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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체코 원전 첫삽도 뜨기전에…한수원 "공사비 1조 깎자"

중앙일보

2026.03.23 13:00 2026.03.23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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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지난해 28조원 규모의 체코 원자력발전소 건설 사업을 수주했지만, 사업 추진에 차질을 빚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팀코리아의 리더인 한국수력원자력의 압박에 세부 계약 체결이 늦어지고 있다.
체코 두코바니 원전 전경. 연합뉴스
23일 복수의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한수원은 최근 체코 원전 시공사인 대우건설에 공사비를 기존 입찰금액 대비 10% 이상 감액하라고 통보했다. 지난해 6월 4일 한국은 체코 원전 건설사업 발주사인 체코전력공사(CEZ) 산하 EDU II와 두코바니 지역에 1000MW급 한국형 원전 APR1000 2기를 건설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총 사업비는 4000억 코루나(약 28조원)다. 이중 시공비는 10조원대로 추정된다. 한수원 측이 기존 입찰금액보다 1조원 이상 공사비를 깎으라고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원전은 통상 한 사업자가 설계(Engineering)부터 조달(Procurement)·시공(Construction)까지 프로젝트 전체를 일괄 수행하는 방식이다. 체코 원전 역시 한수원을 중심으로 국내 원전 관련 기업이 팀을 구성해 수주했다. 세부적으로 한국전력기술(설계), 두산에너빌리티(주기기·시공), 대우건설(시공), 한전원자력연료(핵연료), 한전KPS(시운전·정비) 등으로 역할이 분담돼 있다.

본계약은 각 참여 기업이 제시한 입찰금액을 더해 한수원이 대표로 체결했다. 본격적인 사업 추진을 위해서는 한수원과 참여 업체 간의 협력 계약이 체결돼야 하는데 현재까지 정리가 끝난 건 주기기인 원자로뿐이다. 지난해 12월 두산에너빌리티는 한수원과 체코 원전에 들어갈 원자로와 터빈 등 총 5조6000억원의 계약을 체결했다.

시공은 대우건설(55%)과 두산에너빌리티(45%)가 맡은 구조로 대우건설이 주계약자다. 그런데 한수원이 2024년 4월 입찰서에서 써낸 금액보다 대폭 감액하라는 요구를 하면서 갈등을 빚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심지어 설계 변경, 건설 환경 등에 따라 늘어날 게 뻔한 공사비용 역시 시공사가 책임지도록 요구하고 있다”며 “과거 국내 원전을 건설할 때 적용했던 방식을 국가 차원의 해외 프로젝트에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우건설 측이 수용 불가 입장을 밝히자 한수원은 ‘시공사 선정을 취소하고 타 업체로 변경하겠다’며 재차 압박했다고 한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비밀 유지 의무가 있어 구체적인 언급은 어렵다”면서도 “큰 규모로 사업비가 깎이면 현지 하청업체와의 계약에도 영향을 미치고, 체코 정부도 문제를 제기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이를 두고 한수원 측이 미국 웨스팅하우스에 지급해야 할 비용 때문에 국내 협력 업체에 부담을 전가하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한수원과 한국전력은 지난해 1월 웨스팅하우스와 원전 기술 지식재산권 협상을 마쳤다. 여기엔 한국은 원전 1기를 수출할 때마다 1조원가량의 물품·용역 구매 계약 및 로열티를 제공하고, 북미·유럽 등 독자 진출을 포기하는 내용이 담겼다.

한수원 관계자는 “현재 시공사 측과 상호 호혜적인 관점에서 긴밀하게 협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성공적인 프로젝트 완수를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세계원자력협회(WNA)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계획을 세우고 인허가 등이 진행 중인 원전은 전 세계적으로 400기가 넘는다. 체코 원전은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이후 두 번째 수출로 주목을 받았다. 바라카에 이어 경쟁력을 입증할 경우, 인공지능(AI) 확산과 맞물린 글로벌 원전 르네상스 속에 추가 수출 기회가 확대될 수 있다.

해외 수주를 늘리면서, 이익도 제대로 거두려면 잘못된 관행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시작부터 갈등의 씨앗을 품고 있다 보니 집안 싸움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실제로 한전과 한수원은 지금도 바라카 원전의 추가 건설 비용을 놓고 중재 소송을 진행 중이다. 박종운 동국대 에너지·전기공학과 교수는 “원전은 10년가량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인 데다, 현지 조달 등 부가 조건이 많아 수익성 확보가 쉽지 않다”며 “특히 한국은 정치적 성과 과시를 위해 저가 수주가 많았던 만큼 향후 해외 진출 시 수익성 등에 대한 더욱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원전 수출 구조 개편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는 한전과 한수원이 각각 수출 창구 역할을 하며 비효율이 발생하는 구조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수출 창구를 일원화해 협상력과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며 “장기적으로는 웨스팅하우스 로열티 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완전한 기술 자립도 추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장원석([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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