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엄중한 경고와 달리, 국제 질서는 이미 인공지능(AI)이 전쟁의 핵심 변수로 자리 잡는 현실로 바뀌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하마스, 그리고 최근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은 AI가 킬 체인(타격순환체계)의 주요 단계에 통합된 새로운 전쟁 양상을 보여준다. 걸프전의 정밀전, 이라크전의 네트워크 중심전에 비교하면 AI는 전장에서 조율 역할을 수행하면서 전쟁의 속도와 구조를 재편하고 있다.
전술핵급 ‘무기’로 진화한 AI
오판과 민간인 피해도 증가
‘인간의 통제’로 안전핀 역할을
민·관·군 통합 전략 구축 시급
전쟁의 ‘템포’를 바꾸는 AI 이란 전쟁에서 AI는 위성, 신호정보, 드론, 레이더 정보를 실시간으로 융합해 킬 체인을 분 단위로 압축하며, 그 결과 다영역 작전(CJADC2)을 동시에 구현하고 있다. 개전 초기 단기간에 수천 개의 목표를 타격한 것은 이러한 구조적 변화의 결과다. 이는 트럼프 1기 메이븐(Maven) 프로젝트가 바이든 시기를 거쳐 메이븐 스마트(Maven Smart·MSS)로 진화하고, 트럼프 2기에서 전장 적용이 가속화된 흐름과 맞닿아 있다. 이는 ‘정보 융합’과 ‘의미 통합’을 결합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전쟁 수행 방식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9·11 이후 설치된 초당적 위원회가 “정보기관들이 점을 연결하는 데 실패했다”고 지적한 비판은 이제 AI에 의해 상당 부분 해결되고 있다. 다양한 경로로 입수된 정보는 AI를 통해 통합된 전장 상황도(COP)로 구현되며, 킬 체인에서 점차 다영역 정보를 실시간으로 그물망처럼 연결하는 ‘킬 웹’ 구조로 진화하고 있다. 2024년 9월 한국이 주최한 ‘인공지능의 책임있는 군사적 이용’(REAIM)에 관한 정상회의와 글로벌 위원회 회의장에서 미국이 밝힌 군사 AI 활용 6대 영역(정보·감시·정찰(ISR), 지휘통제, 병참, 유무인 협업, 모의실험, 우주·사이버·전자장)은 AI가 전쟁 수행의 핵심 구조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 준다.
미국 전쟁부도 이미 ‘알고리즘 전쟁’과 함께 ‘AI 기반 전장 운용’이라는 말을 쓰고 있고, 중국도 ‘지능화된 전쟁’ 독트린을 표방하고 있다. 미국 조야에서는 AI 전쟁 시대의 도래라는 말이 회자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드론 군집과 자폭 드론, 가자 전쟁의 라벤더(Lavender)와 가스펠(Gospel) 사례 역시 AI가 표적 추천과 작전 속도를 극단적으로 끌어 올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군사용 AI는 아직 초기 단계임에도 무기 체계를 넘어 전쟁의 템포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로 작동하고 있으며, 인간의 의사결정 영역은 점차 축소되고 있다. 완전 자율 무기에 대한 유혹 역시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변화는 AI 경쟁을 군사 패권 경쟁의 중심으로 끌어 올리고 있다. 보이지 않는 전쟁의 승자가 실제 전장에서 승리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으며, AI 역량은 전술핵에 준하는 전략적 의미를 갖는다는 평가도 나온다.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AI가 21세기 질서를 주도할 것”이라던 전망은 이미 현실화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핵사용 결정, AI에 맡겨선 안돼 이처럼 군사용 AI의 발전 속도는 글로벌 거버넌스 논의를 크게 앞지르고 있다. 자율살상무기(LAWS) 정부 간 협상, 유엔 총회 결의, REAIM 논의가 이어지고 있지만 트럼프 2기 들어 규범과 현실 사이의 간극은 확대되고 있다. 핵심 쟁점은 인간 통제(human control)의 유지와 자율성 허용 범위다. 최근 미 전쟁부가 자국의 AI 스타트업 기업인 앤스로픽을 공급망 위험기업으로 지정하며 벌어진 갈등 역시 이러한 인식 차이를 반영한다. 앤스로픽으로서는 완전 자율 살상무기의 금지 또는 규제에 관한 국제사회의 여론을 염두에 뒀을 것이다.
특히 AI를 기반으로 한 의사결정 속도가 기계 속도로 단축되면 ‘발사 이전 선제 무력화’(left of launch) 전략이 현실화하고, 오판의 속도와 민간인 피해 역시 증가한다. AI 모델들이 21회의 전쟁 중 20회(95%)나 핵 사용을 선택했다는 REAIM 글로벌 위원회의 케네스 페인 교수팀 연구 결과는 이러한 위험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필자가 주재한 REAIM 글로벌 위원회의 최종보고서가 ‘핵 사용 결정 시 인간 통제 유지’를 핵심 건의로 제시한 이유다.
2024년 말 조 바이든 당시 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정상회의에서 핵무기 사용과 관련한 의사결정에 AI를 개입시키지 않고 인간이 최종적인 통제권을 유지해야 한다는 원칙에 합의했는데, 다가오는 미·중 정상회담에서도 이를 재확인했으면 한다.
한반도 상황에서 AI 전쟁 시대의 외교·안보 전략은 더욱 중요하다. 대응 시간 단축은 위기관리 구조 자체의 재설계를 요구한다. 전작권 전환을 추진함에 있어 차세대 무기뿐 아니라 AI 기반의 C4ISR(지휘·통제·정보·정찰), 사이버, 유무인 복합체계 등 ‘보이지 않는 전쟁’ 역량의 확보가 필수적이다.
한국, AI 기반 국제질서 주도하길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유엔 안보리 의장 자격으로 회의를 주재하며 “AI가 맹수가 될 수도 케데헌의 사랑스러운 ‘더피’가 될 수도 있는데, 국제사회가 단합해서 책임 있는 이용의 원칙을 바로 세우자”고 강조했다.
한국은 AI 3대 강국을 지향하는 국가답게 AI 기반의 군사 역량을 최대화하면서도 책임과 안전 문제를 초기 단계에서부터 내재화 시키려는 글로벌 거버넌스 노력과 보조를 맞출 필요가 있다.
국정원은 지난 5일 7개국의 사이버 안보 기관과 ‘설계 단계부터 보안의 내재화’를 핵심으로 하는 ‘AI 공급망 위험·완화방안’을 발표했다. 이는 AI를 중심으로 한 디지털 국제질서 수립과정에서 유엔과 REAIM 회의를 통해 한국이 주도하고 있는 외교안보 전략과 궤를 같이 한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한국은 우리의 안보와 번영뿐만 아니라 ‘인류를 위한 AI’라는 방향 아래 정부·군·민간의 지혜가 통합된 전략을 구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