는 딜레마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