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2008년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이후 가장 큰 고비를 맞고 있다. 중동 사태는 고물가·고환율·고금리의 3고(高)를 몰고 왔다. 중동산 수입 원유의 90%가 호르무즈해협을 거친다. 4월 에너지 위기설이 나돈다. 전쟁이 끝나도 정상화에 3~5년 걸린다고 한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 경기침체) 조짐이 보인다”고 경고했다. 1970년대 1, 2차 오일쇼크 때의 스태그플레이션 악몽을 끄집어낸 것이다.
경제위기급 상황에 대통령만 보여
경제 관료 수준·열정 예전만 못 해
만기친람 리더십도 약화 부채질
예스맨만 모여선 위기 극복 어려워
의아한 건 비상 상황인데 정부 경제팀이 잘 안 보인다. 금융시장이 불안해도 나서는 사람이 없다. 이란전쟁 발발 직후 “펀더멘털에 비해 금리와 환율이 과도하게 뛰었다”고 가장 먼저 시장을 진정시킨 건 정부가 아니라 한국은행이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이억원 금융위원장,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의 F4 회의(거시경제금융회의)는 잘 열리지 않는다. 그나마 시장에서 말이 먹히는 사람은 한은 총재 정도다. 이 총재가 다음 달 물러나면 쓴소리할 사람도 없다. 매파 성향의 신현송 차기 총재가 그 역할을 이어갔으면 한다.
경제팀이 약체가 된 건 무엇보다 공직사회의 수준이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다. 정부 주도 개발경제 시대에는 공직자의 권한과 위상이 막강했다. 재벌들이 장차관과 사돈을 맺으려고 줄을 대던 시절이다. 당대의 엘리트가 경제부처에 모였다. 가깝게는 2000년 전후만 해도 진념·전윤철·이헌재·강봉균·강만수·윤증현 등 소신이 뚜렷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경제팀 수장이 줄을 이었다. 질과 양에서 격세지감이다. 경제관료 전성시대는 이명박 정부 중반까지가 아닌가 싶다. 강만수·윤증현·윤진식·박병원·김석동 등이 경제팀을 이끌며 금융위기를 극복하던 시절이다. 지금은 엘리트가 민간으로 간다. 보수에서 큰 차이가 나는 데다 공직에서 고생해 봐야 비전이 없기 때문이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했다가 송사에 휘말린 선배들을 보면서 분위기는 더 가라앉았다. 서울과 세종을 오가는 어수선한 근무 탓에 예전 같은 열정, 사명감을 찾아보기 힘들다.
잦은 정권 교체도 경제팀을 약화시켰다. 1급 이상 고위 공무원이 되면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그 정부 인사로 분류된다. 정권이 바뀌면 경질 1순위다. 완장 찬 정치인·폴리페서가 들락날락하면서 우수한 관료들이 허망하게 옷을 벗었다. 차 떼고 포 떼고, 인재 풀이 갈수록 줄어들었다. 공직자 앞에 놓인 선택지는 정치판에 안테나를 켜고 열심히 줄을 서든지, 그런 재주가 없으면 몸 사리며 가만히 있는 것이다. 대통령이 복지부동을 경고해도 꿈쩍 안 하는 이유다.
경제팀이 안 보이는 또 하나의 요인은 이재명 대통령의 만기친람 리더십이다. 이 대통령은 답을 정해 놓고 단도직입 어법으로 밀어붙인다. 구체적 지침까지 내린다. 경제팀이 창의력을 발휘할 여지가 없다. 올 들어 대통령이 주도한 경제 현안만 해도 증시 부양, 다주택자 중과, 담합 조사, 농지 전수조사, 유류 최고가격제, 추경, 기초연금 개혁, 차량 5부제 등 넘친다. 여권 내에선 “민원부터 바닥 행정까지 다 해 본 대통령의 디테일”이라고 찬사를 보낸다. 실제로 일처리가 시원시원하고,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정치감각이 뛰어나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좌고우면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모든 걸 알 수 없다. 설령 알더라도 다 할 수 없다. 대통령 한 사람의 의중대로 법과 정책이 정해져서도 안 된다. 시장원리에 어긋나지 않는지, 임시방편은 아닌지, 재정 여건이 되는지 다각도로 들여다봐야 한다. 이건 전문가의 영역이다. 필요하면 국민과 시장을 설득하는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국무회의를 생중계하지만, 격의 없이 토론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대통령의 일장 훈시가 있고, 국무위원들은 받아쓰기에 바쁘다. 섣부르게 얘기했다가는 한 소리 듣기 십상이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에 대해 구 부총리가 “이번이 아마 중과를 피할 마지막 기회”라고 말하자 이 대통령은 “아마라고 하지 말라니까요”라고 끊었다. 왜 애매하게 말하느냐는 일종의 면박이었다. 대통령 질타를 받으면 주눅이 들기 마련이다. 그것도 공개된 자리에서. 다른 의견이 있어도 꺼내기 어렵다. 대통령이 ‘주식 주식’ 하는데, 누가 “빚투 조심하라”고 말할 수 있겠나. 대통령이 추경을 꺼내들자 구 부총리는 “적극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추경이 필요하고 급하더라도 덜컥 결정할 일은 아니다. 성장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될지, 돈을 더 풀면 환율과 물가에 미치는 악영향은 없는지 따져봐야 하지만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다.
예스맨 경제팀은 대통령 입만 쳐다보며 관심 사안을 쫓아가느라 정신이 없는 것 같다. 대통령이 한마디 던지면 담당 부처는 물론 국세청·공정위·금감원·검찰·경찰까지 ‘칼’을 가진 부처가 만사 제쳐놓고 몰려다닌다. 많은 것을 톱다운 방식으로 밀어붙이는 강한 대통령과 소신 없이 눈치만 보는 약체 경제팀의 조합. 이 구도로 경제위기급의 고비를 극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