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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탁의 인문지리기행] 아내와 성금 거둬 첫 군함 마련한 해군의 아버지

중앙일보

2026.03.23 08:12 2026.03.23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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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항 진해에 흐르는 손원일 제독의 정신
김정탁 노장사상가
진해는 벚꽃놀이하는 장소로 유명해도 원래 군사도시로 설계되었다. 진해 앞바다가 내륙으로 볼록 들어온 데다 뒤로는 가파른 산맥이 병풍처럼 펼쳐져 적의 공격으로부터 배를 보호하는 데 안성맞춤이어서다. 일제가 지리상의 이런 이점을 잘 활용해 군항을 만들었는데 이때 거리에다 벚꽃을 많이 심어 봄에는 아름다운 도시로 잠시나마 탈바꿈할 수 있게 했다. 그런데 통제부(진해기지사령부) 안으로 들어오면 바깥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펼쳐진다. 큰 군함들이 나란히 정박해 있고, 훈련받는 사관생도와 수병들의 땀 흘리는 모습에 더해 통제부 내에 깊숙이 자리한 잠수함 부대의 존재 때문이다.

낡은 미국 배 사들여 백두산호 명명
6·25 때 부산 침투하던 북 함정 격침

부친 손정도 목사, 김일성 옥바라지
동생 원태에게 북 깍듯, 평양 묻혀

혈육처럼 지냈던 손씨·김씨 집안
이념 따라 적대적 관계로 갈라서

진해기지사령부 앞에 있는 손원일 제독 동상. [사진 김정탁]
잠수함 승조원은 공군 파일럿과 같아 누구나 될 수 없다. 장교와 부사관 중에서 특별히 선발해 1년간의 집중적인 교육과 훈련을 거친 뒤에 소정의 심사를 통과해야 하므로 통상 2~3년이 지나야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또 출동을 나가면 물속에서 최대 3개월을 버텨야 해 보통 체력으로는 견디기 힘들뿐더러 밀폐된 좁은 공간에서 활동해 정신력도 중요하다. 그런데 잠수함 승조원에게 가장 큰 애로 사항은 샤워를 제대로 하지 못해 사람 냄새를 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작전을 마치고 집에 갈 때는 반드시 샤워해도 샤워 정도로는 냄새가 완전히 제거되지 않아 처음에는 가족조차 접근을 꺼린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해군 전력은 놀랍게도 미국·러시아·중국·인도에 이어 세계 5위로 평가받는데 장보고급·손원일급·안창호급·장영실급으로 구성된 잠수함 전력이 크게 기여한 탓이다. 장보고급은 우리 해군이 최초로 확보한 잠수함인데 지난해부터 퇴역하기 시작했다. 손원일급 잠수함은 공기불요추진체계(AIP)를 보조로 탑재해 잠항 시간을 많이 늘려 적에게 탐지될 가능성을 크게 낮춤으로써 잠수함 전력을 획기적으로 증강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었다. 또 이 기술을 바탕으로 안창호급과 장영실급을 자체적으로 만들 수 있게 되었고, 여기에 핵 추진 잠수함을 만드는 기술까지 확보했다.

2025년 장영실함의 진수식. [사진 해군본부 정훈공보실]
우리 해군이 이런 뛰어난 잠수함 전력을 단기간에 갖추게 된 데는 첫 단추가 잘 끼워져서다. 1990년대 초 독일에 가서 잠수함 제조 및 운항법을 배웠는데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보트를 만들어 많은 연합국 함정을 가라앉혔던 잠수함 강국이다. 그래서 첫 잠수함 제조를 독일에 의뢰했는데 당시 우리 해군 예비 승조원들이 퇴역한 독일 잠수함 노병들에게서 운항법을 열심히 배우자 이에 감동한 나머지 하나라도 더 가르쳐준 결과 지금까지 단 한 번의 사고가 없는 대기록을 수립했다. 잠수함은 사고가 나면 승조원들이 거의 죽어 우리 잠수함 부대의 구호도 ‘백번 잠항하면 백번 부상해야 한다’이다.

막강 해군 정신의 뿌리
2006년 손원일함의 진수식. [사진 해군본부 정훈공보실]
우리 잠수함 승조원들의 이런 치열한 군인정신은 어디서 나왔을까? ‘해군의 아버지’라 불리는 손원일(孫元一, 1909~1980) 제독에게서 나왔다고 본다. 그는 해방이 되자마자 자비로 해군을 창설했는데 부인 홍은혜(洪恩惠, 1917~2017) 여사도 해군의 어머니라 불렸다. 그녀는 해군가를 만들고, 또 국민을 상대로 모금 활동을 벌여 비록 낡은 배이지만 미국에서 배를 사 우리 해군이 백두산함이란 첫 군함을 갖게 했다. 이 배는 한국전 발발 초기 뜻밖에도 기여를 크게 했다. 6월 25일 밤 북한군 특수요원 600여 명을 태운 무장 함정이 부산 근해로 침투하려다 백두산함에 발견돼 격침돼서다. 이때 이들의 부산 침투가 성공했으면 혼란은 상상하기가 힘들다.

흥미로운 사실은 손원일과 전쟁을 일으킨 북한의 김일성이 어렸을 적에 매우 가까웠다는 사실이다. 손원일의 아버지 손정도 목사가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의 평양 숭실중학교 2년 후배여서다. 손 목사는 유명한 독립운동가로 상해 임시정부에서 의정원 의장과 교통부 총장을 지낸 바 있는데 슬하에 2남 3녀를 두었다. 장남이 원일이고, 차남이 원태, 딸이 진실·성실·인실이다. 막내 인실은 YWCA 회장을 지내는 등 우리나라 여성 운동에 큰 공헌을 했다. 손원일의 친손녀인 정희는 한때 젊은 정치인으로 주목받던 홍정욱과 결혼해서 영화배우 남궁원의 며느리가 되었다.

김일성은 이들 형제 중에서 손원태와 의형제를 맺을 정도로 특별히 친했는데 그와 두 살밖에 나이 차이가 나지 않아서다. 또 김일성은 그의 여동생 손인실을 좋아했는데 김일성이 죽기 몇 해 전 손원태를 북한으로 초청해 옛일을 회고하면서 밝혀진 사실이다. 손원태는 의사로 일찍이 미국 시민이 돼서 북한을 자주 방문했는데 방문할 때마다 김일성에게서 환대를 받고 별장까지 선물 받았다. 그리고 김일성이 사망하자 북한에 가서 직접 조문했는데 김정일은 상중인데도 아버지가 손원태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의 80살 생일잔치를 평양에서 성대히 차려주었다.

김일성이 손 목사 아들에게 이런 환대를 베푼 건 손 목사가 자신을 친아들처럼 아끼면서 돌봐준 탓이다. 김일성은 아버지가 31살의 나이로 일찍 죽으면서 손 목사를 아버지처럼 따르라고 한 말을 따라 손 목사가 있는 길림으로 가서 육문중학교에 편입해 그가 세운 길림 조선교회 성가대 대장을 맡기도 했다. 손 목사도 김일성의 외가가 유명한 기독교 집안이라 그를 더욱 챙겼다고 본다. 이에 김일성은 손 목사를 가리켜서 사상은 비록 달랐어도 생명의 은인으로 존경해 한국전 때는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에게 손 목사 가족을 보호하라는 특별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운항 중인 손원일함. [사진 해군본부 정훈공보실]
김일성이 손 목사를 이토록 존경한 건 그가 공산주의 활동으로 중국 공안에 체포돼 7개월간이나 감옥에 있을 때 손 목사가 옥바라지를 맡은 데다 그의 석방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해서 보증까지 서주며 풀려나게 해줘서다. 그리고 그의 활동이 다시 문제 될 수 있어 피하라고 권고했는데 그때 일본 군경에게 체포됐으면 감옥에서 10년 정도 더 보내야 했다. 그래서 김일성은 그를 두고 “한평생 목사 간판을 걸고 항일 성업에 고스란히 바쳐온 지조가 굳고 양심적인 독립운동가였으며 이름난 애국지사였다”라고 평했는데 이런 사실은 그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가 출판되면서 알려졌다.

한편 김일성은 외가가 유명한 기독교 집안인데도 평양의 장대현 교회를 밀어버리고 그 자리에 엄청난 크기의 자기 동상을 세웠다. 평양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정중히 머리를 숙여서 절하는 그 동상이다. 반면에 칠골교회는 헐지 않은 것은 외할아버지 강돈욱 장로가 세운 교회라서일 텐데 이 교회가 지금 평양에 유일하게 남은 교회다. 강돈욱의 둘째 딸 강신실이 김일성의 어머니다. 그녀는 후에 강반석으로 개명했는데 신실한 마음을 넘어 예수님 12사도 중의 하나인 베드로와 같은 마음을 지니고 싶어서가 아닐까?

김일성의 아버지, 철저한 반공주의자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있는 손원일 제독 부부묘. [사진 김정탁]
김일성은 장로 딸을 어머니로 둔 덕에 기독교를 많이 이해했으리라. 또 아버지 김형직은 공산주의자에게는 한약도 지어주지 않을 만큼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다고 한다. 그러니 손원일을 포함해 김일성의 가족사를 알고 나면 사람들의 관계가 묘하다는 느낌이 든다. 어렸을 적에는 형제처럼 친하고, 심지어 같은 혈육일지라도 이념으로 갈리면 서로 총부리를 겨눠야 해서다. 그런데 손원일과 김일성의 경우만 그러했을까? 해방 후 이념이 극단으로 갈리는 바람에 이런 운명의 장난에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 많다. 평양 애국열사릉에 묻힌 동생 원태와 비교해 국립묘지에 묻힌 형 원일의 존재가 우리에게 소중한 건 이 때문이다.

스펙이 좋다고 해 성공을 보장하지 않듯이 무기가 훌륭하다고 해 전투를 잘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많은 돈을 들여 핵 추진 잠수함을 갖추어도 이것이 명실상부한 전력이 되려면 무엇보다 훈련 상태가 잘 돼 있어야 하고 승조원의 사기도 충만해야 한다. 10여 년 전 잠수함 부대에서 강연한 적이 있는데 이때 받은 인상이 너무 강렬해 좀체 잊히지를 않는다. 잠수함 승조원들의 모습이 너무 믿음직스러워서였는데 손원일의 정신이 아직도 이들의 가슴 속에 살아 있어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정탁 노장사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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