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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래 대표는 왜 봉하마을에 갔나[장세정의 시시각각]

중앙일보

2026.03.23 08:18 2026.03.23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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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정 논설위원
거대 여당이 위헌 요소가 여전한 '사법 3법'을 강행하자 조희대 대법원장과 법원장들은 공개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행정부와 입법부를 장악한 집권 세력은 경청은커녕 인신공격성 험담을 퍼부으며 대법원장 사퇴를 압박했다. 법원 수뇌부의 공개 반박과 달리 일선 판사들은 침묵하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정부에서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은 추미애 법사위원장과 정청래 당 대표가 주도해 추진해왔다. [연합뉴스]
검찰해체법 통과 후 봉하마을행
정 대표 "노무현 죽음 떠오른다"
사위 곽상언 "노무현 조롱하는 것"
오합지졸 야당의 무기력한 필리버스터가 끝나자 민주당이 공수청법과 중수청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잇따라 강행 처리했다. 이로써 오는 10월 검찰청은 78년 만에 문을 닫고, 공소청과 중수청이 대신하게 된다. 검찰청이 문을 닫는다는데도 검사들은 숨 죽인듯 조용하다. 문재인 정부 '검수완박' 당시의 강한 반발과도 비교된다. 아마도 그동안 있었던 검찰의 과거 잘못에 대한 국민의 곱지 않은 시선을 의식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약자에겐 강하고 강자에겐 약했고, 살아 있는 권력엔 꼼짝 못 하던 검찰의 과거 행태에서 비롯된 자업자득 결과일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 대상으로 삼았고, 그로 인해 대통령 자리에까지 올랐던 검사 출신 첫 대통령 윤석열의 경거망동이 몰고 온 결과에 '집단적'으로 자성하고 있는 것일까.
2003년 3월 9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전국 검사들과의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이날을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한 날로 보는 시각이 있다. [정부기록사진집]
검찰청 폐지를 주도한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검찰개혁을 입에 올리면 자연스럽게 고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이 떠오른다"고 회고했다. 검찰의 일가족 비리 의혹 수사 중에 비극적으로 떠난 노 전 대통령을 검찰개혁에 마침표를 찍는 시점에 소환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미완의 숙원이던 '검찰개혁'을 늦게나마 이뤄낸 데 대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복잡다단한 소회를 얘기한 것일 수 있다. 정 대표의 말에는 복선이 깔린 듯하다. 노 전 대통령의 비극적 최후가 검찰개혁의 촉발점이 됐고, 그토록 집요하게 검찰 해체를 몰아붙인 배경과 무관치 않다고 보는 시각이 엄연히 존재하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한 나라의 형사사법 시스템의 개혁이 정치 보복과 한풀이 수단이 되면 결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노 전 대통령의 사위 곽상언 민주당 의원이 발끈한 이유를 새겨봄 직하다. 곽 의원은 “정치적 이익을 위해, 상징으로 소비하기 위해 노무현 대통령을 언급하는 것은 결국 그를 조롱하는 것과 다름없다. 자신과 세력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아무도 말하진 않지만, 모두가 알고 있는 부분을 찌른 말이 아닐까.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지난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의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연합뉴스]
정 대표는 지난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개최한 최고위원회의에서 노 전 대통령을 재차 호명했다. 정 대표는 "이제서야 검찰개혁의 9부 능선을 넘었다. 이 또한 이재명 대통령 시대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감격해했다. 정 대표는 “2003년 노 전 대통령의 ‘검사와의 대화’ 이후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검찰의 오만함은 조금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반인권적 과잉 수사는 멈출 줄 몰랐고 무오류 신화에 빠진 검찰은 성역을 자처했다”며 검찰을 재차 비판했다. 당 지도부가 비공개로 검찰개혁에 대해 보고하자 권양숙 여사는 "큰 고비를 넘겼다. 자꾸 눈물이 난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민주당 관계자가 전했다.
대한민국의 형사사법 시스템은 검찰청 폐지 전과 후가 확연히 달라질 것이다. 민주당의 지적대로 검찰이 무소불위 권력으로 행세하던 낡은 관행과는 분명한 절연이 필요하다. 하지만 형사사법 체계를 뒤흔든 후폭풍은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검찰청을 없애면 정치권력과 범죄자는 발 뻗고 자겠지만, 피해자는 불안에 떨며 고통받는다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지난 1월 20일 국회에서 열린 공소청법·중수청법 공청회(정책의원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중앙포토]
개인이든 조직이든 국가든 정의의 칼을 뽑아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증오와 적개심으로 상대를 제거하더라도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당장은 유약한 패배주의로 비칠지 모르지만,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고 화해와 공존을 모색하는 방향이 결국은 자신에게도 이롭다. 우이독경(牛耳讀經)이겠지만, 진짜 복수는 용서다.



장세정([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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